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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주체
사카이 나오키 외 지음 / 이산 / 2005년 6월
평점 :
실천계?
"어떤 민족어로부터 다른 민족어로의 번역이라는 발상은 번역의 실천계(regime)가 사람들을 사로잡고 번역행위가 일정한 방식으로 표상됨으로써 가능해집니다. 번역의 실천계는 언어적인 이해의 어려움을, 마치 그것이 하나의 언어와 다른 언어 사이의 공간적 단절인 것처럼 공상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렇게 해서 번역이라는 작업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교섭에서의 약분불가능성을 하나의 통일체와 다른 통일체 사이의 균열인 것처럼 생각하는 습관이 의심을 받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14쪽)
"번역의 실천계가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 퍼진 것이 18세기의 일이고, 또한 이 시기에 새로운 분류법이 생깁니다. 물론 그 전에도 일본 와카의 어법이나 고전언어에 대한 연구는 있었지만 고대 일본어의 음운, 문법 연구가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게 된 때는 18세기입니다. 이른바 국학이라고 불리는 운동이 일었던 것입니다. 민족어의 표상이 가능해짐과 동시에 민족을 유기적인 통일성을 지닌 것으로 상상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즉 번역의 실천계의 출현과 일본어나 일본인이라는 민족-언어통일체의 출현은 새로운 분류법의 성립을 매개로 밀접하게 결부되었을 것입니다." (15쪽)
"이런 점에서 여기에 실린 논문들을 쓰는 실천은, 오늘날 일본이라고 불리는 지역의 18세기 담론에서 번역의 개념과 실천계(regime)를 분석했을 때 예상했던 것들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다." (46쪽)
"이 균질언어적 말걸기의 실천계에서 배제되는 것은 청중집단 안에 혼재하고 동거하고 있는 복합적인 언어유산이며, 이러한 말걸기에 이어서, 외국어를 쓰는 화자에 의한 또는 외국어를 쓰는 화자를 향한 발화는 진정한 형식의 발언에 비해 부차적인 것이거나 정상적이지 않은 예외적인 경우로 무시된다." (51-52쪽)
쌍형상화?
"그것은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는 피할 수 없는 공포와 불안으로 한국 독자들과 나 사이에, 어떤 국민과 다른 국민 사이의, 이 책에서 사용한 말로 표현하자면 쌍형상적인 관계로는 처리할 수 없는 서로의 유대를 느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9쪽)
"이에 언어의 통일성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어떤 메커니즘이 필요한지를 생각하기 위해 번역과 쌍형상화라는 논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11쪽)
"그런데도 번역이 민족과 민족 사이의 쌍형상화와는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 또한 나는 믿습니다. 이 책에서 번역자가 차지하는 주체적 위치에 관해 이야기했듯이, 번역자는 균질언어적으로 말할 수 없으며 번역자의 행위는 항상 쌍형상화 도식을 배반하기 때문입니다." (16쪽)
"번역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근대 국민국가의 담론 바깥에서 이해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이 어려움은 국어라는 이념과 내가 쌍형상화 도식(the schema of configuration)이라고 부르는 것에 의해 통제된 담론 속에 우리가 얼마나 단단히 갇혀 있는지 그것만은 가르쳐 준다." (47쪽)
연쇄?
"왜냐하면 번역에 관한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한 이래 연쇄되는 번역의 이미지가 잠시도 내 머리를 떠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번역을 단지 하나의 텍스트가 다른 텍스트로 변환되어 두 개의 언어나 두 개의 집단이라는 이항관계 속에서 완료되는 것이 아니라, 제3항, 제4항으로 무한히 증식해가는 연쇄로서 생각하는 버릇 같은 것이 나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9-10쪽)
"이 연쇄는 꼭 하나의 민족어로부터 다른 민족어로의 연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10쪽)
"번역의 번역의 번역......이라는 연쇄가 바로 실현되고 있다는 느낌 말입니다." (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