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이집트에 미쳐서 막 달릴 때 번역되서 나온 관련 서적들을 초토화 시켰었는데 시들해져서 덮어놨던 책들 중 하나이다. 오랜만에 갑자기 땡겨서 읽었는데 재밌구나~ 이집트 문화 자체가 기록에 목숨을 거는 터라 -뻥이 심하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아주 소소한 것도 기록을 남기다 보니 그렇게 심하게 도굴을 당하고 아작이 나면서도 남은 게 많아서 후세들에게 참 쏠쏠한 재미를 주고 있다. 그래서 고대임에도 음식, 술 등은 물론이고 그들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고 어떤 벌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도 기록에 근거해 세세히 살펴볼 수 있다. 각종 범죄와 그들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에 대해 재미있게 풀어내주고 있다. 특히 현대와 별 차이가 없는 이집트 사람들의 과거를 지켜보는 재미와 함께 무전유죄는 시대를 초월한 인간계의 진리인 모양이라는 씁쓸한 깨달음을 준다. 인간은 정말 더럽게도 변하지 않는 모양.
페리의 포함외교로 강제로 개항을 한 뒤 일본 막부가 무너진 메이지 유신 직후에 일본의 외교 사절과 그 수행원들이 서구 문물을 답사하기 위해 떠났던 19세기 말,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1871년의 세계 일주 기록이다. 새로운 문명을 과감하게 흡수하기 위해서인지 사절단의 나이는 아주 젊다. 가장 우두머리인 대사가 40대, 하급 수행원의 경우는 20대 초반과 10대 후반까지 있었다. 그리고 이 이와쿠라 사절단의 일행들은 자신들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하고 현대의 다나카 아키라는 그 기록을 발췌해 소개하고 있다. 미국부터 시작해서 유렵 각국, 아시아를 거쳐 일본으로 돌아오면서 이들이 본 것과 느낌, 기록은 시대를 불문하고 서구를 처음 방문하는 동양인(혹은 다른 문명권을 방문하는 인간)이 느낄 법한 그런 내용들이기에 기억에 크게 남는 건 없다. 그보다 더 내게 기억에 남는 건 이 사절단들이 일본에 돌아와 어떤 역할을 했고, 그들이 속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관한 저자의 짤막한 기록들이었다. 읽는 내내 가슴 아프게 겹쳐지는 것은 민영환의 세계일주기인 해천추범. 그때 조선의 근대화를 꿈꿨던 사절단의 상당수는 친일파 중에서도 최고의 악질이 되어 나라를 팔아 먹는데 앞장 섰고, 그들을 이끌었던 민영환은 을사늑약의 비운에 항거하며 자결로 생을 마감한다. 역사에 만약이란 건 존재하지 않지만 만약 그 수레바퀴가 우리 민족에게 조금만 더 자비로웠다면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갔던 그 사절단들도 지금 이 이와쿠라 사절단의 일원들이 일본 사회에서 큰 역할을 했던 것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책의 제일 마지막에 이와쿠라 사절단 명단과 당시 그들의 직책, 그리고 그들이 나중에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한 짤막한 기록을 보면서 그런 감정을 지울 수가 없다. 부디 몇십년, 혹은 한 세기 뒤에 지금 이 시대를 이렇게 아쉽게 회고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하긴... 이미 2007년 12월에 망조는 시작되었지. 이제는 어떻게 수습을 하느냐가 관건. -_-+++
마감은 해야 하는데 죽기보다 하기 싫어서 발악을 하는 와중에 그럼 조금이라도 영양가 있느 일로 낭비를 하자!고 결심하고 밀렸던 책 감상문 하나만 끄적. 원제는 Donna Haraway and GM Foods로 2000년에 나온 책이다. 과학 관련 책이 11년 전이라면 이제는 구닥다리 고물 창고에 들어가고도 남아야겠지만 얘는 과학적인 팩트의 전달이라기 보다는 미국의 유명한 과학자이자 여권 운동자인 도너 해러웨이가 유전자 변형 식품을 바라보고 평가한 시각에 대해서 다시 분석을 한 글이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자면 약간은 인문학적인 색채가 강하다. 1997년에 도너 해러웨이가 쓴 유전자 조작식품을 다룬 '중도적 증인'이라는 책에 대해 분석을 하고 있다. 비판도 옹호도 아닌, 가능한 철저하게 중립적인 입장에서 그녀의 의견을 소개하고, 유전자 변형식품과 그걸 탄생시킨 생명공학에 대해 서술해주고 있다. 만약 이 저자가 과학자였다면 과학자적인 입장에서 자기 스탠스에 맞게 분석이 이뤄졌겠지만 저자는 킹스 칼리지의 영문학과 학장으로 현대문화와 사상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전방위적으로 굉장히 광범위한 접근을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솔직히 어렵다. 이건 이 저자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도너 해러웨이가 유전자 조작 식품에 관해 어떤 주장을 했는지 그 내용의 맥락을 정확히 모른 채 이 책에서 단편적으로 던져주는 파편만으로 분석해야하는 내 무지 때문이란 건 인정하겠지만 이런 문고판 책을 잡을 때 독자는 그 자체로 개념 정립 내지 기초 지식 습득을 원한다. 그런 부분에서 볼 때는 아쉬움이 크다. 좋게 평가하고 싶은 건 위에도 썼듯 객관적이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조지 마이어슨이라는 저자 개인이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독자가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기계적 중립을 넘어 명확한 팩트 위에 냉정한 관찰자이자 안내자의 위치를 잊지 않는다. 예를 들어 유전자 조작이 된 옥수수의 꽃가루를 먹고 자란 나방들이 2세대로 넘어가면서 다 죽어버렸다는 팩트가 있다. 이 팩트를 놓고 반대파들은 이게 유전자 조작 식품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옹호파들은 그 옥수수 꽃가루만 먹도록 강제한 환경에서 실험은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자연 상태에서 나방은 그 옥수수 뿐 아니라 다른 꽃가루도 먹을 수 있다는 부분에서 오류를 짚어낸다. 이런 식으로 논쟁을 아주 객관적으로 소개한다. 독자 스스로의 스탠스에 따라서 자기 주장의 근거로 삼을 수 있도록. 이건 학자라기 보다는 기자적인 입장에서의 글쓰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스스로를 칼럼니스트 내지 교사로 착각하고 있는 상당수 한국 기자들이 배워야할 덕목인 듯) 책을 읽고 나서 내 결론은 도너 해러웨이의 책을 좀 읽어봐야겠다가 첫째. 두번째 상념은 저 때만 해도 인류 미래를 구원할 것처럼 난리를 치던 그 유전자 조작식품의 미래는 무엇일까 하는 궁금함이다. 그리고 유전자 조작식품이 우리 식탁의 어디까지 와 있는지에 대해서도. 식품 제조업자 입장에서 유전자 조작 식품의 유혹을 떨치기는 쉽지 않다는 건 이해한다. 두부를 예로 들자면, 재료에 아무 장난을 치지 않으면 콩 한 되로 두부가 딱 3모가 나온다고 한다. (이건 국산 유기농콩으로 직접 두부를 만드는 식당을 하는 분이 해주신 얘기임) 두부의 가격은 국산 유기농이 당연히 제일 비싸고, 그 다음이 국산 관행농콩, 놀랍게도 그 다음이 중국산이고 가장 싼 게 유전자 조작이 된 -아마도 미국에서 오는?- 콩. 이 원료의 가격차이가 1-2배 정도가 아니라 국산 유기농콩과 GMO는 0단위가 틀리다고 한다. 그러니 그걸 원료로 한 제품의 가격은... ㄷㄷㄷㄷ 나도 솔직히 된장은 그냥 국산콩으로 만든 메주 정도에서 타협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버터도. 풀 먹고 방목한 소의 우유로 만든 버터는 유전자 조작사료를 먹고 자란 소의 우유로 만든 버터 가격의 4배! 버터는 많이 먹지도 않으니 그냥 우유까지만 풀 먹으며 뛰노는 소를 택하고 있다. 얘는 그나마 2배 정도. ^^; 얘기가 삼천포로 많이 샜는데... 앞으로 어떤 책에서 뭐라고 멋진 소리를 해도 나도 유럽 사람들처럼 유전자 조작식품은 가능한 안 먹을 것임~ 그래야 GMO를 사용하지 않는 식품제조업자가 늘어나고 시장이 커져서 가격이 눈곱만큼이라도 싸질 수 있겠지. 한국의 유기농 시장도 그렇게 커왔다. 윤리적인 소비 어쩌고는 모르겠지만 똑똑한 소비는 확실히 필요하다. 이제는 소비자가 시장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함.
분명 환상문학인 로맨스를 제대로 쓰면서도 묘하게 특이하면서 현실감을 주기 때문에 좋아하는 작가. 이번엔 아마도 로설 사상 최초로 진짜 사이코패스가 남주로 등장했다. 여주는 끊임없이 바람을 피우는 남편울 갖다 버리지는 못할 망정 어떻게든 수습해서 살려고 하는, 아마 다른 작품에서 등장했다면 온갖 욕을 바가지로 먹었을 여자.
하지만 이 두 사람의 만남부터 행로는 짜증보다는 흥분을 준다. 장르의 특성상 결말을 알고 있으면서도 로설을 보면서 두근거릴 수 있는 건 그 과정의 탄탄함과 정교함인데 불면증은 특이하지만 정말 재미있다. 남주가 범죄자나 범법자인 것은 안 된다는 미국 로맨스 소설 작가 협회의 기준에 따르면 이 소설은 로설로 인정받을 수 없지만 세상이 하도 험악해서 그런지 나쁜 놈은 이렇게 깔끔하게 처리를 해주는 것에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됨. 드라마나 영화였다면 후폭풍 때문에라도 비극으로 장렬하게 끝났어야겠지만 로맨스라는 장르답게 그 나름대로 최선의 해피엔딩. 이렇게 심각하게 문제 많은 남자랑 이뤄지려면 그 정도 희생은 필요했겠지.
간만에 나온 이지환님의 역사물이던가? 평은 극과 극으로 갈리던데 난 재미있는 쪽.
아마 무협에 어느 정도 내공이 있는 독자들, 그리고 전형적인 로맨스에 살짝 질린 독자들에겐 재미있었을 거고, 로맨스의 범위를 좁혀서 잡고 그 안에서 재미를 찾는 독자들에겐 이게 뭔 소리여??? 하는 그런 느낌이었을 듯. 나로선 좀 더 무협의 분위기가 살아도 좋았겠지만 그랬다가 아마 곡소리가 났을 테고... 이지환 작가 특유의 몰아치는 스토리 라인은 역사물에서 확실히 더 재밌다. 현대물에선 이상하게 겉돌고 내게는 잘 받아들여지지가 않음. 곳곳에 깔아둔 이야기의 구조가 탄탄하고 재밌긴 한데 남녀 캐릭터의 절절함이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는 사람들의 평에는 나도 백분 공감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절절하게 잊지 못하고 팍 꽂히기에는 아무리 과거라고 해도 둘 다 좀 심하게 많이 어렸지. 남주와 여주가 처음 만난 나이가 한 3-4살만 많았더라도 설득력이 있었을 것 같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요즘 천편일률인 황제물에 이런저런 요소들을 더해서 다양한 맛을 줬다는 점에서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