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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 현대성의 형성-문화연구 10
김진송 지음 / 현실문화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처음 나왔던 90년대 후반(98년쯤으로 기억하는데)부터 꼭 읽어야지 마음만 먹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마음 먹고 잡아들었다. 부제 스타일로 '현대성의 형성'이라고 쓰여 있듯이 이 책은 1920년대와 30년대 조선에서 과연 모던이랑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문화 연구서이다. 그리고 보기 드물게 잘 쓴 문화 연구서라고 말하고 싶다.
문화나 인문, 사회 과학 쪽은 똑같은 근거도 솔직히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처럼 그럴듯한 해석에 따라 그 당위성이 달라진다. 비슷한 주제와 시대를 놓고 쓴 여러권의 책을 교차해 읽어보면 그 특성은 더 현저히 드러나는데 여기서 저자는 특별한 해석이나 주장을 크게 내세우지 않고 사실들을 잘 분류해 자신이 알려주기 원하는 내용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흐름에 맞지 않는 엉뚱한 주장이나 자기 의견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내용들을 절묘하게 편집한 기술에 감탄했다는걸 인정해야겠다. 글을 쓸 때 가장 본받아야할 기술이다. 그런데 이 방법은 그 재료가 풍부할 때만 가능하다는 난점이 있는데 이 책은 한권을 위해 정말 이 시대를 다룬 책으론 보기 드물게 많은 자료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제목은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도발적인 것이지만 내용은 진지하고 알차다.
특히 각 장의 마지막에 그 장의 내용과 관련된 자료 전문을 소개해준 것은 정말 친절한 배려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한 것은 우리(나 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대부분은 우리의 생각과 달리 별로 현대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한 시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저 세상에 가 있고 그들이 지금 이 현대를 함께 숨쉬고 있다고 해도 우리에게 그들은 현대가 아니라 전근대적인 과거로 상징된다. 하지만 1920년대와 30년대에 그들과 함께 숨쉬던 신문, 잡지들의 내용, 그리고 그 주장은 지금 우리의 것과 거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그들 역시 현대의 상징으로 스포츠와 스피드를 논했고, 첨단 과학의 발전에 찬탄했으며 유행을 좇았고 기성 세대의 보수성에 반기를 들었었다. 또 잡지들은 한 우리가 오렌지족을 비판하고 강남 졸부들을 욕하듯이 경성의 새로운 신흥 부자들의 사치를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여성들의 생활관. 여학교 학생들의 결혼관과 직업관에 대한 설문 조사를 잡지에서 했는데 그 대부분의 내용과 수치는 오늘날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책에 나온 자료와 글들을 보면 사람의 생각과 행동 양식은 거의 변하지 않는듯 하다.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의 시간에서 현대적이라고 착각하고 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듯... 이런 류의 책을 볼때면, 내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시간과 공간의 의미가 점점 모호해지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다가 내용에 감탄하면 저자 부분을 꼭 다시 찾아보게 되는데 목수라고 나와 있었을 때의 충격은... 뉴튼의 만유인력법칙을 뒤집는 상대성 이론이 주말에 물리학을 연구한 취미 학자인 아인시타인에게서 나왔듯이 우리에게도 그런 뛰어난 주말 학자가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