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商道 5 - 상업지도 ㅣ 상도 5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손에서 책을 떼어낼 수 없는 구성과 이야기였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사실과 허구가 절묘하게 혼합된 소설. 김주영이나 최인호의 글을 읽을 때면 항상 이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것을 속에 품고 있기에 이렇게 풍부함이 느껴지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생각을 한다. 김주영이나 최명희처럼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주는 그야말로 풍성한 어휘는 없지만 구성과 상상력, 그리고 자료조사 측면에서는 역시 최인호. 그리고 얘기를 재미있게 끌어나가는 발상과 힘에 있어서도 그 특유의 능력이 아직 쇠하지 않고 있다.
나와 비슷한 세대들은 다 기억하겠지만 강가딘이란 만화를 그린 김삼(이던가?)이란 만화가가 우리 민담과 야사를 위주로 만화를 연재한 적이 있었다. 그때 만화에서 단편적으로 만났던 얘기들이 이 소설에 다 녹아있다. 중국에 사신(장사)으로 갔다가 유곽에서 만난 여인을 구해줬는데 나중에 대관의 부인이 된 여인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 돈을 빌리러 온 사람에게 조건없이 게속 큰 돈을 빌려줬더니 수년뒤에 인삼을 키워 수십배의 이문을 남겨 돌아온 얘기. 잔이 가득 차면 술이 사라지는 계영배와 솔개가 병아리를 채가는 것을 보고 자신의 운이 다한 것을 알고 전재산을 나눠주는 얘기 등...
이 모든 일이 상도의 주인공 임상옥에게 집중되어 새롭게 태어난다. 임상옥이란 인물이 실존인물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최인호의 과거 소설의 특성상 실존인물이리라 짐작되긴 하지만 그가 실제로 이 세상을 살다간 사람이라도 지금 최인호가 그리는 바로 그런 인물은 아니었을 것 같다. 현대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던 이름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능력. 바로 그것이 작가의 힘일 것이다. 이 소설을 쓸 때 최인호는 부자가 경멸받고 상인이 천대받았던 이 나라에 우리도 존경할만한 장사꾼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이 소설에서 만난 것은 버림의 미학. 처음에는 재미 때문에 어떻게 스토리가 전개되어 갈까 하는 흥미로 책장을 넘겼지만 4,5권으로 갈수록 무에 대한 메세지를 느꼈다. (아니라면 할 수 없고)
책과 관계없는 사족을 두가지 달자면... 이 소설에서 심도깊게 다뤄지는 두개의 종교와 관계없는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약간의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겠다. 후반으로 가면서 상당한 미화를 발견할 수 있었음. (나도 미화의 대상이 된 종교를 믿고 있으니까 딴죽은 아닐 것 같다...) 그리고... 잘 봐줘야 2-3면 될 분량을 왜 이렇게 큰 활자와 넓은 간격, 얇은 두께로 다섯권으로 만드는지. 출판 문화의 거품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