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천년 동안의 위대한 발명
존 브록만 엮음, 이창희 옮김 / 해냄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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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딴지일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접한 첫 순간부터 나는 왜 굳이 2천년이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일반화된 달력에 맞춘 기준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2천년으로 한정시키기에 그 당위성은 조금은 약하다는 느낌을 가졌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보니 나와 비슷한 생각을 (의미가 다르긴 하지만)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나보다. 하지만 내용은 그 범위 만큼이나 무척 서구적이다. 저자가 좀 더 정직했거나 혹은 넓은 시각을 가졌다면 지난 2천년 동안 '서구를 중심으로 한' 위대한 발명이라고 얘기를 해야하지 않았을까? 이런 류의 책을 볼때마다 반복되는 불평이고 이제 좀 익숙해질만도 하건만 늘 지나치지 못하고 참 씁쓸하다.

어쨌든 2천년의 범주에서 벗어난 내용을 선정하거나 2천년이라는 한정된 범위에 관해 이의를 표시한 사람들을 발견하면서 그걸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불만은 그쯤에서 접어두고. 한똑똑 한다는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위대한 결과물에 대해 보면서 두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하나는 역시 인간은 자신의 생각과 환경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 글을 쓰는 그들 스스로도 인정했지만 역시 선정된 내용이 자신이 전공하거나 잘 알고 있는 분야에서 결과물을 택하게 된다.

또 하나는 사람의 생각은 뭐라거나 비슷하다는 것. 수십명의 짧은 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인쇄술과 컴퓨터, 전기나 네트워크쪽을 선택했다. 미적분이나 과학적 사고와 같은 내용도 간간히 보이고. 글쓴이들의 구성이 이과에 몰린 탓인지 인문이나 예술쪽에 대한 지지도는 그야말로 극히 낮았다. 건초며 말등자 같은 것도 재미있기는 했는데 가장 특이한 선택은 클래식 음악과 교향악. 근거로 제시한 논거가 아주 재미있었다. 그리고 '없다'는 답변도 충격적. 이것이야말로 음미해볼만한 사고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중간쯤 와서는 대부분 스스로에게 무엇을 택하겠냐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된다. 지금 잘 나가가고 나름대로 똑똑하다는 사람들의 선택을 알려주는 기능보다 자신의 생각을 선택하고 숙고하는 과정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가치인듯 싶다.

사족이지만 가장 마지막에 쓴 자레드 다이어먼드. 내용의 근거는 제쳐놓고라도 시각에 있어서 가장 열려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지극히 서구 중심적인 다른 글들에 비해 동양에 대한 이해가 돋보였다. 태종이(물론 그 아래 장인의 업적이거나 도움이 컸었겠지만) 구리 활자를 고안했다는 얘기는 나도 처음 알았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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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체와 수치의 역사 까치글방 144
한스 페터 뒤르 지음, 차경아 옮김 / 까치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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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를 먼저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만났을 때 상당히 혼란스럽고 황당할 것이다. 반대로 이 책을 읽고 풍속의 역사를 만나는 사람 역시 느낌은 비슷할 것 같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쪽에서 과거사에 관한 부분은 한정된 자료를 놓고 논리를 전개하기 때문인지 비슷한 주제와 관심을 가진 서적을 보면 제시되는 근거 자료들이 상당히 많이 겹친다. 그런데 그 같은 자료를 놓고 주장하는 이론의 차이는 때때로 황당할 정도로 다른 경우가 있는데 이 책과 풍속의 역사가 그런 전형적인 예인듯 싶다. 같은 근거를 놓고 서로 읽어내는 방향이 극과 극.

풍속의 역사에서 개방과 문란의 상징으로 제시됐던 그림과 문서가 한스 페터 뒤르의 나체와 수치의 역사에선 오히려 절제와 사회적 규제의 증거로 채택되어 있다. 제목은 나체와 수치의 역사이기 때문에 중세인들의 개방적인 성모랄과 원시성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여기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기대하던 그런 내용이 아니라 (그런 내용은 오히려 점잖은 제목의 풍속의 역사에서 충족이 될듯) 그들이 엄격한 규범 아래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흔히 중세과 근세인들의 개방성을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되는 초야 공개는 상징이었다는 주장으로, 수많은 풍속화에서 묘사되는 남녀 혼탕은 보이지 않는 엄격한 규제 속에서 행해졌고 일반적이지 않았다는 논거를 제시한다. 그런데 이 제시되는 증거들이 아까 말했던 풍속의 역사에서 보았던 증거물이라는데 독자로선 혼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푹스의 글을 보면서 머리에 담아뒀던 내용들이 바닥부터 흔들리는 느낌.

솔직히 제시된 자료를 보면서 설명을 듣는 입장에선 어느 쪽이 맞다를 말할 수는 없고.... 이 책을 괜찮다고 말하는 이유는 뒤르의 주장 역시 설득력있게 다가왔다는 것 때문이다. 과거에 어땠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마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자기 자신과 그 주변의 가치관과 생활만이 진실이지 어느 것이 보편인지 확실한 정답을 말해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반대의 입장을 가진 책을 본 독자에게 무시당하지 않는 뒤르의 주장 역시 나름대로 확고한 논리를 갖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최초의 혼란이 사라진 다음에는 다양한 관점을 만나는 재미를 찾을 수 있었다.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다가 마지막에 조금 황당했던 것 하나. 총 470여쪽의 두께인데 주석과 참고문헌 소개 부분이 170여쪽.... 자료를 많이 찾아봤단 얘기도 되겠고 자신만의 소리가 적었단 얘기도 되겠고.... 조금은 허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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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복식의 역사 - 고대편 1 - 교양국사총서 29-1
이은창 지음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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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애들이 심심하면 펴내는 패션의 역사, 복식의 역사류를 생각하고 시작을 했는데 재미는 예상보다 별로 없었다. 천은 남아있지 않지만 벽화가 발달했던 이집트니 그리스 문명의 특성상 패션을 논하는데는 부족함이 없었고 중세는 테피스트리, 또 살만한 계층의... 한번 입은 옷은 쌓아놓을 망정 재활용을 안하는 사치스런 문화의 덕을 본 서양의 복식 연구에 비해 인물의 기록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우리 역사를 사정상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또 이런 역사서에 필수적인 풍부한 얘기와 다채로운 그림 자료들의 부족에 있겠고 옷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그 마지막 한조각마저 재활용을 하는 우리의 알뜰한 전통에도 원인이 있겠다.

그런 부분은 백번 양보하고 보더라도 단어와 문체가 쉽게 읽히는 편이 아니다. 새로운 단어나 어려운 용어에 대해선 각주를 달아줬으면 하는 바램이 들던데 왜인지 그런 배려도 거의 없어서 잘 모르는 고유명사는 앞장을 헤매며 문맥 파악을 하고 다시 뒤로 돌아와 읽는 작업의 반복이라 부피에 비해 더 더디 끝낸듯. 제본과 제목에 비해 내용이나 편집이 그닥 친절하달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그걸 상쇄시킬만큼 내용이 아주 수준높은 것도 아닌.... 우리 복식에 대한 현재 우리의 연구 수준과 딱 비슷한 느낌. 그래도 정말 거의 무에 가까운 자료들을 이만큼이라도 모아 정리를 했다는데는 점수를 줄만하다. 이걸 바탕으로 누군가 더 심도깊고 읽기 편한 내용을 만들어내면 좋을텐데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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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대 - 삼성세계사상 34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 삼성출판사 / 199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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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는 다른 민속학자나 인류학자들을 얘기할 때 항상 비교의 대상으로 먼저 만났던 이름이다. 그의 여러 저서에 대한 얘기들은 들었지만 쉽게 손이 가지는 않았던 사람. 제일 먼저 만난 책이 만만해 보이는 신화와 의미. 그 느낌에 떠밀려 몇년동안 읽어야하는 리스트 상위에서 맴돌면서도 절대 선택되지 않았던 슬픈 열대까지 왔다.

앞부분에서... 프랑스를 떠나는 부분을 읽을 때는 가벼운 여행기나 탐험기를 예상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레비스트로스와 함께 배에 올랐지만 가면 갈수록 레비스트로스를 질리게 했고 동시에 매로시킨 아마존 열대 우림의 험한 행로를 따라가는 느낌. 이 책을 읽기 시작하다가 갑자기 바빠지고 개인적으로 여러가지 머리 복잡한 일들이 많았던 것도 이유겠지만 내용 자체가 만만하진 않다.

거기다 열심히 번역한 번역자에겐 좀 미안한 얘기지만 내용 파악이 제대로 안됐는지 문맥이 안맞는 문장이 너무 많아서 앞뒤 내용을 찾아 맞춰가면서 이해를 하려다보니 더 진도가 느릴 수 밖에... --

워낙 띄엄띄엄 오래 읽다보니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은 솔직히 머리에서 많이 사라졌다.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제목이 슬픈 열대인가에 대한 그 느낌과 이해는 살아있다. 나름대로 열린 관찰자였고 객관적이고 우호적이었던 학자인 레비스트로스 역시 역설적으로 자신이 지키고 싶었고 또 연구하고 사랑했던 열대 우림 지역의 원주민들과 그 문화의 파괴자 -최소한 변질을 유도한 매개체- 였다는 사실에 대한 자괴감도 있었을테고 또 자신과 같은 인종의 포장된 야만에 대한 발견도 씁쓸했으리라. 그가 지키고 싶었으나 불가능했던 것에 대한 기록...

레비스트로스의 책들을 읽기 훨씬 전에 나는 그에 대한 비평과 비교를 먼저 접했다. 이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 슬픈 열대에 대한 학문적, 사상적 비평 역시 만났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레비스트로스의 시선과 그의 행로에 많이 공감한다.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역시 포장된 열림과 이해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문화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대부분의 서구인들이 그렇듯이 내려다보지 않고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려고 한다는 것. 어떤 사물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그 사물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안다면 그가 연구하려는 사회의 동조자는 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냉정하고 편견없는 관찰자는 되어야 하건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내가 같은 위치에서 같은 일을 한다면 나 역시 내 눈높이에 대해서 솔직히 자신은 없다. --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졌던 몇가지 질문. 나는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나는 내가 속한 사회에 비판자인가 아니면 동조자인가? 나는 다른 문화와 사고에 대해 열려있는가 아니면 열림을 가장한 가장 깨기 힘든 폐쇄회로 속에 들어가 있는가...다른 문명에 대한 이해. 다르다는 것. 그 다양성에 대한 수용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이제는 내가 아마존으로 달려간들 남비콰라족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들의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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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유전자가 살아남는다
티머시 테일러 지음, 김용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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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뽀나 추적 프로에서 몇번이나 재탕을 하지만 할때마다 시청율이 높게 나오는 주제가 매춘이나 성관련 주제들이다. 그 높은 관심은 책에 있어서도 변함이 없는듯 싶다. 야한 제목이 이 책을 고르게 한 상당 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원제목을 보니 우리나라 출판업자들의 독창성(?)에 찬탄을 금치 못하겠다. 원제는 the prehistory of sex: foue million years of human sexual culture. 아무리 책을 많이 팔려는 마케팅의 일환이긴 하지만 좀 연관성이 있는 제목을 찾아내줬으면 좋으련만.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보면... 요즘 인문학 쪽이 많이들 그렇듯이 분야가 모호하게 느껴질 정도로 다방면에 다리를 걸치고 있는 내용의 저술이다. 저자인 티모시 테일러란 사람이 고고학자라니까 틀림없이 고고학 서적이긴 한데 흔히 만나는 고고학 얘기와는 아주 다른 느낌. 오히려 고고학보다는 사회학이나 문화사학쪽에 가까운 내용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 책은 유골과 유적들을 통해 (확실히 이 부분은 고고학에 발을 담고 있다) 인류의 다양한 성문화와 그 진화와 발전을 그려 보이고 있다. 변태적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섹스 문화와 습관 등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고도로 발달된 안정된 문명사회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초창기부터 있었다는 요지의 주장을 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 엄청나게 비판을 받은 모양이지만 내게는 수긍이 간다.

섹스란 것을 사회학이나 심리학, 혹은 역사학 측면에서만 만나다가 인류학적이고 고고학적인 입장에서 보는 것도 신기했다고 할 수 있고. 그가 보여주는 다양한 예와 유물들을 통해 펼치는 이론은 (내 식견이 짧은 탓일 수 있겠지만) 신선하고 새로웠다.

무엇보다 인상이 남았던 것은 인류의 진화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 가운데 가장 천대받고 확률이 낮은 것으로 평가되는 용불용설을 이 작가가 아주 강한 확신을 갖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고학자와 생물학자들은 진화의 고리가 많이 끊겨있다는 유화적인 표현을 하지만 사실 우리가 갖고 있는 그 끈은 엮어진 부분보다는 끊어지고 사라진 부분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누구의 이론이 옳은지 판단은 유보해야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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