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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를 모는 여자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다시 한번 90년대 이후에 등장한 여류 베스트셀러 작가들과 나는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
서정적이고 미시적으로 개인의 내면을 파고드는 문학은 나처럼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고 분석하기 싫어하는 헐랭이에겐 버겁다. 역시 난 서사적인 것이 좋아~를 다시 한번 외치면서.... 그러나 일이란 놈이 취향을 허락하는 것은 아니기에 억지로 봤는데 나름대로 글재주가 있는 작가로구나는 실감,
그러나 언론에서 찬사하는 귀기와 깊은 고찰, 세상과 생에 대한 열망은 못느끼겠음.
그냥 염소, 미소란 여자, 검정 박쥐 우산을 든 남자. 그 두 인간과 한 동물의 어떤 공통점을 강요하지 않고 글을 통해 스스로 느끼게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솔직히 감탄했다. 자기 생각을 글로 온전히 풀어낼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를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는 고로 더더욱 그 감탄의 강도가 높았음.
소도시 아파트 촌에 살고 있는 32살의 여자 윤미소. 한때 운동권이었고 또 바람을 피우고 있는 걸로 의심되는, 애정은 사라지고 타성만 남은 남편. 허무와 권태 속에 엄마로 아내로 가정을 지키고 있는 그녀에게 까만 염소와 그 염소를 맡긴 청년은 자신의 동격이 아니었을까.
청년은 정신병원으로, 미소는 염소를 끌고 가정을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는데... 나름대로 멋진 그리고 타당성이 느껴지는 결말이었다.
물론... 이제는 낭만이나 환상보다는 현실적인 군더더기에 더 집중하는 이 30대 후반의 여자는 저렇게 옷가방 하나 달랑 들고 몸만 나온 저 여자가 염소까지 데리고 과연 어디 살 곳이나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혼자 해봤음.
그러나 소설 안에서 과외 교습이란 부업을 쏠쏠히 했던 윤미소의 능력을 볼 때 덕지덕지 깨어진 가정에 머무르는 것보다는 더 낫겠지라고 혼자 앞날까지 다 예측해놨다.
근데.... 훌훌 떠나버린 그녀가 남기고 간 딸은?
전경린 작가의 특징인지... 얼마 읽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주인공들은 모성보다 자아를 더 중시하는 면이 있다. 모성이란 핑계로 질질거리고 질척거리는 여자들을 질색하는 내 입장에선 상당히 마음에 들긴 하지만 그래도 나이를 먹으니 애들이 무슨 죄냐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하는 수 없다.
단편 소설에서 너무 엉뚱한 부분까지 혼자 비약해서 상상한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