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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순이 언니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일 때문에 급하게 마구 읽은 책 중 하나.
나란 인간은 서정보다는 서사를 선호하는 관계로 자신의 의식이나 내적 탐구, 혹은 주변의 미세한 변화에 집중하는 90년대 이후 작품과는 엄청 친하지 않다. 그래서 나의 글읽기는 조정래씨와 같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곤 과거에 집중되어 있는데 올해는 하는 수 없이 그쪽 책들을 쌓아놓고 한숨만 짓고 있다.
특히나 취미없는 386 세대 작가들의 작품을 위주로 한 독후감 쓰기가 되는데 첫 타자는 조금은 읽을 만한 스토리 라인이 있는 작가라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
어린 시절 식모 언니에 대한 기억. 그리고 성인이 되어 스쳐간 그 봉순이 언니와의 만남.
지독히도 불행한 운명을 타고 났다고밖에 할 수 없는 봉순이 언니. 어릴 때는 의붓 아버지에게 도망쳐나와 친척에게 창경원 벚꽃놀이에서 버림받고. 주인공인 짱아네 집에선 도둑 누명을 쓰고 세탁소 총각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남자의 표상-과 야반도주 했다가 만삭이 되어 돌아와 아이를 떼고 홀아비의 재취로. 그리고 그 남편을 잃고 남은 자식과 계속 스쳐가는 남자들 사이에 성이 다른 네명의 아이를 가진 여자.
기구란 단어를 붙이기에도 버거운 운명의 언니의 얘기가 잔잔하고 건조했기에 비교적 마음에 다가왔음. 아마도 어린 시절 우리 집에도 이름 모를 언니들과 성숙이 언니란 이름을 남긴, 서캐가 가득 있어 우리 자매들에게 이를 옮겼던 언니가 있어서 내게 공감대를 형성한 것 같다. 나 역시 00이 언니와 함께하던 1년여 간 엄마가 아니라 그녀와 함께 자곤 했었으니까.
그리고 수제비란 단어와 그 맛을 내게 각인시켜 준것도 그녀였던 것 같다. 난로불에 끓여먹던 수제비. 맛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걸 내가 엄청 좋아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함. 그래서 지금도 우리 가족 중 유일하게 나만 수제비를 좋아한다. 나를 위해 직접 반죽해 끓여먹는 수고를 할 정도로. 그동안 그 언니의 존재는 잊고 수제비만 남았는데 이제는 수제비를 반죽하고 끓일 때마다 봉순이 언니와 나의 00이 언니도 떠오를 것 같다.
저 아래 깊이 묻혀서 생각도 나지 않던 추억의 사람들을 끄집어낸 소설. 봉순이 언니는 내게 그렇게 기억이 될 것 같다.
갓 국민학교에 들어간 나보다 한살 많았던 나이로 내 사촌을 업어서 키웠던 이름조차 잊은 언니와 지금 생각해보면 기껏해서 13-4살이었을 00이 언니. 둘 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아마도 그때 우리보다 더 자란 아이들의 엄마로 잘 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