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1907~1909

-캔버스에 유채, 108×180㎝
-오스트리아 미술관

 

 

 

 

 

 

 

키작은 풀꽃이 만발한 언덕 위에 두 연인이 서로에게 의지한채 서있다. 짧은 순간에 도취되어 지그시 두눈을 감은 여인 하지만 그 순간 의 감흥이 얼마나 큰지는 말려들어가는 손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금빛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커다란 가운은 마치 후광처럼 짧은 순간의 감흥을 더해주고 두 사람은 하늘을 향해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하나인듯 하지만 결국 엄연히 다른 둘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것은 패턴화된 장식을 통해서다. 남성의 옷에는 직사각형의 장식을 넣어서 남성성을 드러냈고 여성에게는 둥근 원형의 장식을 넣어서 여성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큰 가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성의 상징을 연상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결국 남성안에 남성성과 여성성이 동시에 존재함을 암시하는 것이다. 남성안에 있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진정한 화해. 그리고 여성에 대한 이해와 존경을 통해서만이 진정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는 메세지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궁극적인 화해의 이미지는 입맞춤인 것이다.

이 그림을 통해 클림트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남성과 여성의 화해를 통한 영원한 사랑이다. 하지만 그건 결코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자신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클림트 자신과 에밀리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처럼. 이 그림은 분명 사랑을 통한 화해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결코 따뜻하거나 희망적이라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
관자를 향해 아니 세상을 향해 매몰차게 돌려져 있는 남자의 머리와 창백한 얼굴로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닫아버린 듯 꼭감은 두눈의 여자의 얼굴에서 오히려 소외감과 우울함을 느끼게 만든다


 

[개양귀비 들판]
-1907

-캔버스에 유채, 110㎝×110㎝
-오스트리아미술관

 

 

 

 

 

 

 

 

 


해바라기가 있는정원]

- 1905~1906
- 캔버스에 유채, 110㎝×110㎝
- 오스트리아미술관

 

 

 

 

 

 

 

 

클림트는 경제적 여유가 있던 말년에 에밀리 플뢰게, 그리고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아테제 호수에 자주 드나들었다. 이 곳은 빈에서 고요하기로 정평이 나있었는데, 클림트는 성격이 까다로워서 작업할 때 누가 방해하는 것을 상당히 싫어하여 이 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클림트는 다양한 풍경화를 그렸다.

클림트는 풍경화에 절대 인물을 그려넣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며, 그의 모든 풍경화는 캔버스에 유채화, 110㎝×110㎝ 의 정사각형 구도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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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이에게 화이트보드를 사주었는데 장단점이 있다.

장점:

글씨 쓰기를 좋아하게 된다:내가 글씨를 써보라고 하지 않는데도 글씨를 써볼려고 스스로 노력을 한다.한글,숫자에다 영어까지 써본다.그래서 한글쓰기도 제법한다.숫자도 100까지는 쓰게 되었다.요즘은 영어 알파벳쓰기에 재미를 느끼나보다.(다시 강조하지만 절대로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한번 권해보고 하고싶다고하면 같이 앉아서 해본다.오래하는 성격도 아니지만 하기싫다면 알았다고 하고 바로 그만둔다.)

놀이가 다양해진다:1.끝말잊기를 하면서 글씨를 연결해서 계속 내가 쓰면 따라 읽는다.2.그림을 그려놓고 알아맞추기 게임을 한다.3.자유롭게 그림그리기4.숫자써보기

단점:

가장 큰단점은 화이트보드가 편리하다고 생각이 드는지는 몰라도 스케치북에 그림을 잘그리지 않는다.그래서 그런지 수원이는 그림에 색칠하는게 영 어설프다.의도적으로 스케치북을 가져다주고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지만  잠시 그리다가 금방 싫증을 낸다.(뭐든지 오래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 대안으로 물감놀이를 한번씩 하게한다. 아니..스스로 물감을 달라고한다.크레파스보다 물감이 더 흥미로운가보다..물감놀이를 한다고 하지만 이것저것 물감들을 섞어서 (결국 검은색이 제일 많아지게 된다..)그저 붓이 다 부러질만큼 힘을 주어서 종이가 헤어질때까지 빙글빙글 돌리고 휘젖는 행동만....-.-;;    형태를 좀 그려보라고 해도  번개나 천둥,괴물을 그렸다는 소리를 많이한다....그리고 옷,바닥,손에 매직이 잘 묻지만 물에 잘 지기때문에 큰 불편함은 없다.

만약 회이트 보드를 사주려한다면 꼭 자석이 붙는걸로 사는것이 좋다.(좀 더 비싸다)그러면 활용을 더 잘할수있다.덤벙대는 성격때문에 그냥 자석이 되는것인줄알고 사와서 나중에 한글자석을 붙여보니 주~욱 미끄러져 내려오는걸 보고 자석이 아닌것인줄 알게되었다는....ㅠ.ㅠ(할수없이 한글자석은 냉장고에만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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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학습지로 가르치지 않는다.
처음엔 낱말카드를 사용했다.
그림이 있는 카드보다는 없는것을 사용했다.
단어를 많이 알게된 후에는 문장카드를 보여주었다.
한번에 15장 내지 20장정도를 보여주었고
하루에 한두번만 읽어보도록 했다.
읽는걸 지겨워할때는 카드를 바닥에 펴놓고
먼저 찾기놀이를 했다.
물론 엄마가 자주 져주는건 기본.
또한가지는  책을 읽어주면서 가끔 한글자씩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반복해서 읽어준다.
그걸 자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글을 읽게 된다.
이젠 간단한 책은 혼자서도 천천히 읽는다.
가장 중요한건
아이가 읽기 싫어할땐 절대로 강요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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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곁의 여인]
-캔버스에 유채, 73.7*92.7cm
-Havemayer Collection,New York,USA

부인의 초상화에 꽃을 배치하는 것은 예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드가처럼 화면의 중앙, 가장 중요한 부분에 커다란 국화를 배치하고 인물을 바른쪽 구석으로 몰아 넣은 변칙적 구도는 흔하지 않다. 물론 이는 드가의 의식적 시도다. 그리하여 그는 새로운 방법을 꾀하고 있는 것인다. 일반적으로 모델은 에르테르 부인이라고들 하는데 루브르 미술관에 있는 드가의 <1860년경의 에르트레부인>이라는 데생과 대조해 보면 서로 다른 인물임을 알 수 있다. 테이블 위에 놓은 화려한 꽃과 배경의 식물 무늬 벽지 그  리고 인물의 뛰어난 묘사는 감탄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무대위에서의 발레 실습]
-1874
-캔버스에 불투명수채, 66.0*82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이 그림은 선회를 중심으로 한 움직임과 빛, 광채들이 전체의 구도 속에서 보다 완만한 선율을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은 1874년 제1회 인상파전에 출품되었는데 모네, 르느와르, 세잔, 피사로, 시슬레의 작품과 함께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드가는 사실 그의 젊은 동료들 처럼 반항적인 정신을 지니고 있진 않았지만 신문은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이것은 정신이상자의 작품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작품에 대한 평이었다.


출연대기 중의 무용수들]
-1878~80
-캔버스에 유채, 175*108cm
-보스턴 미술관
세사람의 무용수가 의상의 통일된 색상에 의해 하나로 되어 있다. 의상은 약간 회색을 띠고 있지만, 전체로서는 밝은 색조가 넘치고 있다. 화면을 대각선으로 가르고 바른쪽 아래로 무용수들을 배치하고 무대 안쪽에는 동양풍의 짙은 무대막을 그려 넣었다. 곁에 있는 무용수들은 토우 슈즈를 신은 발의 윤곽이 확실하다. 이러한 방법은 드가가 수업 시대에 익힌 신고전주의 전통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어서 주목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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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에서]
-1881
-캔버스에 유채, 100.3*81cm
-시카고 미술관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온 1881년 여름, 짧은 시기이긴 하지만 르느와르의 그림에 인물과 배경을 맺는 호흡이 불가사의한 조화점에 달한 듯한 한 시기가 있었다. 대기 속으로 흩어지는 빛과 개개의 형상 표면에 떠도는 빛이 서로를 부르며, 미묘하게 빛나는 조용함이 화면위에 나타나 있었다. 르느와르의 생애에서 극히 드문 일이다. 이 작품은 그때의 작품 중에서 가장 잘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상파 화가들은 색채에 이르는 빛의 효과를 발견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그러한 인상파 화가들의 본질을 나타낸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전경의 형상은 모두 착실한 실체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뺨의 장미빛, 그리고 털실 뭉치의 푸른 빛이 조화를 이룬 가운데서도 개개의 형상은 자신의 빛을 잃는 일 없이, 어디까지나 질감을 지니고 있으면서 색채의 교향곡에 참가한다. 그런데 후경은 일변해 있다. 그러면서도 전경과 후경이 이상할 정도로 융화되고 있다.


[피아노를 치는 부인]
-1875년경
-캔버스에 유채, 93.4*74.3cm
-시카고 미술관
마르셀 프루스트는 르느와르의 <샤르팡티에 부인과 그딸들>을 보고 이렇게 쓰고 있다. [이러한 작품속에서야말로 후세 사람들은 상류 사회의 실내 생활과 귀부인의 전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의 사회에 유행하고 있는 초상화류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여기엔 있다.]
바로 그런한 점이 이 작품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레이스로 된 리본으로 테를 두른 실크 가운, 잘 닦여진 피아노 위의 금으로 된 촛대, 그리고 중후한 맛을 주는 주단, 이러한 것을 모두에서 19세기 파리의 부유한 가정의 생활양식 속에 시정(詩情)을 발견하고 있던 반면에, 상류계급측에서는 르느와르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을 경멸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 르느와르 측에서도 계급의식이나 사회적 장해에 대한 자각이란 것이 없었던 것같다. 이 그림의 모델은 호가의 젊은 아내 알리스이다

 

[첫나들이]
-1875~76
-캔버스에 유채, 63.5*50cm
-런던 국립회화관
이 작품은 르느와르가 한창 젊은 시절에 그린 것 중의 하나로, 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막 한사람의 여성이 된 딸이 모친과 함께 연극을 관람하러 나온 첫나들이 장면이다. 이처럼 처녀에서 한 여성으로 자라고 드디어 결혼할 무렵이 되면, 프랑스에서는 이와 같이 축하하는 뜻에서 나들이를 한다. 그것을 첫외출 또는 첫나들이라고 한다.
여기 있는 이 처녀도 축복을 받으며 새로 마춘 옷을 입고 꽃다발을 든 모습으로 극장을 특등석에 들어온 장면이다. 그 처녀의 옆모습을 그림의 근경으로 삼고, 아래층 객석이나 무대를 슬쩍 보는 장면을 원경으로 삼은 점 등은 매우 교묘한 구도이다. 거기에 처녀의 모자나 꽃다발의 화사한 빛깔에 의하여 아름다운 빛깔의 부조를 보여주고 있는 점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화면 전체가 조화 속에 알맞게 감싸여 있어서 매우 상쾌한 감촉에 넘쳐 있다. 모자와 의상은 푸른 색조가 특히 아름답다.

[조로를 든 소녀]
-1876
-캔버스에 유채, 100*73cm
르느와르는 인상파 화가들 중에서 언제나 인간을 주제로 해서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독특한 존재였다. 모네나 피사로 등이 외광을 바탕으로 풍경을 그리고 인간의 모습은 희박해져 가는 경향이었던 것에 반해, 르느와르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을 주제로 삼아 그렸다. 인상파가 만들어낸 새로운 외과의 세계에 즐겁게 살아가는 신선한 인간의 모습을 그렸던 것이다.
이 그림이 그려진 1875년 경은 인상파의 양식이나 기교가 이룩되었던 시대여서 이 작품에 안정감이 있는 자신이 넘친다. 젊은 시절 도기 위에 그림을 그리는 직업을 가졌던 그는 촉감적인 터치에 능했다. 귀여운 소녀가 조로를 들고 뜰에서 놀고 있다. 애무하는 듯한 터치가 우리들로 하여금 어린이와 가깝게 하고 동심으로 이끌어간다. 르느와르는 인간과 공감하는 것을 그의 그림의 기본으로 삼았다. 그가 인물을 감싸가고 있는 빛의 필촉은 터치 하나하나마다 그의 인간에 대한 애정을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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