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스에서]
-1881
-캔버스에 유채, 100.3*81cm
-시카고 미술관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온 1881년 여름, 짧은 시기이긴 하지만 르느와르의 그림에 인물과 배경을 맺는 호흡이 불가사의한 조화점에 달한 듯한 한 시기가 있었다. 대기 속으로 흩어지는 빛과 개개의 형상 표면에 떠도는 빛이 서로를 부르며, 미묘하게 빛나는 조용함이 화면위에 나타나 있었다. 르느와르의 생애에서 극히 드문 일이다. 이 작품은 그때의 작품 중에서 가장 잘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상파 화가들은 색채에 이르는 빛의 효과를 발견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그러한 인상파 화가들의 본질을 나타낸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전경의 형상은 모두 착실한 실체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뺨의 장미빛, 그리고 털실 뭉치의 푸른 빛이 조화를 이룬 가운데서도 개개의 형상은 자신의 빛을 잃는 일 없이, 어디까지나 질감을 지니고 있으면서 색채의 교향곡에 참가한다. 그런데 후경은 일변해 있다. 그러면서도 전경과 후경이 이상할 정도로 융화되고 있다.


[피아노를 치는 부인]
-1875년경
-캔버스에 유채, 93.4*74.3cm
-시카고 미술관
마르셀 프루스트는 르느와르의 <샤르팡티에 부인과 그딸들>을 보고 이렇게 쓰고 있다. [이러한 작품속에서야말로 후세 사람들은 상류 사회의 실내 생활과 귀부인의 전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의 사회에 유행하고 있는 초상화류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여기엔 있다.]
바로 그런한 점이 이 작품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레이스로 된 리본으로 테를 두른 실크 가운, 잘 닦여진 피아노 위의 금으로 된 촛대, 그리고 중후한 맛을 주는 주단, 이러한 것을 모두에서 19세기 파리의 부유한 가정의 생활양식 속에 시정(詩情)을 발견하고 있던 반면에, 상류계급측에서는 르느와르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을 경멸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 르느와르 측에서도 계급의식이나 사회적 장해에 대한 자각이란 것이 없었던 것같다. 이 그림의 모델은 호가의 젊은 아내 알리스이다

 

[첫나들이]
-1875~76
-캔버스에 유채, 63.5*50cm
-런던 국립회화관
이 작품은 르느와르가 한창 젊은 시절에 그린 것 중의 하나로, 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막 한사람의 여성이 된 딸이 모친과 함께 연극을 관람하러 나온 첫나들이 장면이다. 이처럼 처녀에서 한 여성으로 자라고 드디어 결혼할 무렵이 되면, 프랑스에서는 이와 같이 축하하는 뜻에서 나들이를 한다. 그것을 첫외출 또는 첫나들이라고 한다.
여기 있는 이 처녀도 축복을 받으며 새로 마춘 옷을 입고 꽃다발을 든 모습으로 극장을 특등석에 들어온 장면이다. 그 처녀의 옆모습을 그림의 근경으로 삼고, 아래층 객석이나 무대를 슬쩍 보는 장면을 원경으로 삼은 점 등은 매우 교묘한 구도이다. 거기에 처녀의 모자나 꽃다발의 화사한 빛깔에 의하여 아름다운 빛깔의 부조를 보여주고 있는 점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화면 전체가 조화 속에 알맞게 감싸여 있어서 매우 상쾌한 감촉에 넘쳐 있다. 모자와 의상은 푸른 색조가 특히 아름답다.

[조로를 든 소녀]
-1876
-캔버스에 유채, 100*73cm
르느와르는 인상파 화가들 중에서 언제나 인간을 주제로 해서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독특한 존재였다. 모네나 피사로 등이 외광을 바탕으로 풍경을 그리고 인간의 모습은 희박해져 가는 경향이었던 것에 반해, 르느와르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을 주제로 삼아 그렸다. 인상파가 만들어낸 새로운 외과의 세계에 즐겁게 살아가는 신선한 인간의 모습을 그렸던 것이다.
이 그림이 그려진 1875년 경은 인상파의 양식이나 기교가 이룩되었던 시대여서 이 작품에 안정감이 있는 자신이 넘친다. 젊은 시절 도기 위에 그림을 그리는 직업을 가졌던 그는 촉감적인 터치에 능했다. 귀여운 소녀가 조로를 들고 뜰에서 놀고 있다. 애무하는 듯한 터치가 우리들로 하여금 어린이와 가깝게 하고 동심으로 이끌어간다. 르느와르는 인간과 공감하는 것을 그의 그림의 기본으로 삼았다. 그가 인물을 감싸가고 있는 빛의 필촉은 터치 하나하나마다 그의 인간에 대한 애정을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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