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새해가 찾아오면 어김없이 신년계획을 세우는 걸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하얀 종이에 또박또박 번호까지 매겨가며. 하나, 새해에는 운동하겠습니다. 두울, 새해에는 영어 공부하겠습니다. 세엣, 새해에는 해외로 떠나겠습니다. 네엣, 기타 등등… 레파토리 하나 변하지 않는다.
동굴 벽에 사냥감을 그리던 고대를 지나 클릭 한 번으로 한우를 주문하는 21세기에 이르렀건만, 인간에게는 여전히 의식ritual이 필요한 모양이다. 새해-묵은해의 구분이 인위적인 숫자놀음에 불과할지라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 한 해가 시작되었음을 스스로에게 알리기 위해서라도 신년계획은 세워야 한다. 그렇다면 왜, 매년 똑같은 계획만 세우는 걸까?
운동, 좋지. 이왕 사는 인생 건강하게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몸짱’까지 된다면 두말할 것 없겠다. 영어 공부는 필수. ‘글로벌’ 시대, 영어는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해외여행도 물론. 언제까지나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처럼 살 수는 없잖아? 결국 우리의 신년계획은 한 마디로 압축된다. 바로 ‘자기계발’. 시중에 깔려있는 그 많은 베스트셀러들이 외치고 있는 그것 말이다.
물론 자기계발은 중요하다. 일찍이 공자님도 수신제가修身齊家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지 않던가. 문제는 모든 자기계발이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 우리 모두는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고 말하지만, 우리의 신년계획은 오직 ‘경쟁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행복도 충만도 성공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듯.
문화평론가 서동진의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는 이런 우리의 무의식을 분석한다. 좀 더 많은 자유를 주는 자리에 오르기 위해 강박적으로 자기계발 서적을 소비하며 ‘스펙’과 ‘경력’ 관리에 몰두하는 개인은, 결국 권력과 자본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사고․신체․행실을 변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도래한 실패는 자기책임과 자기실현의 문제로 환원된다. 결국, 우리의 무반성적인 신년계획이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기계발 논리의 극단은 이경숙 위원장의 ‘어륀지’ 발언에서 드러난다. ‘어륀지’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한국인은 경쟁력 있는 세계시민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걸까? 이런 걸 보고 요즘 친구들은 ‘열폭’(* ‘열등감 폭발’을 뜻하는 인터넷 조어)이라고 한다. 광화문 광장의 꽃밭 이름을 ‘플라워 카펫’이라 붙인 것 또한 마찬가지. 자격지심도 그런 자격지심이 없다.
6호선의 ‘디지털미디어시티’ 역은 또 어떤가. 본래 수색에 있어 수색 역이었던 곳이 ‘상암DMC’가 들어서며 슬그머니 이름을 바꾼 것이다. 그렇다면 이순원의 소설 <수색, 그 물빛 무늬>도 <디지털미디어시티, 그 물빛 무늬>라고 개정판을 내야 하나? 사실 ‘상암DMC’란 이름부터 이상하다.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것이다. ‘디트로이트 메탈시티Detroit Metal City’의 약자인가? ‘니가 내 치즈를 옮겼니? Did you Move my Cheese?’를 줄인 건가?
그러고 보니 궁금하다. 자기계발서 열풍을 주도했던 초대형 베스트셀러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이후 10년. 치즈를 훔친 범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건가? 사라진 치즈에 집착하기보단 진취적으로 새로운 치즈를 찾아 떠나는 게 건강한 삶의 자세라고는 해도, 일단 범인은 잡아야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2010년, 새로운 나의 신년계획은 이렇다. 말도 없이 치즈를 집어간 범인을 잡아내기. 모르긴 몰라도 부단한 자기계발을 통해 새로운 치즈를 찾으라며 우리 등을 떠밀었던 이와 동일인물이 아닐까 싶은데….
- 월간 인물과 사상 2010. 1
이 글은 순전히 상암DMC 때문에 쓰여졌다. 언젠가부터 DMC, DMC 하는 얘기가 종종 들려왔지만 그 이름의 실체를 안 것은 수색역이 '디지털미디어시티' 역으로 바뀐 후다. 그 전에는 정말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인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식해서 죄송합니다)
"Did you Move my Cheese?"는 사실 억지다. 왠지 우디 알렌이 떠올라서 한번 써봤다. ("글쎄 그 녀석이, 유대인이라고 나를 차별하는 거야. 나를 위아래로 훑어 보더니 이렇게 묻더라고. 'Did you eat?'" "그건 그냥 밥 먹었냐는 얘기잖아" "아니지, 잘 들어봐 "디드유잇? 디쥬잇? 뒤쥬잇? 쥬이싯? Jewish eat? 유대인도 먹냐는 얘기잖아.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지?")
나의 계획 : 2010년에는 징징대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