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삶은 핸들이 무거운 차와 같아서, 아무리 고민하고 생각해 봐야 방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생각만 하면 생각대로 되는 ‘비비디바비디-시크릿’은 TV와 베스트셀러에만 있는 얘기일 뿐. 정말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 앉아, 어김없이 넘긴 마감시간에 괴로워하며 원고를 쥐어짜고 있진 않았을 테니까.

  처음 회사를 그만 두겠다 마음먹은 것은 입사 1주년이 채 되지 않을 무렵이었다. 두 가지의 상반된 감정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곧 그만두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하나, 매달 나오는 월급에 길들여져 평생 이대로 고분고분하게 살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이 또 하나. “나는 살 수 없어. 네가 있어도, 네가 없어도”라던 누군가의 노랫말처럼, 그 사이데 끼어 한참을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는 그 문제가 발생한 당시의 의식 수준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던 게 아인슈타인이었던가. 필요한 것은 발상의 전환. 그래서 내가 떠올린 생각은 유예기간을 두는 것이었다. 매주 보던 주간지가 100권이 모이면 그만두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이다. 걱정과 불안을 모두 깨끗이 씻어준,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 '심플 플랜'이었다.

  90권이 모였을 때, 문득 찾아 온 어머니께서 집안 형편이 좋지 않다 말씀하셨다. 고민하지 않을 수 있나. 내가 생각하는 삶은 이런 것이 아니었고, 사는 대로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방황하며 한 달이 흘렀고, 잡지는 94권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결단을 미루고 있었다. 100권이 되기를, 그리하여 직관적으로 결단이 내려지기를.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잡지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폐간된 것이다. 잡지의 이름은 다름 아닌 필름 2.0. 벌써 지난 2월의 일이다. 그 이후에는? 보시다시피. 무너져버린 100권의 상징 아래에서 가정경제의 압박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박인환도 노래하지 않았던가. 아, 인생은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굿바이 스바루>는 그런 나의 통속을 철저하게 비웃는 책이다.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하고 분쟁 지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워싱턴 포스트’, ‘월드 리포트’ 등에 기사를 쓰던 덕 파인은 어느 날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생활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고 월마트에서 쇼핑을 하며,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돈을 벌되,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탄소 마일리지를 소모하는 뉴요커의 삶”에 안녕을 고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덕이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향한 곳은 뉴멕시코의 농장. 언젠가 유기농 아이스크림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들인 새끼염소 두 마리와 함께 뉴욕 촌놈 덕은 좌충우돌 농장생활을 시작한다. 가뭄과 홍수를 견뎌내고, 범람한 강을 자동차로 도강하고, 코요테로부터 염소와 닭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깐풍기 냄새가 나는 폐식용유 트럭을 운전하고, 목숨을 걸고 태양열 전지판을 설치하면서. 사서 고생도 가지가지다 싶다가도, 이 남자가 신나서 늘어놓는 이야기를 계속 보고 있자면 어느새 웃음이 터지고 만다. 친환경적인 삶을 살아야겠다는 열망 하나로 씩씩하게 살아가는 그가 건네는 웃음은 건강한 웃음이지만, 동시에 웃는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웃음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의 첫 문장을 다시 생각한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그 말 어디에도 ‘생각만 하면 생각대로 된다’는 부분은 없음을 새삼, 그리고 내가 여전히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한다. 그리 허황된 생각은 아니다. 다만 남들과 조금 다를 뿐.

  그렇지만 아직 준비는 필요하고, 그 전까지는 우리 사장님이 이 글을 보시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끝.


-  월간 인물과 사상 2009. 10
('주간지 100권이 쌓이면…')




처음 이 카테고리를 만든 것은 다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비디오 테이프를 다 감아 반납하는 것이 매너이듯. 이렇게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옛 서랍을 들추는 일이 언제나 그렇다는 것을 왜 잊었을까. 이건 그냥 독후감 수준의 글인데,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썼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2009년에 내가 한 일의 상당수가 그렇듯이. 특히 4번째 문단은 지워버리고 싶다. 내용이 문제가 아니다. 촌스러운 형식 탓이다. (<굿바이 스바루>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정말, 필름 2.0은 왜 망한거지? 박인환 전집도 품절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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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30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30 1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12-30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비슷하게 생긴 집에서 자고, 비슷한 철깡통속에서 일하며, 비슷한 회의를 하면서 나이를 먹어가는 걸까요?

활자유랑자 2009-12-30 15:41   좋아요 0 | URL
바야흐로 21세기인 거죠. 2020 원더키디까지 앞으로 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