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코앞이다. 1/4분기도 어느새 반이 지났다… 고 쓰다가 벌써 09 S/S 시즌이다, 라고 고쳐쓴다. 상처 입은 짐승이 제 상처를 숨기듯. (물론 바닥의 핏자국은 지울 수 없고, 나는 분기로 계절을 느끼는 직장인이다) 노스롭 프라이는 그의 비평론을 통해 봄을 희극과 병치했다. 마치 봄이 '너무 반짝반짝 눈이 부셔' 웃지 않을 수 없다는 듯. 그의 말에 따르면 겨울은 아이러니다. 아이러니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이 글의 첫 문장, '봄이 코앞이다' 같은 것. 누군가는 여즉 겨울을 사는 셈이다.

그렇지만 꼭 봄이 희극일 필요는 없다. 고급인 척 하는 커피잔에 그려진 꽃만큼이나 장식적으로 소비되는 엘리어트의 시구만 봐도 그렇다. 물론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일 필요 역시 없다. 그런 봄의 이중성을 가리켜 미야자와 겐지는 '봄과 아수라'라고 명명한다. (미리 덧붙이자면, 이 페이퍼를 예상이라도 한 듯 이상화는 그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한 부분을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라는 경고에 할애하고 있다… 나비 제비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겐지는 이런 말로 시집을 연다(序).  

나라고 하는 현상은 / 가정된 유기적이고 육체적 존재로서 / 하나의 파아란 조명입니다 / (모든 훌륭한 정신을 계승한 존재) / 풍경이나 모두와 함께 / 세상의 빠른 변화와 함께 명멸하며 / 끊임없이 확실하게 켜지는 / 모든 인과가 연속적으로 교착하는 / 존재로서 / 하나의 파아란 조명입니다 / (빛은 남고 전등은 소멸되고)

그것은 분명 어떤 종류의 정신주의이고(사실 나는 이 말이 조심스러우며 심지어 맞지 않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의 시에서 나는 캠벨을 본다. 도처의 신화를 통해 인간 정신이 공통으로 지녀 내려온 어떤 원형을 바라보는 것. '너는 이것을 할지니'라는, 바깥의 명령이 아닌 내면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 이 또한 어떤 종류의 정신주의이기에. 이것이 바로 캠벨의 세계다.  

여기엔 오해의 여지가 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아포리즘이 그렇다. "우리는 세계를 변화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 우리의 임무는 자신의 삶을 / 바로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슬픔에 /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라. // 우리는 이 세상의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지만, / 기쁨 안에서 사는 삶을 선택할 수는 있다"  

이런 종류의 사고에 대해 지젝은 우려를 표한바 있다.

이런 방향에서 등장하는 지도적인 인물은 프로이트의 적수였던 칼 쿠스타프 융입니다. 그를 중심으로 새로운 형태의 그노시즘이 열리고 있는데, 여기서 저는 어떤 위험이나 악(惡)을 감지하고, 이에 대한 치유책이나 대응방안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깊게 보아야 하는 것은 근대 자본주의와 테크놀러지가 낳은 새로운 형태의 정신주의, 새로운 정신주의적 태도인데, 이것은 단지 주변적인 현상도 아닙니다.   

미국에는 분명 이른바 테크노-그노시스(techno-gnosis), 그노시스틱-테크놀러지(gnostic-technology)를 향한 경향이 있고, 다시 말해서 가상현실과 디지털 세계를 삶의 가상화라는 그노시스적 논리와 연결짓는 경향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현실적 인간이 아니다. 현실은 빌어먹을 똥이다. 우리는 정신적-가상적-잠재적 존재로서, 우리 자신의 유한성에서 해방될 수 있고, 또 다른 현실로 자리를 바꿀 수가 있다...." (중략) 그러나 저는 이들이 말하는 계시나 영적 인식 등이 오늘날의 테크놀러지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관념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지젝 대담, 출처 : "철학과 정신분석의 만남", 로쟈 님의 서재 http://blog.aladin.co.kr/mramor/968590

융에 대한 캠벨의 부채를 생각하면, 지젝의 비판은 캠벨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하지만 이것은 부당하게 느껴진다. 하이데거 철학의 내적구조가 나치의 그것과 상응하는 구석이 있다고 해서(이건 일단 가정법인데 당연히 내가 잘 모르기 때문인데, 그렇게 따지면 이 페이퍼 전체를 가정법으로 볼 수도 있다) 하이데거의 철학을 전면 폐기해야 하는 건지, 혹은 '지젝의 라캉'이 싫다고 해서 라캉을 비난하는 것이 맞는 건지 나로서는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차라리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의 관계처럼 느껴진다. 거시세계를 설명하는 고전역학과 미시세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 하지만 그 두 이론 사이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 것처럼. 이를테면 주체와 구조 혹은 정신과 물질 같은 오래된 대립들 또한. 이런 대립을 넘는 '궁극이론'을 찾을 수 없는 이유는 과학자들과는 달리 소통을 위해 그들이 가진 것은 오직 ''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과학자들에게도 '궁극이론'은 요원하다…)

이제야 부록처럼 캠벨의 신간을 소개하자면, 재미있다. 기존의 캠벨 독자라면 요소요소에 삽입된 책 구절들이 읽기를 더욱 즐겁게 할 것이고, 캠벨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그의 세계를 그릴 수 있게 할 것이다. <신화와 인생>이라는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양념처럼 첨가된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는 때론 신나기까지 하다. 이를테면  

"일단 서부 연안에 도착하고 보니 나는 실업자 신세였고, 게다가 캘리포니아까지 왔으니 더 이상은 서쪽으로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다. (중략) 마침 나는 카멜로 가다가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아이델한테 잠깐 들러서 인사나 하고 가지, 뭐.' 그래서 나는 그녀를 찾아갔다. '잘 있었어?' '어, 지금 카멜로 가는 중이라고? 그럼 나도 같이 가. 우리 언니 캐롤이 거기 살거든. 우리 형부란 양반은 작가가 되는 게 소원이래. 내가 소개해 줄게.'  

그녀의 형부란 바로 존 스타인벡이었고,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같은 부분. 이것참, 신나는 얘기가 아닌가?

몇몇 언론에서 책의 출간을 알리며 첨언하듯 <신화와 인생>에는 소위 말하는 '자기계발'적 요소가 존재한다. 물론 작금의 '자기계발서적'이 인생에 비유된 낚시에 대해, 잘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며 목 좋은 곳으로 사람들을 데려가는 것과는(게다가 그곳은 사람들로 이미 바글바글하다!) 다른 의미에서다. 어떻게 낚시대를 다루고 미끼는 어떻게 고르며, 물의 흐름을 어떻게 보고 기다리는 동시에 행동할 것인지를 가르친다는 의미에서, 이 책은 '자기계발서적'이다.

나는 이 책의 교훈을 이렇게 들었다. "인생은 슬플지도 모른다, 세상을 바꿀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내면에 귀 기울인다면, 다른 사람의 요구가 아닌 자신만의 희열을 따른다면, 세상은 조금 더 살만할지 모른다." 이렇게 쓰고 보니 지젝의 비판을 더 잘 이해하겠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종교인들이 바보는 아니듯,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를 믿으며 살아간다. 세계관은 곧 그 사람의 믿음을 뜻한다. 나는 캠벨이 내게 한, 그 말을 믿고 싶다.

봄은 희극일 수도, 비극일 수도 있다. 하지만 봄이 봄 같지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건 올바로 살아있는 것이 아닐테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순간, 간절히 살아있고 싶은 것이다. 물론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나아가는 일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닐 거라고, 그저 상상해 본다.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내보내고, 아예 죽여 버려라.
그렇지 않으면 2년 뒤에
진작 그래야 했다며 후회하리라.

 
   

  

 

 

  

 

 

 

생각난 김에 인간본성에 관한 이해와 오해에 관한 책들을 모아 본다. (라고 쓰고 '간지'라고 읽는다. 꽤나 '포스'가 느껴지는 표지들이 아닌가? 정말 재미있는 것은 이 책들이 다 따끈한 신간이라는 거다!)  

1961년과 1962년에 예일 대학에서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심리 실험이 행해졌다. 연구자들은 지원자들에게 '기억과 학습에 관한 연구'라고 실험을 소개했다.  

실험에 들어가서 흰 가운을 입은 두 명의 실험 참가자 중 한 명은 '교사', 다른 한 명은 '학습자'의 역할을 맡았다. 학습자는 끈으로 의자에 묶여 종이에 적힌 단어들을 외워야 했다. 학습자가 단어를 외우지 못하면, 교사는 학습자에게 약한 전기충격을 가했다. 학습자가 단어를 틀리게 말할 때마다 교사는 실험 감독관의 지시에 따라 전압을 조금씩 높였다. 학습자는 처음에는 끙끙거리다가 전압이 높아질수록 점점 더 고통스런 비명을 질러댔다.  

교사의 역할을 맡은 참가자는 학습자와 연결된 전기충격 장치에 실제는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다. 학습자 역할을 맡은 참가자는 실제로는 아무렇지도 않으면서 고통스러운 척 연기를 했던 것이다. 이 실험의 초점은 '희생자'가 아니라, 전압 버튼을 누르는 '교사'의 반응을 살피는 것에 있었다. 과연 교사의 역할을 맡은 참가자는 무방비 상태에 놓인 인간에게 점점 더 큰 고통을 가하는 실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 <내 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50> 77~78쪽 중에서

우리 모두는 그 해답을 알고 있는데, 소수의 참가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교사'들은 '학습자'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감독관을 만족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전기충격의 강도를 높였다. 단지 실험이라는 명목으로 타인에게 이유 없는 고통을 줄 사람은 없을 거라 믿었던 관계자들은 물론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결과를 접해 들은 세계가 받은 충격은, 분명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슬픈 사실은, 인류 역사의 이해하기 힘든 사건들을 바로 이 실험이 설명해주고 있다는 것. 국내 최초로 완역 되었다.  

<권위에 대한 복종>이 작품성 높은 과학 서적이 아니었다면 밀그램의 실험은 그리 유명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마음의 작동 방식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미를 느낄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르완다의 비극과 1995년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카에서 일어난 대량학살, 이라크의 아부그레이브 교도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 모독 등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 <내 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50> 84쪽 중에서

<자유의지 환상의 진화>는 조금 더 과감한 시도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흔히 인간의 고귀한 특성으로 여겨지는 '자유의지'를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어렴풋하게나마 이런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을 알 수 있다. 예상대로 저자 프란츠 M. 부케티츠는 생물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이고, 그의 논증은 진화생물학을 바탕으로 펼쳐진다. '자유의지'에 대한 '환상'은 진화의 과정에서 생겨난 효과적인 생존전략이라는 것이다. (<클루지>를 함께 읽을만 하다) 

그렇다면 인간은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일까? 여기에는 하나의 반전이 준비되어있다. 저자는 인간이 진화과정에서 '우연히' 획득한 '자유의지라는 환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오히려 저자가 반대하는 것은 그 '환상'을 빼앗으려는 모든 규범이다. 우리를 억압하는 정치, 삶을 옭죄는 경제 한마디로 우리를 '자유의지'는 커녕 그런 '환상'조차 갖지 못한 존재로 취급하려는 이 시스템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 흥미로운 시도가 아닌가?

알프레드 아들러의 <인간 이해> 역시 국내에 최초로 번역되는 책이다. 프로이트, 융과 함께 현대 심리학을 창시한 인물로 평가받는다는 위상에 비한다면 너무 늦은 소개라고 할 수 있겠다. (심리학의 명저 50권을 소개하고 있는 <내 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50>에서는 이 책을 1번으로 소개하고 있다!) 제목 그대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고 있는 이 책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열등감'의 개념이 최초로 등장했다고 한다.  

문화적 엘리트에 속했던 프로이트와 달리, 아들러는 인간 본질에 대한 연구가 심리학자만의 영역이 아닌 모든 사람, 특히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나쁜 결과를 얻는 사람들을 위한 소중한 작업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아들러의 이러한 심리학 접근 방식은 상당히 대중적이어서, 이 책을 읽는 것은 '빈 대중학회'의 1년치 강의를 듣는 것과 유사한 가치가 있다. 그만큼 그의 책은 누구나 읽고 이해하기에 무리가 없다. - <내 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50> 45쪽 중에서

'문화적 엘리트에 속했던 프로이트'가 궁금하다면 <프로이트, 영혼의 해방을 위하여>를 읽으면 좋겠다. 사실 이 책의 저자는 <막스 베버, 이 사람을 보라>로 유명한 사회학자 김덕영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신분석학을 부전공한 사회학자'가 되겠다) 하여 저자는 서문에서 프로이트에 대한 입문서를 자처하지 않는다. 다만 "한국 사회라는 억압사회에 접근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정신분석학적 이론과 방법을 한 번 일반적인 수준에서 검토해보는 것이다" 라고.

지금 다시 책을 앞에 두고 생각하니 저자의 말은 단순한 겸양이 아닌, '입문서' 정도로 취급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의혹이 든다. 그렇다면 이 책을 더더욱 신뢰할 수밖에 없는데, 저자가 자신의 책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훌륭한 교양서이다. 프로이트를 잘 알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을 읽고 프로이트를 정복했다! 라고 생각하면 좀 곤란하겠지만…)
 

 

 

 

 

 

 

SERI 보고서 같은 표지를 하고 있는 <내 성격은 내가 디자인한다>는 MBTI에 기초한 책이다. 융의 성격유형 이론을 바탕으로 캐서린 쿡 브릭스와 그의 딸 이사벨브릭스 마이어스가 만들어낸 일종의 성격검사(Myers Briggs Type Indicator)인 MBTI를 통해 자신의 성격을 명확히 파악, 장점은 계발하는 동시에 단점은 극복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여담이지만, 꽤나 오래전 대학시절 '제대로' 받았던 검사에서 나는 INTP를 판정 받았고 얼마전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는 약식 문항으로 한 검사에서는 INFP를 판정 받았다. 이 책에 따르면 두 가지 유형의 특징은 한 마디로 다음과 같다.

"내향-직관-사고-인식(INTP) 유형은 16가지 성격유형 가운데 머리가 가장 좋은 수재 그룹이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들 수 있다."(106~107쪽)  

"내향-직관-감정-인식(INFP) 유형은 참으로 정적인 문학소녀와 같은 성격이다. 나는 이 땅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이 INFP 성격이 한 번 되고 싶다"(90쪽) 

이를테면 나는 '수재'에서 문학소년도 아닌 소녀가 된 셈인데, 저자의 바람과는 전혀 상관 없이 다시 INTP가 되고 싶은 마음만이 간절하다…)

우리 모두는 불안하고, 장동건도 불안하고, 그래서 장동건은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추천했고, 그리하여 보통은 날개 돋힌듯 팔려나가고 있고, 새롭게 책상 위에 놓인 <불안과의 싸움>이라는 제목은 솔깃하다. 불안이야말로 현대인의 조건이 아니던가. 하지만  

"지금 불안한 당신이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아직은 세상으로부터 살아남아 행복해질 기회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만약 불안마저 사라진다면, 모든 것을 잃은 후가 될 테니까 말이다. 다만 당신이 어떻게 불안을 극복하느냐의 문제일 뿐. 이 책은 당신에게 불안을 극복할 지혜로운 용기를 전해준다." - 김진세 | <심리학 초콜릿>의 저자, 정신과 전문의

그렇다면 우리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충분해 보이고 그에 더해 이 책의 저자인 앨버트 앨리스는 "1982년 임상심리 학자들을 대상으로 심리치료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설문조사한 결과, 프로이트를 제치고 인본주의 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로저스에 이어 당당히 2위를 차지했다. 주요 상담 심리 학술지에 가장 빈번하게 인용된 심리학자라는 명예로운 기록도 가지고 있다"고 하니 더더욱 쫑긋.

하여 오늘 책을 소개하며 마치 표준전과 처럼 뒤적이고 있는 <내 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50>을 뒤져보니 아니나 다를까! 로버트 A. 하퍼와 함께 쓴 <정신 건강적 사고(한국어 번역본 : 마음을 변화시키는 긍정의 심리학)>으로 50권의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팁을 하나 흘리자면, 인문MD가 되기란 참으로 쉬운데 <내 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50>같은 책이 몇 권 있으면 그만이고 없어도 MD로 일하는 중에 계속해서 출간 되어 나오므로 걱정할 것이 하나토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수치스런 과거 때문에 억압된 삶을 사는 사람, 뭘 해도 남보다 월등히 잘해야 속이 시원한 사람, 면접이 두려워서 일자리 구할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 애인에게 차일까봐 밤잠을 설치는 사람, 엘리베이터나 지하철에 공포증을 가진 사람, 사람들이 모두 자기 흉만 보는 것 같아서 눈도 못 마주치는 사람, 직장에서 프레젠테이션만 하려고 하면 앞이 캄캄한 사람 등등"이 이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한 4권은 더 사야할 것 같다…  

<증오의 기술>은 같은 출판사에서 연초에 출간된 <용서의 기술>과 겹쳐 읽으면 좋을 책이다. 후자가 "분노와 적대감을 억누를 때 발생하는 심각한 (정신적 / 육체적) 건강 문제를" 안고 사느니 용서 하라, 용서를 위해서는 이런 마음 가짐이 필요하다, 고 조언하는 형식이라면 전자는 그냥 다 잊고 '나는 용서하였노라'고 선언하는 것이 용서가 아니라는 것. 진정한 용서를 위해서는 반드시 분노의 표출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가스등 이펙트>와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 

"우리가 아무리 큰 상처를 받았어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느끼는 원망을 인정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일은 더 힘들다"(17쪽) 우리 모두는 이 말이 뜻하는 바를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결국 화살을 정당한 곳으로 돌리고 감정을 표출하는 것, 그럼에도 근본적인 관계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성숙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말일 테다. 실제 환자의 사례를 통해 진행되는 책은 읽는 이를 몰입하게 한다.  

<왜 똑똑한 사람이 멍청한 짓을 할까?> 이 제목이 뜻하는 바 역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흔히 '멍청하다'는 것은 '똑똑하다'의 반대말로 쓰인다. 그것은 대개 지적능력에 대해 사용되며, '똑똑한 짓'을 하는 사람을 '똑똑한 사람'으로 '멍청한 짓'을 하는 사람을 '멍청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한다. 물론 '똑똑한 사람'은 '똑똑한 짓'을 할 것이고, '멍청한 사람'은 '멍청한 짓'을 할 것임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이 '멍청한 짓'을 하면 어안이 벙벙할 수 밖에 없다.  

인지심리학과 응용심리학의 전문가인 공저자들은 상당히 흥미로운 예를 통해 (왜 코넌 도일은 홈즈를 죽이려 했을까? , 왜 클린턴은 애정행각이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왜 똑똑한 사람을 칭찬하면 바보가 될까? 왜 지능이 높은 사람보다 현명한 사람이 행복할까? 등등) 우리가 상상도 못했던 우리 심리의 맹점들을 짚어낸다. 지난 1월에 출간 되었던 <왜 사람은 바람을 피우고 싶어할까?>에 이은 'WHY' 시리즈의 두번째 책. (그럼 종종 멍청한 짓을 하곤 하는 나는 오히려 '똑똑한 사람'일까?) 

 

 

 

 

 

 

 

오늘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단지 이 페이퍼가 늦어서 조금은 늦게 소개하게 된, 하여 이미 많은 분은 사랑을 받고 있는, 그러나 조금 더 사랑 받으면 어떨까 싶어 올려 보는 책들이다.  

<번역의 탄생>은 좋은 책이다. 물론 어떤 위대한 이론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기본 전제다. (천문학적인 돈이 흘러가고 있는, 인류가 가장 높이 쌓은 바벨탑이라 할 '초끈이론' 또한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상기하자) 저자의 성실함과 애정이 차곡차곡 쌓인 '번역론'은 단지 번역을 업으로 삼은 이들 뿐 아니라, 한국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운 독서경험을 제공하고 있으니, 좋은 책이라고 말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달을 먹다>로 13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김진규의 <모든 문장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의 미덕은 여기저기서 빌어 온 '아름다운 문장'들로 책을 채우지 않았다는 것일 테다. 그녀의 다독은 독서를 위한 독서가 아니었기에, 그녀의 삶과 함께 펼쳐지는 문장들은 자연스레 녹아들며 읽는 이를 공명하게 한다. 개인적으론 이 책을 읽으며 존 스타인벡의 책 두 권을 보관함에 담아 두었는데 마침 캠벨의 인생여정에 등장한 그 이름을 다시 보고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드디어 오랜 예약판매를 그치고 출간 된 <지식 e - 시즌 4> 소식도 빼놓을 수 없겠다. 실제로 손에 쥔 책은 언제나와 다름 없었지만 더욱 신경쓴 편집이 일단 눈에 띄었고, 사랑해 마지 않는 '라 만차의 기사' 돈키호테 이야기로 시작해 '레판토의 외팔이' 즉 세르반테스로 끝내는 구성 또한 좋았다.  

음악으로도 유명한 '지식채널e' 답게, 영상을 더욱 빛냈던 음악들을 모은 컴필레이션 CD도 발매된 모양인데 수록곡이 만만치 않다. Travis, Franz Ferdinand, Lou Reed 등 반가운 이름들이 한 가득. (개인적으로는 이런 노래가 떠오른다. "너무 짜릿짜릿 몸이 떨려 知知知知知~")

이 책은 남은 것들, 여분의 것들, 제외된 것들을 바라보는 일이 곧 지식이라고 말한다. 그것들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상상하는 일... 그런 생각과 상상만으로 다른 세계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하는 책.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아름다운 책이다. 무용해 보이는 그 모든 상상들이 이 세계를 바꾸리라. - 김연수, 소설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으로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했던 피에르 바야르의 두번째 책(물론 번역서 기준이다)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은 애거서 크리스티와 그의 독자들을 겨냥하고 있는 것.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충격적인 (혹은 속임수 같은) 반전을 에르퀼 푸아로의 해석망상으로 나아가 크리스티 자신의 해석망상으로 바라볼 수 있음을 지적하며, 새로운 (혹은 또다른 해석망상적인) 독해를 제공한다.  

이렇게 말하니 책이 재미 없어 보이는데… 책은 무척이나 재미있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와 그 장르의 법칙에 충실하게 작가의 의도에 따라 읽기를 거부한 바야르는, 추리소설을 치밀하게 따라 읽으며 마치 새로운 추리소설을 하나 쓰듯 이 책을 쓰고있다. 꼭 애거서 크리스티와 푸아로의 팬이 아니더라도, 장르 팬이 아니더라도, '읽기'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 책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오늘 마지막은 발터 벤야민으로. 딱히 이유는 없다. 실은 얼마 전에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읽었기/보았기 때문일지도. 이건 좀 부끄러운 얘기인데,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리속으로 "발터 벤야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말이 계속해서 떠돌았던 것이다. (그런 떠돌이 개 같은 생각도 결국엔 이렇게 길어 꾸역꾸역 써넣고 마니 통탄할 일이다.)

왜 하필 이 책이냐, 고 묻는다면 가장 솔직한 대답은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이 이 책이기 때문이라 하겠는데, 곰곰 생각하면 이 글 전체와 조응하는 내적논리가 존재함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이를테면 '무의식은 언어적으로 구조화 되어 있고', 말은 말을 낳으며, 결국 여기까지 쌓아온 말장난과 무의미한 말의 연쇄가 결국 이 책을 불러냈다고 밖에는.   

사실 나는 벤야민이 어렵다. 그를 좋아하는 건 아마도 이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 멋진 이름이긴 하다. 벤자민 버튼도 귀여운 이름이다)

이 책은 지난 겨울의 초입, "인간과 언어의 제문제"라는 개인적인 프로젝트로 식탁 옆에 쌓아 둔 책들 중 하나이다. (나머지 책들의 목록은 대략 이렇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 바흐친의 <말의 미학>,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 란다 사브리의 <담화의 놀이들>, 아리스토텔레스(천병희 역) <시학>, 르네 지라르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노스롭 프라이의 <비평의 해부>) 

나는 아마도 겨울잠을 자려는 곰처럼 책을 쌓아 놓았거나, 바벨탑이라도 세우려던 모양이다. 하지만 인간은 겨울잠을 자지 않고, 바벨탑을 쌓으려는 자들은 저주를 받았으니 나 역시 나와는 다른 말을 구사하는 책들에 놀라 사실 많이 펴보진 않았다. (아마 그때 저주를 받아 INFP가 되었나 보다) 새봄에는 "인간과 언어의 제문제"를 마침내 풀어보길 희망하며 씁쓸하게 이 글을 끝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기호는 사물들이 착종된 곳에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수다 속에서 언어를 노예화하는 일에 이어 그것의 불가피한 결과로서 어리석음 속에 사물들을 노에화하는 일이 등장한다. 노예화를 뜻하는 사물로부터의 이러한 이반 속에서 바벨탑 건축의 계획과 그와 더불어 일어난 언어 분규가 생겨난다." - 92쪽 중에서  

"진정으로 그러나 누이여 오늘은 나도 너무 괴로우니까 수양버들꽃도 따지 않는다" - 미야자와 겐지, '연애와 열병' 중에서


* 봄이 빨리 오기를 바라면서,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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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계란 2009-03-03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에 소녀시대!!! 그 디테일이 참으로 정적인 문학소녀스럽군요! 이번 주도 잘 읽고 갑니다.

활자유랑자 2009-03-03 18:04   좋아요 0 | URL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 고맙습니다 ^^

안티크 2009-02-27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야말로 소녀시대 열풍이군요. ^^;

활자유랑자 2009-03-03 18:04   좋아요 0 | URL
GEE GEE GEE GEE BABY BABY 라고 할 수 있겠죠? ;

alice1101 2009-03-02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활자유랑자 2009-03-03 18:04   좋아요 0 | URL
또 놀러 오세요~ :)

ego2sm 2009-03-0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 네이버 오픈캐스트에 링크 담아갈게요.
http://opencast.naver.com/EG788

활자유랑자 2009-03-03 18:05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

섬연라라 2009-04-10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비 제비도 노력하고 있습니다......에서 빵 터지고 갑니다. ㅎ_ㅎ

활자유랑자 2009-04-13 13:17   좋아요 0 | URL
노력은 하고 있는데... 많이 부족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