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엇'이 세상을 떠난지도 어느덧 3년이 지났다. 당시 그의 나이 176세. 공식적인 세계 최장수 기록이었다. 문득 그가 아직 살아있다면 어떨까, 생각하게 된다. 다윈 탄생 200주년을 맞아, 179세가 되었을 그 늙은 거북은, 자신을 문명세계로 데려온 인간을 어떻게 기억할지 몹시 궁금해진 것이다.
황량하고 또 다채로웠을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유년기를 보낸 후, 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친구들과 이별.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게 된 인간 세상에서 171년을 산 늙은 거북의 마음이라니. 아마도 그건 어떤 회한이 아닐까.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어쩌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친구"라며 쿨하게 웃을지도 모르겠다)
새롭게 출간 된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다윈 이후>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한다. '해리엇' 보다 4년 먼저 세상을 뜬 이 탁월한 진화생물학자가 살아 다윈 200주년을 맞았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그것 역시 일종의 회한이 아닐까. 죽은 이를 생각하는 일이 대개 그러하듯이.
물론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도 있다. '다윈의 불독'을 자처하는 리처드 도킨스가 그 대표. 기념비적인 저작 <이기적 유전자>는 '해리엇'이 떠난 2006년 30주년 기념판을 찍었고, 그는 여전히 중요한 저작들을 쓰고 있는 것이다.
굴드와 도킨스는 모두 진화론의 토대 위에 선 학자이고, 도킨스는 <다윈 이후>에 대해 "스티븐 굴드의 문체는 우아하고, 박식하고, 재치 있고, 일관성 있고, 힘차다. 또 내가 볼 때 그는 대체로 옳다"라는 평을 하고 있지만, 실상 그들은 여러 면에서 다른 학자였다. 진화론에도 여러 갈래가, 여러 해석이 있는 탓이다. 그래서 나온 책이 바로 <다윈의 식탁>. 진화론의 대가들이 펼치는 가상 토론을 통해 진화론의 면면을 유쾌하게 살피는 멋진 책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마도 가장 명쾌한 서평일 한겨레의 "김명남의 과학책 산책"을 참고)
아무래도 살아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더 크기 때문일까. 누가 맞고 누가 틀리냐를 떠나 오늘날 미치고 있는 영향을 생각하자면 도킨스의 손을 들어줘야 하겠다. 오죽하면 지난 연말 시상식에서 'Tell me'를 편곡해 선보인 빅뱅 권지용은 "이기적인 유전자 / 우리가 부럽나"라는 가사의 랩을, 오는 3월 1일 내한하는 트래비스는 '이기적인 제인(Selfish Jane)'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불렀을까.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관련 서적'은 굴드의 <풀하우스>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알라딘에서도 작은 이벤트를 마련했다. 이름하여 '다윈 특별전'.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다윈전' 티켓을 비롯해 이런 저런 경품을 내건 이벤트. 경품 중의 하나는 해리엇을 닮은 바다거북 인형이다! 사실 저 인형은 내가 갖고 싶은데, 어떻게 안될까? >>> 이벤트 보러가기
오바마 취임을 맞아 특별히 고른 두 권의 책은 <제국은 무너졌다>와 <촘스키,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다>였다. 어제 오전까지 알라딘 국내도서 페이지 탑을 장식하고 있던 두 책은 이런 모양이었다. (좀 경박하지만 이렇게 웃어야겠다. "ㅋㅋㅋ")
프랑스의 자크 사피르가 쓴 <제국은 무너졌다>는 제목의 단언이 그러하듯이, 이미 끝난 '미국의 세기' 그 이후를 고민하는 책이다. 물론 그 주체는 유럽이 되어야 한다고 유럽인들은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우리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반면 촘스키는 버사미언과의 최신 대담을 통해 '미국의 세기' 동안 미국이 저질렀던 악행들을 고발하며 강도높은 비판을 멈추지 않는다. 문득 과연 촘스키가 얼마나 더 많은 책을 써야 미국은 회개할지 궁금해지지만, 아무래도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듯하여 적이 씁쓸하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을 바라보며 현실적인 틀로는 설명되지 않는 거대한 '음모'를 느낀다면 <음모의 네트워크>를 권한다. 프리메이슨과 나치즘, 케네디 대통령과 마틴 루터 킹의 암살, CIA와 FBI, MI5, MI6, 모사드와 같은 첩보기관들의 활동이 모두 '세계를 지배하려는 숨은 세력'과 관계하고 있음을 치밀하게 추적하는 '음모론의 완결판'이라 할 만 하다. "그럼 그렇지, 그렇지 않고서야 세상이 이럴 수 있어?"라는 시원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도…
다시 오바마 이야기로 돌아가자. 토머스 프리드먼이 <코드 그린>에서 지적하고 있듯, 이제 '환경'은 '먹고 사는 문제'의 수준으로 내려온 것 같다. 더이상 "아무리 지구의 마지막 날이 가깝다고 해도, 당장 내일 보단 가까울까!"라는 당당함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바마-미국 또한 추세에 발맞춰 '녹색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라 하고. (물론 유행이라면 뒤지지 않는 '패셔니스타' 대한민국도 '녹색'의 중요성을 간파, '녹색뉴딜'을 발표한 바 있다. 그에 대한 진중권의 논평을 보려면 여기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녹색'은 환경단체의 단어였다. 그리고 물론 그런 단어들이 대개 그렇듯 우리는 듣지 못했다. 그럼 이제 녹색이 '유행'이 되었으니 "OK, 대성공!"인 걸까? 과연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을 <녹색성장의 유혹>에서 볼 수 있다. 미국 저자의 책이긴 한데, 오바마는 이 책을 봤을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모 주간지 기자 분을 만난 일이 있다. 즐겨보던 잡지의 폐간도 있고 해서, 주간지 시장의 상황을 묻자 인상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간지는 생필품, 주간지는 사치품"이라고 여긴다는 것. 꽤나 그럴듯한 대답이 아닌가. 요즘에야 다들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지만 예전엔 집집마다 신문을 봤다. 그런 신문의 '1면 기사'라면 당대의 관심이 집중된 커다란 뉴스일 터.
그렇기에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의 기획은 영리하다. 특히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1884 ~ 1945의 기간을 다루고 있는 1권에서 우리는 "안중근이 도시락 폭탄을 던지던 그날", "3월 1일 만세를 부르던 그날", "일본이 항복하던 그날"의 뉴스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물론 일제 강점기의 신문은 (마치 언젠가의 촛불에 대해 어떤 신문들이 그러했듯) 3.1 만세 운동에 대해 "각지 소요 사건 - 경성을 위시하여 각 지방 소동, 황평양에서는 폭행이 심하다" 같은 기사 밖에는 내보내지 못했지만, 이미 역사를 알고 있는 우리는 '말해진 것'은 물론 '말해지지 못한 것' 까지 미루어 볼 수 있는 것이다.
<17세기 조선 지식인 지도>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제목 그대로 '17세기 지식인들의 삶과 생각'이다. 굳이 대중역사서 시장을 나누자면, 팩션을 비롯한 '흥미 위주'의 역사서와 조금 더 진지한 고민을 담은 역사서로 나눌 수 있을텐데 (문장의 앞을 나는 이미 '굳이'라는 부사로 시작했다) 후자의 책들이 자꾸만 과거의 지식인들을 오늘로 소환하는 이유는 무얼까?
그건 아마도 책에서 설명하고 있듯 ("17세기는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과 함께 막이 올랐다. 지는 명나라와 뜨는 후금, 오랜 내전을 끝내고 도쿠가와 막부 체제를 수립한 일본,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 또한 제2의 창업이냐 아니냐의 기로에 서 있었다.") 오늘의 상황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기 위함이 아닐까. 역사에서 답을 찾으라는 오래된 격언처럼, 오늘을 닮은 어제를 통해 다시금 오늘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인기 시리즈 도서'의 최신작 출간 소식도 알려야겠다.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 13>이 나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1월 21일 기준으로, 지금 사면 저자 사인본을 받을 수 있다. 선착순 한정수량이므로 서둘러야 할지도…)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 완역본도 3, 4권이 함께 나왔다. 2월 말이면 5, 6권이 나와 완간될 예정이라고.
오늘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모두 '공부'에 관한 책이다! (어쩐지 가슴이 뜨끔)
제목부터 노골적인 <인문학 스터디>를 지난 편집장의 선택을 통해 나는 이렇게 소개했다.
"인문학 공부에 있어서 언제나 중요한 것은 커리큘럼이다. 소설이나 자기계발서에 질려 인문학을 읽어볼까 기웃거리는 이들이 선뜻 손내밀지 못하는 것도, 지식에 대한 욕구에 불타 책을 사들이던 이들이 어느 순간 막막해 하는 것도, 모두 이 커리큘럼이 부재한 탓.
미국에서 출간 된 <학생들을 위한 핵심 커리큘럼 안내(A Student's Guide to the Core Curriculum)>를 강유원을 비롯한 인문학 전공자들이 번역한 <인문학 스터디>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그런 커리큘럼의 부재를 해소해 주기 위해 출간된 책이다. 화려한 수사가 넘치지도, 현학이 과시되지도 않는 그저 작은 책일 뿐이지만, 단지 한 권의 독서로 끝나지 않는 인문학으로의 입문을 친절하게 돕는다."
하지만 물론 다른 평가는 가능하고, 여기에 그런 평가가 있다. (알라딘 독자 '사량'님의 리뷰의 일부분을 옮긴다)
"여기저기서 주목받는 책이어서 잔뜩 기대하고 들춰보았는데, 기대와는 달리 크게 실망스럽다. 160쪽밖에 안 되는 분량으로 고대 그리스부터 근대에 이르는 서구 인문학의 각 분야를 개관하고 추천도서 목록을 정리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작업임을 읽어 보면 금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각 분야의 소개는 지나치게 개괄적이고 간략한데다가, 굉장히 전통적이고 보수적 시각으로 일관되어 있다. 서구중심적인 거야 그렇다 쳐도, 20세기 중반 이후에 등장한 다양하고 풍성한 이론적 성과들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오히려 이에 대단히 적대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모습은 이 책이 옹호하고자 하는 인문학과 교양의 가치를 무척 의심스럽게 한다. "
사실 책을 처음 받았을 때 굉장히 얇다는 점, 그리고 주로 고전에 그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이 우려 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량님의 리뷰에 댓글을 남긴 'limelight'님이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어떤 커리큘럼도 모든 커리큘럼을 포괄하진 못한다" 같은 무뚝뚝한 말이 마음에 닿았다. 그건 일종의 지적 성실성이 아닐까. 모든 책에는 호불호가 갈리게 마련이지만 나는 여전히 이 책이 좋다. 커리큘럼은 커리큘럼일 뿐이고, 그것이 가만히 밝혀주는 그 '길'이 썩 나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자크 라캉 세미나 11>에 대해서는 사실 할 말이 많지 않다. 나 역시 소문으로만 라캉의 이름을 들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미나>는 앞으로도 계속 출간 될 예정이고, 또 근간에 <에크리>도 예정되어 있다고 하니 그저 반가울 뿐.
<논어 한글 역주>도 최초로 시도되는 방대한 역주작업이라고 한다. 마치 "도올 김용옥 선생에 대한 호불호로 성급히 판단하면 섭섭해"라고 말하고 있는 느낌의 책이라고 할까. 출판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21세기는 논어의 세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중요한 고전의 중요한 번역임에 틀림 없다.
혹시나 "나는 내 눈으로 직접 고전의 참맛을 느끼고 싶다!"라고 생각하실 분을 위해 고른 책은 <이이화의 한문공부>다. 이이화 선생의 이름을 달고 있는 이 책은 제목부터 믿음직 하다. 이 책은 일견 '자습서'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일부러 의도된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설 읽듯이 그냥 훌훌 읽어 버리고 마는 나 같은 사람 때문인듯;) 언제 한문을 공부해서 고전을 읽을까,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일단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 아닐까, 라고 설에 어울리는 덕담으로 마무리.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몇 권만 더 소개해야겠다.
인문학 시리즈 치고는 너무나 멋진 표지를 가지고 있는 'Critical Thinkers' 시리즈의 니체 편이 출간 되었다. 사실 이번 편의 표지는 조금 평범한 편인데, 롤랑 바르트 편과 함께 가장 멋진 표지를 가진 책은 아마 <모리스 블랑쇼 - 침묵에 다가가기>가 아닐까 한다. (제목 또한 심금을 울린다…)
그런데 모리스 블랑쇼의 선집이 출간 된다고 한다! (이러니 페이퍼를 멈출 수가 없다) '모리스 블랑쇼 선집 4'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기다림 망각>이 바로 그것. 시작을 4로 하는, 조금 이상한 출간이지만 적어도 앞으로 세 권은 더 나올 것임을 미루어 알 수 있게 해 오히려 반갑다.
멋진 표지로 다시 돌아가보자. 실은 오늘 멋진 표지의 인물 시리즈를 또 만났다. 바로 프레시안북의 'Revolutions' 시리즈가 그것. 호치민, 로베스피에르, 마오쩌둥, 트로츠키, 예수의 총 다섯 편이 동시 출간 되었다. (근간으로는 카스트로, 토머스 제퍼슨, 시몬 볼리바르, 토머스 페인, 마르크를 예고하고 있다) 시리즈명에서 느껴지듯 세기의 혁명가들의 사상을 선별&편집된 그들의 글을 통해 조명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여 <예수 : 가스펠>의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다! oh, my god…)
별이 잔뜩 들어간 독특한 표지는 영국의 &&<d 가 맡았다. 그 뿐이 아니다. 각 권의 서문을 쓴 이들은 다름아닌 슬라보예 지젝과 테리 이글턴, 월든 벨로! 오늘 받아 자세한 내용을 살피지는 못했지만 표지와 지젝, 이글턴의 이름만으로 기대감은 120%. 자세한 내용은 아마 다음 주 이 자리에서 다룰 수 있을 것 같다. (아, 책은 언제나 많다!)
* 지난 주에 예고한 대로 다윈 특집으로 시작한 이번 주 만선.
* 설 연휴 이후로 (개천절과 주말이 모두 겹친) 추석 전까지 휴일이라곤 '어린이날' 달랑 하루 있는 가혹한 현실 앞에서도 이렇게 지지 않고 배는 출발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