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당신은 침대에 누워 있다. 내일은 결정적인 회의나 발표, 시험과 같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을 해야 한다. 때문에 당신은 오늘 밤 충분히 쉬어야 하는데도 밤새 잠이 오지 않는다.
천천히 깊은 숨을 들이마시거나 평화로운 자연 풍경을 떠올리며 긴장을 풀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지만, 머릿속에서는 오히려 당장 잠들지 못하면 내 경력은 끝장이라는 생각만 맴돈다. 그래서 그대로 누운 채 점점 더 긴장감이 더해 간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다가 2시 30분경에 당신은 머릿속을 파고드는 완전히 다른 일련의 새로운 생각들에 진땀을 흘리게 된다. 온갖 걱정과 더불어, 당신은 갑자기 옆구리에 느껴지기 시작한 불분명한 통증, 최근 들어 느끼는 피로감, 잦은 두통 등에 생각이 미친다.
'이건 병이야, 난 죽을 병에 걸린 거야! 아, 왜 이런 증상들을 진작 알지 못했을까? 왜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왜 의사를 찾지 않았을까?'라는 깨달음이 머리를 스친다.
새벽 2시 30분에 이런 일을 겪을 때면, 나는 내가 뇌종양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곤 한다."
미국 현지에서 "제인 구달에다 코미디언을 섞으면, 새폴스키처럼 글을 쓸 것이다"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로버트 새폴스키의 고백에는 분명 엄살이 섞여있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이런 상황을 알고 있다. 스트레스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할 뿐 아니라, 이미 생활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스트레스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에, 그, 스트레스는 STRESS겠죠"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겠지만. (김훈은 이런 동어반복이야말로 언어와 사고를 병들게 한다고 했다!)
직설적인 제목과 자극적이며 동시에 심층적인(?) 표지를 가진 이 책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나의 친애하는 적"(My Dear Enemy)이 아닐까. 아무리 "워커홀릭에 빠진 차가운 도시 남자(하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한)"라고 할지라도, 스트레스 없는 '현대 생활'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으니까. 지긋지긋하지만 떼어낼 수 없는 '(현대)인간의 조건'이라면, 피하기 보단 알아야 할 터.
그만큼 스트레스가 "좋다 / 나쁘다 / 이용해라 / 없으면 치매걸린다" 등등 다양한 연구결과도 말도 많지만, 정작 스트레스가 정확히 무엇이고, 우리 몸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같은 강도의 스트레스라도 개개인에게 어떻게 다른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지 등을 '과학적'으로(동시에 흥미롭게) 전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 피상적이고 감상적인 접근으로 쓸모 있는 해결을 찾기는 요원할 터. 하여 쌓이는 오해들, 잘못된 상식들, 당면한 패배.
결국 뻣뻣한 목으로 오늘 밤도 잠못드는 당신, 동어반복을 끝내고 싶은 당신, "꽉 쥐어짜는 삶 외에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 직면한 당신이 집어들어야 할 한 권의 책. 바로 <스트레스>다.
* 이 책은 분명 생물시간에나 들었음직한 (심지어는 그때도 듣지 못했고, 그 이후로도 듣지 못했던) 용어들이 난무하는 과학 책이고, 몽롱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가볍고 달콤한 위안을 주는 책이 아니다. 참고로 30년 동안 스트레스를 연구해 오신 신경 내분비학자이자 영장류학자인 저자 새폴스키 선생의 말을 들어보자.
"당신은 '이 책 말고 <디팩 초프라 박사의 스스로 배우는 건강법'을 샀어야 했는데.'하고 후회하며 위에 나온 용어들에 압도당했거나 겁이 나는가? 제발 호르몬 이름을 외우려는 꿈도 꾸지 말기 바란다. 중요한 호르몬들은 앞으로 자주 언급될 것이고, 당신은 곧 편안하고 정확하게 일상적인 대화 또는 좋아하는 사촌의 생일 카드에 이것들을 자연스럽게 끼워 넣게 될 것이다. 내 말을 믿어라."
* 당신의 스트레스 지수가 궁금하다면 '세브란스 건강증진센터'에서 제공하는 '스트레스 측정 테스트'를 권한다. 당신이 진정으로 '문명인'이라면, 그 결과에 당황하지 않고 묵묵히 이 책을 사게 될 것이다.
스트레스 얘기가 나온 김에 좀 더 해야겠다. <식량 전쟁>은 책 뒷표지에 써있듯 "지구상에 아직도 광범위한 기아가 존재함에도 전 세계적으로 비만이 유행병처럼 번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농작물 유통으로 이득을 얻는 것은 누구인가? 유통업체를 만들고 지배하는 것은 누구인가? 위의 모든 질문들은 어떻게 연관되는가?"를 묻는 책이다.
오랫동안 식량주권 문제를 연구해온 저자 라즈 파텔이 보기에 비만과 기아는 결코 다른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레토릭이 아니라, 세계의 기아를 근절한다면 비만과 심장 질환을 예뱡할 수도 있다는 좀 더 근원적인 층위의 주장이다. 왜곡된 유통구조를 통해 이득을 챙기는 글로벌 유통업체들이 장악한 '생산 그물'이 기아와 비만 모두의 원인이기 때문. 이 책이 고발하는 것은 그런 유통업체들의 악덕이지만 결국 우리의 악덕이기도 하다. 우리의 의심 없는 소비가 그들을 살찌우고 있는 것이다.
* "이 책은 우리를 놀라게 하고, 화나게 하고, 일깨워주는 등 다양한 것을 알게 해준다"는 인디펜던트 지의 서평처럼, 이 책은 분명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주지만,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아닐까. 참고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저자 장 지글러의 새 책 <탐욕의 시대>가 출간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일단 다음 주로;)
만약 당신이 <식량 전쟁>의 논의에 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문명화'된 '차가운 도시인'이라면 <6도의 악몽>은 어떨까? KBS와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을 통해 방송 되었던 무시무시한 다큐멘터리 '지구 온난화 6도의 악몽'의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이미 다큐를 본 사람들을 알겠지만, 정말로 끔찍한 이야기다.
개체의 멸종, 나아가 종의 멸종이란 살아있는 생명에게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커다란 스트레스겠지만 고맙게도 인간은 적응과 망각의 동물. 환경오염 특히 지구온난화와 관련하여 아무리 최악의 시나리오들이 쏟아져 나온다 한들 '프릭쇼freakshow'도 한 두 번이다. 특히나 요즘같이 자극적인 영상과 정보들이 넘치는 시대, 개인의 삶을 적절히 영위하기 힘든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화석 연료의 고갈 또는 화석 연료의 과다한 사용으로 인한 지구의 멸망 같은 시나리오보다는 눈앞의 기름값이 걱정일 수밖에.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지구 멸망까지 필요한 것은 딱 6도의 온도 상승일 뿐인 것이다.
- 1도 상승 :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작은 동식물들이 슬며시 멸종한다. 미국의 대평원을 비롯한 기존의 곡창지대들이 파멸하고, 식료품 값의 국제적 상승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기 시작한다. 흙을 붙잡아줄 식물이 줄어들면서 모래폭풍이 내륙 곳곳을 유린한다. 산호초가 붕괴되고 극지대가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하여, 저지대들과 섬나라들이 침몰한다. 하지만 이는 단지 모든 재앙의 시작이다.
- 2도 상승 : 비를 동반하는 몬순 기후의 성격이 변하면서 초거대 가뭄이 발생한다. 더위에 지친 노인들이 수력발전소의 가동중단으로 정전된 집에서 죽어간다. 농업은 붕괴되고, 실직한 사람들에게는 물 한 병 사마시는 것도 고통이다. 높은 산의 빙설 같은 수원의 고갈로 물 또한 귀중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새로운 북극 항로가 열리지만, 미래의 인류는 북극곰이 보고 싶으면 반드시 동물원에 가야한다.
- 3도 상승 : 더위로 인해 인간 생존의 한계점에 도달했다. 저수지의 물이 증발하고, 굶주림과 거주지의 사막화가 곳곳에서 빈발한다. 건조해진 아마존 우림지대에 사상 최악의 화재가 발생, 숲 전체가 전멸한다. 해안 지역은 '슈퍼허리케인'에 파괴되고, 열대 지역은 벌레들에게 점령된다. 뜨겁고 메마른, 혹은 침수된 지역의 주민들이 식량과 살 곳을 찾아 대이동을 개시하고, 가난한 나라의 고통 받는 사람들과 '원인을 제공한' 부유한 나라의 사람들이 갈등한다.
- 4도 상승 : 거대한 제방이나 방벽도 소용없이, 바다에 면한 모든 지역이 수몰되고, 불어난 바닷물에 생활터전을 잃은 수억 명이 피난길에 오르기 시작한다. 해안 지역 파멸에 따른 경제력 손실과 사회불안 때문에 재건은 고사하고, 난민이 된 사람들을 부양하거나 새로운 거주구역을 건설하는 일마저 요원하다. 한국에서도 강수량이 4분의 1정도 늘어나지만, 육지의 기온도 상승하여 땅이 건조하다. 비교적 시원한 북쪽 지역사회가 피난 온 남쪽 사람들로 붐비면서 법과 질서가 무너진다.
- 5도 상승 : 지구를 둘러싼 가뭄의 띠가 확산, 한국과 일본, 동남아시아도 건조대에 편입된다. 바닷물이 따뜻해지면서 메탄하이드레이트가 분출되고, 이로 인해 해양사면이 붕괴되어 거대한 파도를 동반한 쓰나미도 발생한다. 국제 무역 시스템은 소멸되고, 자본시장도 붕괴하면서 대공황이 일어난다. 북극권을 확보하려는 중국과 미국이 러시아와 캐나다를 침공하고, 식량과 물을 확보하려는 생존자들 간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진다.
- 6도 상승 : 갑작스런 심한 온실 상태에 적응하는데 실패한 동식물이 죽어간다. 해수면이 뜨거워져 바닷물의 흐름과 순환이 중단되고, 메탄하이드레이트 구름이 폭발할 때마다 그 밑의 생물이 증발한다. 죽은 동식물의 사체가 썩으면서 유독한 황화수소도 발생한다. 오존층은 완전히 파괴, 지표면에 방사되는 자외선의 양이 크게 늘어난다. 바야흐로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의 대멸종이 진행된다.
* 이상 모두 <6도의 악몽> 중에서 인용
이 모든 것을 그저 흥미진진한 재난영화 혹은 SF영화의 시놉으로 읽는다면 당신이야말로 최고의 '문명인'이다. 참고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에 따르면, 지구는 이번 세기 말까지 최대 6℃까지 온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내일도 모르는데 이번 세기는 너무 멀다, 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1~2도만 해도 충분히 고통스럽지 않을까? 물론 이 시나리오대로 된다는 보장은 사실 없다. 아무리 과학적 근거를 탄탄히 쌓아도 시나리오는 시나리오일 뿐이니까. 작은 가능성, 압도적 파멸. 선택은?
이렇게까지 했음에도 도무지 와닿지 않는 '현실적인' 당신이라면. 좋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결혼이 지배하는 사회, 여자들의 성과 사랑'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결혼제국>은 어떨까? 일본의 30대 비혼여성을 집중 분석하고 있는 책의 키워드는 꽤나 자극적이다. 모라토리엄 증후군, 섹스 프렌드, 비혼, 성의 유효 기간, 여여 격차, 명품신앙, 젠더 게임 등등.
책은 일본의 30대 비혼여성을 적당한 남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인생 설계를 미루는 "결혼 대기조"이자, 실제로 결혼할 만한 남자는 이미 결혼을 해 불륜 시장에 발담그고 있는 "애인 예비군"이라 규정한다. (이들은 또한 '서브프라임 매리지'의 세대이기도 하다!) '나쁜 남자'들이 유포해 온 '낭만적 사랑'의 이데올로기를 자기도 모르게 내면화해온 그들은 이 가부장제(결혼제국)의 어쩔 수 없는 포로(혹은 노예)인 것이다.
일본의 여성주의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와 하라주쿠 상담소 소장 노부타 사요코가 공격하는 것은 결국 이런 '결혼제국'이고 요구하는 것은 여성들이 이런 '결혼제국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꿈꾸는 것은 좀 더 건강하고 평등한 새로운 관계다. 물론 이 책은 두 저자의 '거침 없는' 대담집이니 오히려 술술 읽힌다. 가독성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다는 말. 그렇다면 여기에서 스트레스 받을 사람은 다음과 같다.
1) 마초 남성 2) 그럼에도 결혼제국에 입성하고 싶은 미혼 남녀 3) 결혼제국이 잘못되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고 있지만 발빼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기혼 남녀 4) 국가의 내일과 그 안녕과 '생산성'을 위해 불철주야 고민하시는 어르신들 5) 새로운 관계가 도대체 뭘까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들. 그럼 "골드미스" 님들은 어떨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오늘 스트레스 종합세트의 마지막 책은 <포스트 민주주의>다. 이 책의 제목을 이렇게 바꾸어도 좋겠다. "신자유주의 이후에도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흔히들 신자유주의의 공세 이후 민주주의가 약화 되었다고도, 후퇴 했다고도 하지만 저자 콜린 크라우치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우리 사회가 '포스트 민주주의'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
책의 주장에 따르면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가 국민의 보편적 요구보다 기업 엘리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소위 말하는 '대의제의 딜레마'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시대'에 계급 관계에 기반을 두고 활동한 정당이 글로벌 자본주의의 부상과 함께 붕괴, 더이상 정치가 계급 관계를 대변하지 못하고 다국적 기업이 강력한 제도로 떠올랐지만 여전히 민주주의의 형식과 절차는 남아 포스트 민주주의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좌측에 기반을 둔 정당들이 집권 후 이해불가의 행동을 남발하는 현상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다)
"이 책은 '포스트민주주의'를 경제에서의 신자유주의에 대응하는 정치 현상을 설명하는 서술적 개념으로 훌륭하게 그려내고 있다." - 금민, 정치인
"'명박산성'을 넘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했을까? 지난 시기 노동자 계급이 맡았던 역할을 지금은 누가 이어받을 수 있을까? 이 책은 이런 물음들에 대해 놀라운 통찰력으로 답하고 있다." -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그렇다면 이 책에 스트레스 받아야 사람은 누굴까? 바로, '포스트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아닐까. (기업, 정치계의 소위 사회 엘리트 계층은 빼도록 해요. 예우 차원에서…) 다른 것을 꿈꾸는 일은, 실은 꽤나 힘든 일이니.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건 물론 안좋으니, 이번엔 다른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자.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는 연말이면 흔히 나오는 '감성 에세이' 같은 제목과 표지를 하고 있지만 실은 전태일의 어머니이자 모든 노동자들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의 회고록이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이자 세상 누구보다 많은 자식들의 어머니로 여든을 살아온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한국 노동 운동의 역사이고, 무엇보다 생생한 한국의 현대사다. 그것들을 옮기기 위해서는 육백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함께 먹고 자고 때론 다투며 마침내 담아낸 이 한 권의 책에 더이상 수식을 붙이는 것은 아마도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하여, 그저 한 구절을 옮기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이소선은 어릴 적 이야기를 하는 중간 중간 내게 물었다.
"내가 재장 피우고, 엄마 말 안 듣고 하는 이야기도 책에다 쓸라고 그라냐?"
"재밌잖아요."
"뭐가 재밌냐. 남들이 나를 보면 뭐라 하겠냐."
"엄마가 언제 남들 눈 생각하며 살았어? 어머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지. 그게 이소선 아니야?"
"그렇지. 나 하고 싶은 대로 살았지. 내가 우리 엄마한테 참 못되게 굴었어."
박실마을 앞산에서 금호강을 바라보고 누워 있는 어머니 생각이 나는지 이소선의 눈이 촉촉해진다. 이소선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할 때면 안경을 자주 닦는다. 눈이 젖어 오면 안경에도 성에가 끼나 보다.
이소선은 운 적이 없다고 한다. 태일이가 죽고 한 번도 울지 않았다고 한다. 울지 않았기에 청계노조를 만들 수 있었고, 이제껏 싸울 수 있었다고 한다. 이소선과 한 밥상에서 밥을 먹기 전에는, 이소선과 한방에서 잠을 자기 전에는, 나도 이소선은 절대 눈물 같은 걸 흘리지 않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도 이소선은 울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역사의 이방인들>은 '단일민족'인 한민족의 역사 속에 '끼어 든' 이방인들을 조명한다. 하지만 어제의 이방인들은 또한 오늘의 우리 자신이므로, 결국 이 책이 시도하고 있는 것은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라는 신화의 탈신화화 작업이다. 중국인, 일본인, 북방 유목민족 뿐 아니라 아랍인들이 어떻게 한민족에 섞이고, 배제당하고 그럼에도 다시 한민족을 이루었는가에 대한 탐구.
가장 흥미로운 예는 '백정'이다. 흔히 도축업자 정도로 알고 있는 조선시대 최하층민 백정이, 실은 유목민족의 후예로 '유랑'이라는 그들 고유의 생활방식을 조선왕조에 의해 억압당하고 사회 주변부로 배제된 존재라는 것. 어쨌거나 이들 역시 지금은 '한민족'의 당당한 선조다. 이주 노동자에 대한 차별 등 여전히 우리 속에 내제된 그 신화를 해체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책.
* 지난 주에 소개한 <대중문화와 일상, 그리고 민족 정체성>도 같이 읽으면 기쁨은 두 배…
11월 30일 ~ 12월 8일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도 출간. 국내에 세번째로 소개되는 책이다. 몇 개 대학에서 진행된 공개강연이 발딛을 틈 없이 찼다는 뉴스를 생각하면 조금 부족한 숫자인 것 같기도. (들리는 말에 의하면 프랑스에서 하면 사람 별로 안모인다고…) 뒷표지의 문구가 책의 내용을 잘 설명하고 있어 옮긴다.
교육학 신화는 지능을 열등한 지능과 우월한 지능으로 분할한다. 교육 논리가 전제하는 근본적인 '불평등'과 그에 대한 무지한 자들의 '동의'야말로 지적 능력을 실행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 교육의 문제를 지적 능력의 평등이라는 철학적.정치적 문제로 옮겨 사유한 랑시에르의 지적 모험!
'우등과 열등으로 이분하는 교육학의 신화'라면 우리도 익숙하다. 고등학교 시절 우열 분반 이동수업 같은 것. 수학B 반에서 만화책을 읽던 기억 같은 것. 그렇다면 랑시에르가 말하는 무지한 스승이란 무엇인가? '옮긴이의 말'에 상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역시 옮기기로. (사실 이것도 뒷표지에 있다)
무지한 스승이란 무엇인가? 무지한 스승은 학생에게 가르칠 것을 알지 못하는 스승이다. 그는 어떤 앎도 전달하지 않으면서 다른 이의 앎의 원인이 되는 스승이다. 그는 불평등을 축소하는 수단들을 조정한다고 자처하는 불평등의 사유를 모르는 스승이다.
그렇다면 굉장히 훌륭한 스승 되겠다. 랑시에르는 이런 아이디어를 19세기의 조제프 자코토에게서 빌려 온다. 네덜란드로 망명할 수 밖에 없었던 자코토가 프랑스 문학 담당 외국인 강사가 되면서 '네덜란드어를 모르는 프랑스 선생'과 '프랑스어를 모르는 네덜란드 학생'의 기묘한 조합이 탄생한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어의 기초도 가르치지 않는다. 그저 <텔레마코스의 모험> 프랑스어-네덜란드어 대역판을 건네며 스스로 익혀볼 것은 주문한 것.
'교육공화국' 대한민국의 학부모들이 알았다면 학교가 당장 뒤집힐 '천인공노'할 사건이었던 셈. 하지만 진정으로 놀랄 일은 따로 있었다. 그 책을 읽고 느낀 점을 프랑스어로 써보라는 자코토의 주문에 학생들은 '작가 수준'의 프랑스어로 작문을 했던 것! (이쯤에서 문득 '영어몰입교육'이 떠오르는 것은 혼자만의 문제는 아닐 것 같다) 이것이 바로 '무지한 스승'인 것이다. '똑똑한 스승'이 넘치는 대한민국 사회에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는 책.
교육에 관심이 있다면 <캠프힐에서 온 편지>를 함께 읽는 것도 좋겠다. 교직에 몸담고 있던 '아줌마'가 그것에 한계를 느끼고 불혹의 나이에 독일에 유학을 떠난다. '발도르프 교육'을 배우기 위해서. 전인적 교육, 평등한 학교 공동체를 지향하는 발도르프 교육학에 눈 뜬 그녀가 다시 발길을 옮긴 곳은 스코틀랜드의 에버딘에 있는 장애인 공동체 '캠프힐'. 아름답고 작은 공동체에 매료된 그녀는 한국에 발도르프 특수학교와 또 다른 '캠프힐'을 만들기를 꿈꾸며 이 책을 쓴다.
'다름'을 보여주는 이런 시도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같은 의미에서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을 좋아한다) 모두가 똑같이 살고 있을 때, 우리가 필요한 것은 '지도자'도, '이념 제공자'도 아닌 스스로가 오직 스스로를 위해서 '다름'을 살아내는 사람들인 것이다. 학원비, 과외비 허리가 휘고 애도 불쌍하지만 남들 다 하니까 부모된 도리로 뼈빠지게 부양하는 거 말고. 적어도, 그것 말고도 다른 삶이 가능한 사회였으면 좋겠다.
셰익스피어도 말했듯이 "끝이 좋으면 다 좋"으므로, 마무리는 아름답게 해야겠다. 역사와 예술의 향취에 흠뻑 젖고 싶으신 분들을 위한 선물 세트, 라고 소개하면 적절할까. 르네상스 시대의 세 거장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삶을 그린 평전이 동시에 출간된 것이다.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의 저자인 정진국이 직접 외국의 고서점들에서 '발굴', 번역했다.
표지를 이렇게 한 자리에 놓으니 보기에 참 좋다. 내가 알베르 카뮈였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부러워한다.깊어가는 겨울밤, 따뜻한 방바닥에 굳은 배를 대고 이 책들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그러나 풍요로운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 스크롤의 압박이;;; <스트레스>라는 책으로 시작 - 쓰는 이의 스트레스 - 읽는 이의 스트레스. 홍MD님의 경제경영 신간브리핑의 한 대목을 빌자면 "이런 걸 삼위일체라고 하나요?"
* 괴로워도 슬퍼도 스트레스를 받아도 배는 출발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