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지 마세요. 책에 다 있어요. 자연과학책 3천 권만 읽고 나면 질문이 자연히 해소됩니다”
 
좋은 선생님이라면 질문을 유도하고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박문호 박사님은 다르다. 질문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품어야 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오랫동안 질문을 품으면 그것이 바로 공부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의 질문을 오랫동안 생각하다보면 어느 순간 그 질문은 스스로 사라진다고 하신다.
 
얼마 전 정현종 시인의 강연을 들었다.
노시인은 어린 시절 책에서 본 문구에 너무 놀라서 주저앉을 뻔했다는 일화를 들려주셨다.

'우리 은하에 천억개의 별이 있고, 우주에는 천억개의 은하가 있다'
 
또 초신성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하셨다.
 
'초신성에 대한 기사가 났어요.
별이 죽으면서 내는 흩어지는 것 속에 들어있는 물질들,
그 광물들이 우리 몸을 구성하는 물질들이에요.
우리 몸속에 있는 게 다 지구땅덩어리에 있고,
별들을 구성하는 물질로 우리 몸도 구성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예전부터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하던 얘기가
대단히 과학적인 얘기였구나 싶기도 하고...'
 
그리고 그때 쓴 시를 들려주셨다.
 
너 반짝이냐 나도 반짝인다
우리 칼슘과 철분의 형제여
멀다는 건 착각
떨어져 있다는 건 착각
이 한 몸이 삼세며 우주
죽어도 죽지 않는 통일 영물

 
우주와 은하가 낭만적이라면 낭만적이지만, 여튼 어린 노시인에게 감명을 준 문구는 천문학자들이 밝혀낸 과학적인 사실이었다. 시인은 그때부터 이미 자연과학을 경이로움의 대상으로 받아들였으리라.
 
이 책은 박문호 박사님이 중학교 때 만난 책의 한 구절로부터 시작된 책이다.
그 구절은 다름아닌 정현종 시인의 다리를 풀리게 만든 바로 그 문장이었다.

'우리 은하에 천억개의 별이 있고, 우주에는 천억개의 은하가 있다'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 문장을 만난 박문호 박사님은 언젠가 이 말 뜻을 이해하겠다고 결심했다. 질문을 가슴 깊이 품어 안고 점점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우주, 은하, 지구, 생명, 인간, 뇌... 새로운 질문이 생겨남과 동시에 낡은 질문은 사라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질문은 점점 줄어들었다.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모든 것이 하나의 질문으로 모아지고 알아야 할 것은 많지 않았다.
 
낡은 질문을 버리는 방법을 기원을 추적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인간의 의식에서 뇌의 발생, 포유류의 진화, 척추동물의 진화, 진핵세포, 원핵세포, 지구 환경의 변화, 초신성의 폭발, 빅뱅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이 작업은 심리학, 신경과학, 진화생물학, 지구과학, 천문학, 입자물리학의 학문 영역을 아우르는 것이다. 문과와 이과의 벽, 학과 간의 벽, 학회 간의 벽이 높은 대한민국에서 쉽지 않은 통섭의 노력이 30년 동안 계속되었다.

드디어 2004년, 인문학 공부 단체인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뇌와 생각의 출현>이라는 강좌를 열면서 수강생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그 수강생 중에 출판사 휴머니스트의 편집주간인 선완규 주간님이 계셨나보다. 지금까지 한 번도 과학책을 낸 적이 없는 휴머니스트가 박문호 박사님의 책을 내겠다고 달려든 것이다. 그리고 2007년 불교TV에서 <뇌와 생각의 출현> 28회 강좌가 방송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경이로운 자연과학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몇 년 전 우리 사회에 '통섭'이라는 화두를 던진 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선생님도 통섭의 현장을 주목하셨다.
 
지금 우리는 이제 막 출간된 <뇌, 생각의 출현>이라는 책을 만났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고전적 질문을 풀어내기 위한 한 연구자의 30년 인생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책은 한 인간의 역사이자 우주의 역사이다. <뇌, 생각의 출현>은 137억년 전의 빅뱅에서부터 의식의 출현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한 달음에 내쳐 달린다. 이 책은 이러한 접근이 통섭의 시대에 와서야 드디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재천 교수님도 이 책을 우리 사회에서 '통섭'을 구체적으로 실현한 책으로 평가하고 있다. 최재천 교수님이 '통섭의 시대'라는 윤곽을 그려냈다면, 박문호 박사님은 천문학, 생물학, 물리학 등의 자연과학을 하나로 묶어 '뇌'로 통섭한 최초의 연구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이해한다. 이 책은 엄청난 양의 정보를 주는 책이기도 지만,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있다. <뇌, 생각의 출현>은 인간의 의식을 우주적 스케일에서 보는 관점을 제시한 책이다. 이 책은 읽는 사람의 뇌를 흔들어 놓는다.

“첫 독자로서 이 책을 읽으면서 생명이라는 것에 경이로움을 느꼈고, 인간임에 감사했다. 또 책을 따라 우주에서 지구로 세포로 다세포 생명체로 인간으로 인간의 뇌와 생각으로 갔다가 다시 우주로 돌아가면서 그동안 나를, 나의 생각을 가둬두었던 고정관념들이 수없이 깨졌다. 놀랍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자연과학 책을 읽고 마음이 이렇게 여유로워질 수 있을까.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실감했다. 이 경험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 이 책은 또한 나를 바꾼 책이다.
아마 모든 독자가 비슷한 경험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 이정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연구원이자, 독서클럽 100북스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오랫동안 박문호 선생님과 함께 뇌 공부를 해왔다.


* 원고를 제공해주신 이정원 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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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의학 공부에 도움이 되는 책 (2)
    from 正中龍德 2008-11-23 19:54 
    뇌, 생각의 출현 - 박문호 지음/휴머니스트 기존에 의학생물학, 생리학, 신경생리학, 해부학등을 배웠거나 현재 공부하고 있는 사람으로 이 책을 지금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일반인에게는 좀 딱딱한 내용이지 않을까 합니다만 중의학을 공부하려는 사람에게는 선행학습으로 읽어보면 큰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사람의 몸 특히 뇌가 어떻게 진화해왔고 그 작용이 어떤지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힐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일생중에 사용하는 뇌가 아주 적다는 일반적인..
 
 
11$No.25 2008-11-19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상해봐야겠네요.

Sonnyhill 2008-11-21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꼭 한번 도전해 볼만한 가치있는 책입니다.

하이드 2008-11-23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인문학 책인가요? 읽다가 머리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과연, 읽었다..고 해도 좋은 것인가.라는건 차치하구요. ㅜㅠ 와- 페이퍼만 보면 낚이기 십상; 서점에서, 혹은 미리보기로라도 꼭 확인하고 사세요.

MD페이퍼로 여러번 올라와서 보게 되었는데, 진짜 원망이 한가득.

활자유랑자 2008-12-01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No.25 님, 링크 님 / 네, 분명 도전할 가치가 있는 좋은 책입니다. :)
하이드 님 / '낚시'로 느껴지셨다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ㅜㅜ 음식이 그렇듯 책도 궁합이 있는 모양입니다. (사실 제가 언젠가 "신문 서평처럼 사실 만만치 않은 내용임에는 분명합니다"라고 썼듯 어려운 내용임이 분명한데, 저는 그 '어려움'이 좋았거든요;) 다음에는 더욱 좋은 책을 소개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