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어들이 가득한 이번 주네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도 있다지만, 무슨 책이 있는지는 알아야 말이라도 할 수 있겠죠. 자 그럼 배 출발합니다~
* 마르크스, 하워드 진, 에드워드 사이드
드디어 마르크스의 <자본>이 출간되었습니다. 이미 우리는 비봉출판사에서 출간된 <자본론>을 갖고 있습니다만, 이번에 새로 출간된 <자본>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영어 중역본인 비봉출판사 판본과는 달리 독일어 원전을 번역했다는 점입니다.
이미 이번 주 신문에 기사를 받았고, 저자 인터뷰도 많으니 <자본> 출간과 관련된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쉽게 접하실 수 있을 거예요. 중요한 것은, 현재 구할 수 있는 판본 중 독일어 원전을 번역한 것은 이번에 출간된 책 하나 뿐이라는 것. 마르크스를 전공한 저자의 해제가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
실은 그 동안 우리 모두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고 있었던 셈이죠. <자본>을 다룬 책은 수없이 많았지만 정작 원전은 아무도 읽지 않았으니. 하여 '유령처럼 떠돌던' 마르크스의 사유가 이번 기회에 새롭게 조명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저부터 읽어야겠어요.
"하워드 진은 공인된 비밀과 잊혀진 역사를 폭로함으로써 힘 있는 사람들이 조작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던 공식적인 역사를 바꿔버린다. 또 인자한 미국의 빙긋 웃는 가면을 벗겨내서 그 실체를 백일하에 드러낸다. 하워드 진의 저작을 읽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이나 진배없다."
<작은 것들의 신>의 저자 아룬다티 로이의 추천사에 동의를 하거나 말거나, 하워드 진은 분명 우리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지식인 중의 한 명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하워드 진에 대해 궁금하지만(우리 자신한테 몹쓸 짓을 하긴 싫지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시는 많은 분들에게 이 책은 가장 중요한 입문서입니다.
'데이비드 바사미언이 인터뷰하고 강주헌이 옮기다'라는 부제에서 보이듯 인터뷰로 이루어진 책은 쉽고도 생생한데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어두운 면을 직시할 것을 강조하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말하는 하워드 진의 목소리는 따뜻합니다.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로 시작한 에드워드 사이드 선집의 두 번째 책은 <저항의 인문학>입니다. 몇 년 전인가 '공학의 미래', '공대 기피 현상' 등의 문제가 이슈가 된 적이 있었죠. 하지만 '인문학의 위기'라는 것은 그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이미 '위기'를 넘어선 것으로 보이기까지 해요. ('괴사' 직전?)
인간 복제 등 현대의 첨예한 지식 논쟁을 이끄는 것은 모두 과학자들입니다. 사이드는 세상이 인문학을 몰라주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이 세상으로부터 눈을 돌린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조목조목 제시하지요. 마지막으로 남긴 저작이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사이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우리가 누구이고, 권력의 하인이 아니라 도덕적 주체이고자 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깨닫게 해준다." - 노엄 촘스키
* 문제는 광우병이 아니라 '살인 단백질'이다!
이 책의 부제가 나열하고 있는 '식인 풍습과 광우병, 영원히 잠들지 못하는 저주받은 가족' 사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눈치 빠른 분들은 바로 알아차리셨겠지요. 바로 <살인 단백질 이야기>라는 제목에서 보여지듯 그것은 바로 '프리온' 입니다. 최근의 광우병 열풍에서 우리도 전해 듣게 된 그 이름이요.
광우병을 다룬 많은 책들이 파푸아뉴기니의 '쿠루'병에 주목합니다. 그들 부족의 식인풍습, 다시 말해 동족식습에서 발발된 병을 통해 광우병 역시 초식 동물인 소에게 소를 먹이는 비윤리적인 행위, 인간의 탐욕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고발하고 있지요.
그 밖에 위생적으로 포장된 육류가 실은 어떤 경로를 통해 도축되고 우리의 밥상까지 올라오는지, 그 위험성에 대해서 정부는 어떻게 국민들을 호도하는지, 등이 최근의 책들이 다루었던 주된 주제였어요.
하지만 이 책에서 그려내는 것은 바로 '살인 단백질'의 역사입니다. 스스로가 (프리온에 의한 질병은 아니지만) 변형 단백질에 의한 정체불명의 질병을 앓고 있는 저자는, 200년이 넘게 이어 내려오는 '치명적가족성불면증'을 앓고 있는 이탈리아 귀족 가문을 시작으로,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살인 단백질을 탐구합니다. 흥미진진한 '의학 인류학'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 이 책들을 보라!
<이 영화를 보라>는 고전을 새롭게 읽는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고미숙 씨의 책입니다. 책은 여섯 편의 한국영화를 통해 영화 속 '지금-여기', 곧 근대의 풍경과 서사를 잡아 냅니다. 여섯 편의 영화는 '괴물', '황산벌', '음란서생', '서편제', '밀양', '라디오스타'. 가장 대중적인 영화 안에 숨어있는 의미를 통해 우리 시대의 초상을 그려내는 저자의 공력이 돋보입니다.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에서는 '책'이라는 키워드로 조선시대를 탐구합니다. 성리학이라는 조선의 대표 이념의 밑에 가려졌던 수많은 사상들을 '금서禁書'를 통해 추적하는 것. 저자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평범한 책들에서도 그 내면에 현실적 삶과 대결한 흔적, 하지만 결국 권력의 논리를 따르고 만 타협의 고백을 찾아냅니다. 흥미롭네요.
<20세기 신화 이론>은 굉장히 의미심장한 책입니다. '카시러·말리노프스키·엘리아데·레비스트로스'라는 부제는, 대학 교재처럼 심플한 제목이 나타내듯 '20세기 신화 이론'의 기둥이 된 네 사람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신화 이론에 대한 입문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그 거장들을 철저하게 해부, 분석함으로써 그 자체로 '신화'가 되어버린 그들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조망하는 것! 앞의 두 사람은 그렇다 치고, 엘리아데와 레비스트로스라니! 그 기획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하지 않으세요? 다중적인 의미에서의 '신화의 탈신화'.
* 그리고…
이번 주 배에 마지막으로 탑승한 책은 <직선들의 대한민국>입니다. 어쩐지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떠올리게 하는 책의 저자는 바로 우석훈 교수. 지난 번 배에도 마지막으로 탑승한 책이 <촌놈들의 제국주의>였는데요, 이래저래 운항한지 얼마되지 않는 우리 배와는 인연이 깊으신 것 같네요. (조만간 인터뷰라도…)
<88만원 세대>로 시작한 '한국경제대안 시리즈'인 <촌놈들의 제국주의>와는 달리, '건설지상주의'에 경도된 한국사회를 종합적으로 비판하는 책입니다. 청계천을 살린답시고 직선으로 '인공 어항'을 만들어 수돗물을 흘리고, 원래 청계천 물길은 그 아래 파이프에 가두는 나라. 그에 더해 '대운하'라는 이름의 거대한 직선 운하를 만들겠다는 나라, 대한민국.
"속도와 성과에 중독되고 불도저들이 만들어낸 직선의 미학에 감탄"하는 사회가 정말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자는 주장합니다. "이제 우리의 이성을 이곳의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위한 방향으로 바꾸자.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생태적 가치관을 복원하자. 딜레마에 빠진 한국 사회를 명랑하고 멋지게 바꿔 보자."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책은 아직 미출간인데요, 16일 월요일이나 17일 화요일 정도엔 직접 만나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판사 편집부의 친절한 배려로 먼저 원고를 받아본 소감으로 말하자면, 재미있습니다. 쏟아지는 '한국 사회 비평서' 속에서 어쩜 우리는 오히려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 책을 읽고 무언가 느껴지신다면, 무언가를 바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저자는 책을 시작하며 백범 김구 선생의 말을 인용하는데요, 그 글을 다시 재인용하며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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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는 걸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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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번 주 역시 빅 네임들로 배가 꽉꽉 찼네요. 아참, 저는 내일 아침, 진짜 배를 탑니다. '만선'을 쓰다보니 어쩐지 진짜 배가 타고 싶어져서… 여행을 떠날 때 들고 가는 책은 크게 세 종류인 것 같아요. 진짜 읽고 싶었지만 읽지 못했던 책, 원래 좋아했던 책이라 여행 하며 한 번 읽고 싶은 책 그리고 여행할 때 들고 다니면 폼날 것 같은 책. 참고로 제가 들고 갈 세 권의 책은 <로드>,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 <무진기행>입니다. 어떤 책이 어떤 용도 일까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