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책상 가득 쌓인 책들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지곤 합니다. 이를테면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책이 필요한가?" 하는 고전적인 질문. 하지만 그것은 결국 수많은 책들 중, 살아남아 독자들에게 가닿는 책이 얼마나 될까, 하는 안타까움에 더 가깝겠지요.

분명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는 책은 좋은 책입니다. 물론 그 역은 참이 아니에요. 그렇다면 왜 (우열을 가릴 수 없이) 좋은 책들 중 어떤 책들은 끝까지 살아남고, 어떤 책들은 그렇지 못할까요? 이 복잡하고도 미묘한 질문에 대한 가장 간단한 답은 아마 '적자생존' 이라는 한 단어일 것입니다.

*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다윈주의라는 유령이

저는 방금 '적자생존'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만약 다윈이 없었다면 그 단어를 지금처럼 쓸 수 있었을까요? (사실 이 용어 자체는 영국의 학자 허버트 스펜서가 먼저 사용한 단어라고 합니다만.) 세대, 변종, 유전, 개체, 친족, 변이… 등도 마찬가지. 물론 다윈의 영향력은 단어 몇 개의 문제로 끝나는 문제는 아니지만요. (“다윈은 최근 회춘했다”)

19세기는 다윈의 세기였고, 그것에 동의하거나 말거나, 그 이후로 세계는 변해버렸습니다. 심지어는, 문학까지도. 바로 <다윈의 플롯>이 다루고 있는 지점입니다. 이른바 진화론과 문학의 만남!

영문학자인 저자는 <종의 기원>의 언어를 분석, 그 엄청난 영향력은 "다윈이 생각하는 데 필요한 언어를 찾느라 애쓴 소산"이라는 발견으로 책을 시작합니다. 다윈이 생각한 관념은 사회의 틀 밖에 있었으므로 당시의 언어를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는 매우 어려웠다는 것.

그래서 다윈은 ‘은유’의 방법으로, 모든 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자신의 이론을 ‘서술’ 합니다. 과학적 언어로 쓰이지 않았기에, 또한 이야기로 풀어서 쓰였기에 그것은 다윈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던 많은 의미를 담게 되었고, 상상력의 보고가 될 수 있었다고 하네요.

저자가 주로 다루고 있는 작가는 조지 엘리엇과 토마스 하디에요. 그들의 작품이 많이 번역되지 않아 무척이나 아쉽지만, <다윈의 플롯>은 그 자체로 충만한 지적 자극을 전해줍니다. 과학과 문학(사)의 ‘쏘쿨’한 만남. 


그렇다면, 진화론은 또 무엇과 만날 수 있을까요?  여기, 또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타고난 반항아>는 한 가지 의문에서 출발합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사고방식에 대변혁을 가져오는 혁신적인 사상을 내놓으며, 왜 어떤 사람들은 그에 격렬히 반대하며 기존의 것을 고수하는 것일까?" 바로 계급이론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도 완벽히 설명할 수는 없었던 흥미롭고도 난감한 질문.

그렇기에 저자의 주장은 (마치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그 단순함으로 허를 찌릅니다. 다윈의 '분화의 원리'를 가족 안으로 끌어들인 저자는, 부모의 보살핌이라는 동일한 자원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형제들은 성장하며 자기만의 전략을 익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거기서, 모든 것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나는 외아들인데…", "우리 형은 첫째인데 왜 반항을 할까?" 같은 의문이 드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책 안에 '거의 모든 경우'가 다 들어 있습니다. 괜히 870쪽이 아닌 것이지요.

문제에 접근하는 신선한 관점과,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역사적 사건들을 6,566명의 전기적 자료의 분석을 통해 풀어내는 저자의 방법론은 이 책이 가진 커다란 미덕입니다. 그렇지만 가장 커다란 미덕은 바로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는 것. 900여 쪽의 책이 쉽게 읽힌다니, 정말 근사한 일 아닌가요? (무거워서 들고 다닐 수가 없을 것 같다고요? 그래도 들고 다닐만 하던걸요;)


* 한 길 사람 속, 그 속이 궁금해?


 

 

 

 

이번 주에는 유난히 많은 심리학 책들이 출간 되었습니다. <무삭제 심리학>은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문제들을 심리학적으로 접근하며, 우리도 잘 모르는 우리의 마음과 더더욱 모르는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후회하지 않는(조화로운?)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기 계발형 교양 심리학' 도서 입니다. 번역서가 아닌 국내 저자의 글이라 더욱 쉽게 와닿네요.

<괴짜 심리학>에 이어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 된 <바보들의 심리학>은 우리의 '편견'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편견이 우리를 가두고 또 조종하고 있는지를 -나의 편견이 내 자신을 혹은 타인의 편견이 우리를- 흥미진진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심리학에 대한 개론서라기 보다는 '편견'에 대한 심리학적인 접근이라는 말이 책을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마침내, 제4권 <인간의 상과 신의 상>을 끝으로 <융 기본 저작집>이 완간 되었습니다!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출간에 힘써주신 출판사 및 여러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국내에서는 프로이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흘히 다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융을 훨씬 더 좋아해요. 뭐랄까, 그 거대한 구상이. 혹시라도 융의 사상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쉽게도 절판된) 로고스 총서 중 <>이나 야코비가 쓴 <C.G. 융 심리학 해설> 혹은 <한 권으로 읽는 융>을 권합니다.

융이 나왔다면 프로이트도 나오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요? 프로이트의 캐리커쳐가 그려져 있는 표지가 주는 인상처럼 <프로이트의 비밀>은 시종 유쾌하면서도 위트가 넘치는 책입니다. 프로이트의 소파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독특한 형식으로, 프로이트의 일생과 그의 사상의 기본 지식들을 가볍지만 결코 경박하지 않게 그려냅니다.


* 세계를 망친다. 아메리칸 갱스터-


 '세계 깡패' 미국을 비판하는 두 권의 책이 나란히 출간 되었습니다. <미국과 맞짱뜬 나쁜 나라들>은 '한 반미' 한다는 국내 저자들이 쿠바.베네수엘라.북한.이란 등 미국과 팽팽한 대립각을 세웠던 7개의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전세계적인 '미국화'를 비판합니다. 유쾌한 제목처럼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반면 <미국이 세계를 망친 100가지 방법>은 현직 MIT 교수가 쓴 '자기비판서'입니다. 조지 부시, 뉴욕 타임스, 갱스터 랩, 패리스 힐튼 등… 미국이 세계를 망친 100가지 방법들을 통해 미국인 조차 용납할 수 없는 미국의 악행을 고발합니다. (하워드 진이 서문을 썼습니다!) 

 (내용만큼이나 비슷한 이 두 표지. 모두 디자이너 오필민 씨의 작품이라고 해요)

그리고 여기, 미국의 깡패짓 중 '음식으로 장난치기'를 비판하는 또 다른 두 권의 책이 있습니다. 2001년, 전세계인을 경악케 했던 9.11 테러 당시 사상자 3000명. 하지만 같은 해 비만으로 생을 달리한 미국인은 40만 명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지적하는 <독소>는 우리의 식탁에 가해지고 잇는 미국의 음식산업 실태, 그 테러를 고발합니다. 

<도살장>은 그 중에서도 우리가 먹고 있는 '고기'에 집중합니다.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육류'로 가공되기 위해 도살장에 가야하는 소, 돼지, 닭… 그리고 그들에게 가해지는 테러. 비윤리적인 동시에 비위생적인 미국의 도축 시스템을 강력히 비판합니다. 광우병 만큼 공론화 되어 있진 않지만, 그보다 더 깊고 독한 현실을.

(광우병에 대한 책들이 궁금하신 분들은 "미친 소가 온다!"를 참고하세요)


* 그리고…

그리고도 참 많은 책들이 있었습니다. 인디아나 존스의 개봉에 발맞춰 출간된, 존스 교수(시간 강사?)가 찾아 헤맸던 유물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인디아나 존스와 고고학>(월간 미술 기자로 재직중인 저자  자신이 그 시리즈의 '오덕후'!), 조선의 문장가로 꼽히는 이건창의 글을 옮긴 <조선의 마지막 문장> 등… 더 싣고 싶은 책들도 많지만, 눈물을 머금고 이쯤에서 끝내겠습니다. 배가 이미 가득 찼으니까요.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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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tor credits 2011-12-28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야하는 소, 돼지, 닭… 그리고 그들에게 가해지는 테러. 비윤리적인 동시에 비위생적인 미국의 도축 시스템을 강력히 비판합니다. 광우병 만큼 공론화 되어 있진 않지만, 그보다 더 깊고 독한 현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