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슨 크루소의 사치 - 소비사회를 사는 현대인의 정경
박정자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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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로빈슨 크루소는 섬에서 꾸준한 노동을 통해 식량을 비축해두고 풍족한 식량들 사이에서 가끔은 사치를 부릴 만큼 낭비를 곁들이곤 했다. 인간은 이제 생존을 위해 소비하는 종이 아니다. 소비하기위한 소비재들은 끊임없이 생성되고있고 그것은 낭비라는 이름 하에 인간의 생명력을 지칭한다.
 
책은 소비의 개념을 우선 짚어보며 선물의 역사와 낭비의 의의를 알아본다. 그리고 현대인들의 소비 방식이 계급적 우월의식을 과시하기 위함으로써, 그리고 그 상위 계급에 닿고자 과시하는 소비로 변질되는 세태를 분석했다. 앞으로의 소비는 어떻게 이어질 것이며 자본주의의 소비 사회 속 모든 것은 상품화가 되어지고 어떻게 상품성을 갖추게 될 것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현대사회의 소비 형태를 통찰력 있게 바라본 책.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은 친구들에게 의미있는 책을 선물하는 나에게 상당히 불편하게 다가오는 개념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권력의 목적에서 벗어나 타인을 위해 지속적으로 선물할 것이다.

p 38
그러나 이 미치광이 같은 증여와 소비의 동기 또는 이 미친 듯한 부의 상실과 파괴의 동기는 결코 무사, 무욕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준다는 것은 자기의 우월성 즉 자기가 더 위대하고 더 높으며 더 주인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선물을 받고도 답례하지 않거나 더 많이 답례하지 않는 것은 선물을 준 자에게 종속되는 것이고, 손님이나 하인이 되는 것이며, 더 낮은 지위로 떨어지는 것이다.

p 53
사실 그림이나 소설 같은 예술작품, 보석 같은 사치품 그리고 돌잔치나 결혼식 같은 모든 의식이 그 자체로는 아무 쓸 데가 없고 비생산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비효용성, 비생산성이야말로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면서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어떤 것이다. ... 바타이유가 ‘낭비‘라고 말할 때 그것은 인간 본연의 바람직한 행동으로서의 낭비이고, 문화를 생산하는 근원으로서의 낭비이기 때문이다.

p 142
현대사회에서 배우나 스타는 이미 인간이기를 그치고 대중적인 이미지인 동시에 인기 있는 하나의 소비품이라는 것을 이 작품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여기서 우리는 팝아트가 감상자의 감정적인 개입을 차단하는 ‘차가운‘ 예술이라고 비판했던 보드리야르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p 211
그런데 현재란 시시각각 앞으로 나가면서 과거를 무화시키는 찰나적 시간성일 뿐 어떤 견고한 실체가 아니다. 결국 유행이란 이 세상의 아무 곳에도 없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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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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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공포 정치는 그들에게서 인간성을 말살하기 위해 고유의 번호로만 각 개별자들을 통솔하고 하나의 집합체로써 다루게 한다. 수용소라는 공간 안에서 한 인간의 자유는 극도로 억압되어지고 처참하게 존엄을 짓밟힌다. 그런 극단의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인간성을 잃어가는가? 어쩌면 그 비겁하고 초췌하고 탐욕적인 모습이 진짜 '인간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 탐욕적인 모습은 인간 기본의 생존 욕구에 따른 당연한 이기심이다. 오히려 최소한의 권리조차 보장되어지지 못한 조건에서만 갖추어지는 홉스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의 욕구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는 엄격한 지배 속에서 각자의 욕망을 최소화한 채 필연적인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오로지 생존하기 위해. 하지만 그들의 그 비참한 현실을 묘사하는 생존이라는 단어는 그들이 공동체이기 때문에 동시에 숭고함을 내포한다. '인간성'의 모습은 단지 추악한 이면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동료를 측은히 여기고 함께 오늘을 헤쳐나가기위해 힘을 합치며, 배고픈 타인을 위해 빵 한 조각을 건넨다. 이 모든 것이 결국 하나의 인간임을 묘사하는 것이다. 그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숙련된 '죄수'의 시선으로 솔직하게 그려내며 동시에 지배 권력의 극단인 공포 정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책을 읽는 내내 사실 군대의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모습을 지닌 현대 사회 속에서 가장 전체주의적인 시스템을 지닌 그 공간에서 행해졌던 훈련과 노동들은 수용소의 모습과 궤를 같이한다. 물론 책의 수용소처럼 처참하고 인권이 마구 짓밟히는 공간은 아니지만 그런 형식이 '국방'의 이름으로 아직도 존재한다. 이래서 세계에 투쟁은 없어져야 하는가 싶다.

p 152
지금은 겉옷을 풀어헤치는 일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제 집으로 들어갈 테니까 말이다.
이렇게, 모두들 <집으로 간다>라고 말한다. 이 집 외에 <다른 집>에 대해선 하루 종일 생각할 겨를이 전혀 없다.

p 194
슈호프는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갈 때까지 남아 계세요 체자리 마르코비치! 저기 저 구석에 숨어 있으면 돼요. 얼마 후에 간수와 당번이 순찰을 돌테니, 그때 밖으로 나와요. 몸이 불편해서 좀 늦게 나간다고 하세요. 그리고 그 다음에 들어올 때는 제가 제일 먼저 들어올게요. 그러면 아무도 손을 못 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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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생각 - 오늘 우리에게 한나 아렌트는 무엇을 말하는가 My Little Library 1
김선욱 지음 / 한길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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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국가와 시민의 일방적 관계에서 시민과 시민의 갈등 속 대립적 관계로 변모했다. 우리 사회의 맹목적인 비난과 혐오는 극단으로 치솟고 있으며 언론의 갈등 조장 역시 분열에 한 몫 한다. 하지만 투쟁은 언제나 진보를 가져다주었다. 상호 비방보다 원만한 소통으로 시민이 한층 더 성숙해졌을 때 비로소 아렌트가 말했던 아름다운 정치는 탄생한다. 이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수용의 탄생점을 발견해야만 한다. 그리고 개인의 판단력을 갖추고 건강한 토론 문화가 형성된다면 사회의 혐오는 점차 해소되고 진보적 갈등만이 의제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민의 의식이 성숙해졌을 때 사회는 한 단계 더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 격변의 시점에 있는 지금, 아렌트의 사상이 우리에게 절실한 이유이다.

p 22
우리 정치가 제대로 서려면 정치에 대한 생각을 권력자 중심에서 시민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권력은 정치가에게서가 아니라 시민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치를 시민이 정치적 지위를 갖고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 따라서 공적인 자리에서 인간의 품위를 드러내며 인간다운 삶을 이루는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치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 정치는 인간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충돌이 발생하는 현장에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가운데 평화를 만들어내는 숭고한 일이다.

p 23
민주주의 시대란 시민이 그 책임을 감당하는 시대인 것이다. 시민이 무력하게 방관하는 한, 이미 힘을 가진 어떤 이들은 그저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 시민이 일상에서 이루는 정치적 삶이 정치가의 정치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따라서 시민으로서 우리가 이 연결점을 적극적으로 찾을 때, 그래서 우리가 시민으로서 바른 인식을 품고 생각하며 행동할 때, 정치가의 정치도 바로 서게 된다.

p 33
정치는 우리의 공동체적 삶 속에서 이성이 그리고 이것을 구현하는 언어가 작동하게 함으로써 좀더 나은 삶을 꾸려가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고 아렌트가 수용한 정치 개념의 핵심이다.

p 54
소크라테스는 자기 검토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다. 자기 검토란 반성적 사유를 말한다. ...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사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순을 느끼며 괴로워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 그는 악이 악한 존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무사유에서, 아주 평범한 모습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닫는다.
악행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는지에 따라 책임 소재가 달라진다. 악의 문제를 사회구조나 악행자들이 가진 공통의 악마성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사회나 어떤 외적 존재의 탓으로만 악의 문제의 책임을 돌리는 것이다.
... 아렌트는 이토록 끔찍한 상황이 평범함에서 나올 수 있고, 따라서 그 책임을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의 태도에 물을 수 있음을 경고한다.

p 56
책임이란 내가 행한 것이나 내가 행하지 않은 것, 즉 나의 ㅂ행위 때문에 인과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심리적, 실질적인 부정적 결과의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보상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내가 행하지 않은 것도 내 책임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내가 행한 것의 직접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간접적인 파급효과에 대해서도 나에게 책임이 있을 수 있다. 법적 문제에서 자유롭더라도 도덕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책임을 살펴야 한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생각 없이 성실하게 살아가면 우리는 성실한 악행자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 속에는 늘 생각이 살아 있어야 한다.

p 76
아렌트와 일부 유대인은 유대인과 아랍인의 관계를 무시하고 그들을 억압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고 분노했다. 시온주의자들의 목표는 주권이 있는 유대인 구가 건설이었는데, 이는 명백히 아랍인과 팔레스타인인에게서 ‘권리를 가질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아렌트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 가운데 어느 한쪽만 주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모두 똑같은 권리를 갖는 이중 민족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p 123
절대선으로도 인간사의 덕이 무너져서는 안된다. 덕 때문에 인간사가 작동하는 세계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빌리 버드>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법이 천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선악의 문제가 인간사에서 가장 근원적이고 기초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법의 세계, 인간사의 영역, 곧 정치의 세계가 인위적 영역으로서 우리의 실제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덕의 세계와 정치의 세계는 이처럼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한다.

p 130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가는 궁극적으로 시민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좋은 정치가는 좋은 시민을 토대로 좋은 정치를 하게 된다. 시민은 동료 시민과 대화하는 가운데 좋은 의견을 형성하므로, 정치공간은 소통하고 참여하는 시민을 요구한다. 덕성을 갖춘 시민은 자신의 공동체를 위해 대화의 노력을 기울이는 자이며, 이런 노력이 정치공간을 창출해낼 뿐만 아니라, 정치가 올바로 나아가도록 하는 토대가 된다.

p 164
불편한 법과 나쁜 법은 구별해야 한다. 시민 불복종의 불법성에 대한 판단은 불복종의 대상이 된 법에 달려 있지, 불복종 자체의 범법성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p 182
아렌트는 우리에게 판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잘못된 판단이라도 아예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보다 내리는 것이 좋다고 한다. 사람은 실수할 수도 있고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잘못된 판단은 다른 사람과 소통하면서 수정하고 교정함으로써 바로 잡을 수 있다. 판단을 내릴 때 자신의 관점만을 고집하지 않고, 생각을 거듭해 사태를 면밀히 파악하고 자신의 관점을 수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판단을 아예 내리지 않으면 옳고 그름을 알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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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전병근 옮김 / 김영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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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그 아는 것은 개인의 관심사와 전문성의 범주를 쉽게 벗어나지 않는다. 폭넓은 분야에 관해 일정 수준의 지식을 가지기란 무척 힘들기 때문에. 불과 몇 백 년 전만해도 그런 개인의 지식의 범주는 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요구되지도 않았다. 그저 개인의 삶에 집중하고 자신의 환경에 맞는 사회 방식만을 갖추고 있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런 정보의 습득은 현대에 이르러 모양새가 바뀌었다. 사회의 분업으로 발생된 경제의 세계화는 우리가 편한 삶을 살기 위해서 모든 세계가 서로 협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개인의 안락한 삶은 사실 다른 공간 누군가의 고통이 수반되어진 안녕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 사회는 무관심하며 자유주의 시스템 속에서 그들로부터 시선을 돌려 이익만을 도모한다.


하지만 다가오는 기술 발달로 시작되는 여러 위기들 속에 세계는 점차 공생 속에서 평등이란 가치를 추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조금씩 이타적인 방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마도 전쟁에서의 쓰라린 교훈과 함께, 찾아올 환경 위기로부터의 필연이지 않을까. 이제 우리는 그만큼 세계의 시스템들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세계가 끊임없이 발전하는 만큼 알아야 하는 것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그 방대하고 혼란스러운 지식의 범람 속에서 하라리는 필요한 지식들의 흐름과 인과관계를 조합해 흥미진진하게 구축된 서사로써 풀어낸다. 서술된 다방면의 역사와 사회의 지식들은 그가 세계의 안녕과 위기의 억제를 위해 고심했던 흔적이 느껴진다. 


위트 있는 필치로 시대에 만연한 종교적 넌센스들에 대해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다. 유대 문화로부터 자라난 그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유년 시절 시작됐던 실존적 사고로부터 헤쳐나온다. 초장에 눈치를 봐야하는가 하는 저자의 고민이 있었는데, 그런 고민은 털끝만큼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는 거침없이 세계를 서술해나갔다. 세계로부터 시작된 그의 서사는 유일하게 확증하고 의심할 수 있는 '나'로 종지부를 찍으며 개인의 탐구로 결론을 짓는다. 나를 알아간다는 것 만큼 우리가 끊임없이 생각해야하는 것은 없으며, 그것은 곧 나를 다스리고 감정을 받아들임으로써 타인을 이해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태도로까지 커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시의적절하고 독자들이 궁금해 할만한 7가지 질문을 뽑아준 분 정말 감사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요근래 본 책 중에 가장 탁월한 인문 교양서가 아닐까.


p 29
러시아, 중국, 쿠바에서 혁명을 일으킨 것은 경제에서는 핵심적이었으나 정치권력은 누리지 못한 사람들이었던 반면, 2016년 트럼프와 브렉시트를 지지한 것은 아직 정치권력은 누리고 있지만 자신의 경제 가치를 잃는 것이 두려웠던 많은 사람들이었다. 아마도 21세기 포퓰리즘 반란은 사람들을 착취하는 경제 엘리트에 맞서는 구도로 전개될 것이다. 이는 지는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착취에 반대하는 것보다 사회와 무관해지는 것에 맞서 투쟁하기가 훨씬 힘들기 때문이다.

p 51
따라서 단지 사람의 일자리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교통과 의료 같은 분야의 자동화를 막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 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보호해야 할 궁극의 목표는 사람이지 일자리가 아니다. 남아도는 운전사와 의사는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p 79
만약 보편적인 경제 안전망과 더불어 강력한 공동체와 의미 있는 삶의 추구를 결합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알고리즘에 일자리를 빼앗기는 것이 실제로는 축복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것은 훨씬 무서운 시나리오다. 대량 실업의 위험과는 별도로, 우리가 훨씬 더 걱정해야 할 일은 인간의 권위가 알고리즘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알고리즘은 자유주의 이야기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파괴하고 디지털 독재의 부상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지도 모른다.

p 102
무수히 많은 다른 상황에서도 인간의 감정은 철학적 이론을 이긴다. 이 때문에 세계가 보아온 윤리와 철학의 역사는, 이상은 훌륭하나 행동은 이상에 못 미치는 우울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이 실제로 상대를 관대히 용서하고, 얼마나 많은 불교도가 이기적인 집착을 초월해서 행동하며, 얼마나 많은 유대인이 일상에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가? 이는 자연선택이 호모 사피엔스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호모 사피엔스도 감정을 사용해 재빨리 생사의 결정을 내린다.

p 174
민족주의에는 인간의 공감 반경을 확장하는 장점이 분명히 있다. 보다 온건한 형태의 애국심은 인간의 창조물 중에서도 가장 자애로운 것에 속한다 내 민족은 독특하고, 충성할 가치가 있으며, 나는 다른 구성원들에 대한 특별한 의무가 있다고 믿으면, 남들을 배려하고 그들을 대신해 희생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 문제는 선의의 애국심이 국수주의적 초민족주의로 변질될 때 일어난다.

p 194
하지만 우리가 살아남고 번영하고 싶다면, 인류는 그런 지역적 충성심을 지구 공동체에 대한 실질적인 의무감으로 보완하는 수밖에 없다. 개인은 자기 가족과 이웃, 직업과 국가에 동시에 충성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이 목록에 인류와 지구를 추가하지 못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 우리에게는 새로운 지구적 정체성이 필요하다. 국가 단위의 제도는 전례 없는 일련의 지구적 곤경을 다룰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p 206
21세기의 종교는 비를 내리게도 못하고, 병 치료도 못하고, 폭탄도 못 만들지만, ‘우리‘가 누구이며 ‘그들‘은 누구인지, 누구를 치료해야 하고 누구에게 폭탄을 투척해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p 250
미디어가 테러에 집착하고 정부가 과잉 대응하도록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 마음속의 테러인 것이다.
따라서 테러의 궁극적인 성패는 우리에게 달렸다 우리가 테러범들에게 상상력을 납치당하고, 우리 자신의 두려움에 과잉 대응하면 테러리즘은 성공한다. 반대로 우리가 테러범들로부터 우리의 상상력을 해방시켜 균형 있고 침착하게 대응하면 테러리즘은 실패하게 돼 있다.

p 293
많은 종교들은 겸손의 가치를 받든다. 하지만 그런 다음에는 자신들이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상상한다. 개인의 온순함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뻔뻔한 집단적 오만함을 뒤섞는다. 모든 종교가 겸손을 보다 진지하게 여기면 좋을 것이다.
모든 형태의 겸손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신 앞에서의 겸손일 것이다. 사람들은 신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자신을 극도로 낮춘다. 하지만 그런 다음에는 신의 이름을 활용해 신도들 위해 군림한다.

p 301
도덕의 의미는 ‘신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고통을 줄이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으로 행동하기 위해 어떤 신화나 이야기를 믿을 필요는 없다. 고통을 깊이 헤아리는 능력을 기르기만 하면 된다.

p 303
물론, 증오의 대상을 실제로 살해하지는 않은 채 마음속으로만 분노를 몇 년째 끓어오르게 둘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도 다른 누군가를 해치지는 않았지만 이미 자기 자신을 해친 것이다. 따라서 마음속 분노에 대해 무언가를 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은 본능적인 이기심이다. 만약 마음속 분노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다면, 혐오하는 적을 살해했을 때보다 훨씬 기분이 좋을 수 있다.

p 330
수중에 거대 권력이 있으면 모든 것이 나를 부르는 것만 같다. 어찌어찌해서 당신 자신은 이런 충동을 이겨낸다 해도 주변 사람들이 당신을 가만두지 않는다. 이들은 당신 수중에 거대한 망치가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당신과 이야기하는 사람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의제를 품고 있다. 그러니 그가 하는 말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도 없다.

p 351
1000명의 사람이 어떤 조작된 이야기를 한 달 동안 믿으면 그것은 가짜 뉴스다. 반면에 10억 명의 사람이 1000년 동안 믿으면 그것은 종교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가짜 뉴스‘라 불러서는 안 된다는 충고를 들어왔다. ... 좋든 나쁘든 허구는 인류가 가진 도구들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에 속한다. 종교적 신념을 통해 사람들을 한데 뭉치고 대규모 협력을 끌어낼 수 있다.

p 375
고통은 고통, 공포는 공포, 사랑은 사랑이다. 매트릭스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이 바깥 세계의 원자가 모여서 일어나는 것이든, 컴퓨터가 조종하는 전기 신호에서 생겨나는 것이든 상관없다. 어떻든 두려움은 실재한다. 따라서 우리 정신의 실체를 탐구하고 싶다면 매트릭스 안에서든 바깥에서든 어디서나 가능하다.

p 398
그런 세계에서도 살아남고 번성하기 위해서는 강한 정신적 탄력성과 풍부한 감정적 균형감이 필요할 것이다. 반복해서 지금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 중에서도 어떤 것은 버리고, 그전에는 자신이 몰랐던 것도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p 463
인류가 직면한 커다란 질문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고통에서 벗어나느냐"이다. ... 우리 인간이 세계를 정복한 것은 허구적 이야기를 만들고 믿는 능력 덕분이었다. 그래서 특히 우리는 허구와 실체의 차이를 아는데 서툴다.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우리에게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만약 그럼에도 차이를 알고 싶어 한다면 시작점은 고통이다. 세상에서 가장 현실적인 것은 고통이다.

p 470
인생의 큰 질문을 할 때, 사람들은 보통 콧속으로 숨이 언제 들어오고 나가는지 아는 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자기가 죽고 난 후에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인생의 진정한 수수께끼는 내가 죽고 난 뒤가 아니라, 죽기 전에 생기는 것이다. 죽음을 이해하고 싶다면 삶을 이해해야 한다.

p 483
문제는 사람들이 이게 단지 상상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잊고, 궁극의 실체라고 믿기 시작할 때 발생합니다. 그럴 경우 사람들은 이야기를 위해 서로에게 막대한 고통을 주기 시작할지도 모릅니다. ... 모든 책의 주된 목표는 사람들이 허구와 실체의 차이를 분간해서 결코 허구의 이야기를 실체로 오인하지 않고, 허구적인 것을 위해 실재하는 것들을 해치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실체인지 허구에 불과한지 알고 싶다면 "그것은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라고 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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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쏜살 문고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이민경 추천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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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해방이 된 지 많은 세월이 흘렀다. 분명 우리의 인식은 평등해졌으며 특정 인종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행위는 이성적으로 옳은 행위가 아니란 것을 안다. 그러면 끝난 것일까? 세월 속에 박여진 차별 요소들은 문화 곳곳에, 사람들의 인식 곳곳에 관습의 형태로 남아있다. 그것들을 들춰내고 제거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함부로 평등이라는 가치의 이름을 쉽게 남용할 수 없다. 숙고 없는 표면적 개념의 활용은 내면의 고름을 썩히며 덮어버리고 마는 부작용을 생산한다.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 그 당시 여성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역사 속에서 그들이 '당연한 권리'를 얻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는지. 그리고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아직까지도 당연시 되어지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충분한 성찰의 길목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 여성들에게 많은 힘을 불어넣어 주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은 100년 전의 <82년생 김지영>처럼 기존의 성에 관한 편향된 인식의 근간을 흔들고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이 아니었을까.


사실 글 자체는 어려워 읽기 수월하지 않았다... 훗날 문학과 더 친근해졌을 때 다시 읽게 될 것 같다.


p 60
그러므로 통치해야 하고 정복해야 할 가장에게 있어서 다수의 사람들, 사실 인류의 절반이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느끼는 것은 막대한 중요성을 가질 겁니다. 그것이 실상 그의 권력의 중요한 원천 중 하나겠지요.

p 61
여성은 지금까지 수세기 동안 남성의 모습을 실제 크기의 두 배로 확대 반사하는 유쾌한 마력을 지닌 거울 노릇을 해 왔습니다. 그 마력이 없었다면 지구는 아마 지금도 늪과 정글뿐일지도 모르지요. ...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폴레옹과 무솔리니는 여성의 열등함을 아주 힘주어 강조합니다. 만일 여성이 열등하지 않다면 거울은 남성을 확대시키기를 그만둘 테니까요. ... 거울의 환영은 활력을 충전시키고 신경 조직을 자극하기 때문에 더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빼앗아 보십시오. 그러면 남성은 코카인을 빼앗긴 마약 중독자처럼 죽을 것입니다.

p 114
또한 여성들이 착해지고 싶고 빛나는 상을 받고 싶다면 문제의 그 신사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한계 내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고합니다. ‘... 여성 소설가들은 자신의 성의 한계를 용감하게 인정함으로써 탁월한 경지에 이르기를 열망할 수 있다.‘ 이 말은 문제의 핵심을 단적으로 표현합니다. 놀랍겠지만, 이 문장이 쓰인 때는 1828년 8월이 아니라 1928년 8월 입니다. 이런 말이 지금 우리에게는 대단히 재미있게 여겨진다 하더라도 일 세기 전에는 훨씬 강력하고 요란하게 울렸던 거대한 한 덩어리의 견해들을 대변한 다는 사실에 여러분은 동의할 것입니다.

p 157
영국의 어떤 결함으로 인해서 요즈음뿐 아니라 과거 이백 년 동안에도 가난한 시인들은 아주 작은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진심으로 말하건대 우리는 입으로는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지만, 실제로 영국의 가난한 집 아이들은 위대한 작품을 산출하는 지적 자유로 해방될 희망이 아테네 노예의 아들 만큼이나 없는 것이다. ,,,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들에 달려 있습니다. 시는 지적 자유에 달려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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