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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생각 - 오늘 우리에게 한나 아렌트는 무엇을 말하는가 ㅣ My Little Library 1
김선욱 지음 / 한길사 / 2017년 12월
평점 :
이제는 국가와 시민의 일방적 관계에서 시민과 시민의 갈등 속 대립적 관계로 변모했다. 우리 사회의 맹목적인 비난과 혐오는 극단으로 치솟고 있으며 언론의 갈등 조장 역시 분열에 한 몫 한다. 하지만 투쟁은 언제나 진보를 가져다주었다. 상호 비방보다 원만한 소통으로 시민이 한층 더 성숙해졌을 때 비로소 아렌트가 말했던 아름다운 정치는 탄생한다. 이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수용의 탄생점을 발견해야만 한다. 그리고 개인의 판단력을 갖추고 건강한 토론 문화가 형성된다면 사회의 혐오는 점차 해소되고 진보적 갈등만이 의제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민의 의식이 성숙해졌을 때 사회는 한 단계 더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 격변의 시점에 있는 지금, 아렌트의 사상이 우리에게 절실한 이유이다.
p 22 우리 정치가 제대로 서려면 정치에 대한 생각을 권력자 중심에서 시민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권력은 정치가에게서가 아니라 시민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치를 시민이 정치적 지위를 갖고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 따라서 공적인 자리에서 인간의 품위를 드러내며 인간다운 삶을 이루는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치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 정치는 인간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충돌이 발생하는 현장에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가운데 평화를 만들어내는 숭고한 일이다.
p 23 민주주의 시대란 시민이 그 책임을 감당하는 시대인 것이다. 시민이 무력하게 방관하는 한, 이미 힘을 가진 어떤 이들은 그저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 시민이 일상에서 이루는 정치적 삶이 정치가의 정치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따라서 시민으로서 우리가 이 연결점을 적극적으로 찾을 때, 그래서 우리가 시민으로서 바른 인식을 품고 생각하며 행동할 때, 정치가의 정치도 바로 서게 된다.
p 33 정치는 우리의 공동체적 삶 속에서 이성이 그리고 이것을 구현하는 언어가 작동하게 함으로써 좀더 나은 삶을 꾸려가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고 아렌트가 수용한 정치 개념의 핵심이다.
p 54 소크라테스는 자기 검토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다. 자기 검토란 반성적 사유를 말한다. ...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사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순을 느끼며 괴로워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 그는 악이 악한 존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무사유에서, 아주 평범한 모습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닫는다. 악행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는지에 따라 책임 소재가 달라진다. 악의 문제를 사회구조나 악행자들이 가진 공통의 악마성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사회나 어떤 외적 존재의 탓으로만 악의 문제의 책임을 돌리는 것이다. ... 아렌트는 이토록 끔찍한 상황이 평범함에서 나올 수 있고, 따라서 그 책임을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의 태도에 물을 수 있음을 경고한다.
p 56 책임이란 내가 행한 것이나 내가 행하지 않은 것, 즉 나의 ㅂ행위 때문에 인과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심리적, 실질적인 부정적 결과의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보상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내가 행하지 않은 것도 내 책임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내가 행한 것의 직접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간접적인 파급효과에 대해서도 나에게 책임이 있을 수 있다. 법적 문제에서 자유롭더라도 도덕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책임을 살펴야 한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생각 없이 성실하게 살아가면 우리는 성실한 악행자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 속에는 늘 생각이 살아 있어야 한다.
p 76 아렌트와 일부 유대인은 유대인과 아랍인의 관계를 무시하고 그들을 억압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고 분노했다. 시온주의자들의 목표는 주권이 있는 유대인 구가 건설이었는데, 이는 명백히 아랍인과 팔레스타인인에게서 ‘권리를 가질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아렌트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 가운데 어느 한쪽만 주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모두 똑같은 권리를 갖는 이중 민족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p 123 절대선으로도 인간사의 덕이 무너져서는 안된다. 덕 때문에 인간사가 작동하는 세계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빌리 버드>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법이 천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선악의 문제가 인간사에서 가장 근원적이고 기초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법의 세계, 인간사의 영역, 곧 정치의 세계가 인위적 영역으로서 우리의 실제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덕의 세계와 정치의 세계는 이처럼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한다.
p 130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가는 궁극적으로 시민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좋은 정치가는 좋은 시민을 토대로 좋은 정치를 하게 된다. 시민은 동료 시민과 대화하는 가운데 좋은 의견을 형성하므로, 정치공간은 소통하고 참여하는 시민을 요구한다. 덕성을 갖춘 시민은 자신의 공동체를 위해 대화의 노력을 기울이는 자이며, 이런 노력이 정치공간을 창출해낼 뿐만 아니라, 정치가 올바로 나아가도록 하는 토대가 된다.
p 164 불편한 법과 나쁜 법은 구별해야 한다. 시민 불복종의 불법성에 대한 판단은 불복종의 대상이 된 법에 달려 있지, 불복종 자체의 범법성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p 182 아렌트는 우리에게 판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잘못된 판단이라도 아예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보다 내리는 것이 좋다고 한다. 사람은 실수할 수도 있고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잘못된 판단은 다른 사람과 소통하면서 수정하고 교정함으로써 바로 잡을 수 있다. 판단을 내릴 때 자신의 관점만을 고집하지 않고, 생각을 거듭해 사태를 면밀히 파악하고 자신의 관점을 수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판단을 아예 내리지 않으면 옳고 그름을 알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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