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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ㅣ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전병근 옮김 / 김영사 / 2018년 9월
평점 :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그 아는 것은 개인의 관심사와 전문성의 범주를 쉽게 벗어나지 않는다. 폭넓은 분야에 관해 일정 수준의 지식을 가지기란 무척 힘들기 때문에. 불과 몇 백 년 전만해도 그런 개인의 지식의 범주는 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요구되지도 않았다. 그저 개인의 삶에 집중하고 자신의 환경에 맞는 사회 방식만을 갖추고 있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런 정보의 습득은 현대에 이르러 모양새가 바뀌었다. 사회의 분업으로 발생된 경제의 세계화는 우리가 편한 삶을 살기 위해서 모든 세계가 서로 협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개인의 안락한 삶은 사실 다른 공간 누군가의 고통이 수반되어진 안녕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 사회는 무관심하며 자유주의 시스템 속에서 그들로부터 시선을 돌려 이익만을 도모한다.
하지만 다가오는 기술 발달로 시작되는 여러 위기들 속에 세계는 점차 공생 속에서 평등이란 가치를 추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조금씩 이타적인 방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마도 전쟁에서의 쓰라린 교훈과 함께, 찾아올 환경 위기로부터의 필연이지 않을까. 이제 우리는 그만큼 세계의 시스템들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세계가 끊임없이 발전하는 만큼 알아야 하는 것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그 방대하고 혼란스러운 지식의 범람 속에서 하라리는 필요한 지식들의 흐름과 인과관계를 조합해 흥미진진하게 구축된 서사로써 풀어낸다. 서술된 다방면의 역사와 사회의 지식들은 그가 세계의 안녕과 위기의 억제를 위해 고심했던 흔적이 느껴진다.
위트 있는 필치로 시대에 만연한 종교적 넌센스들에 대해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다. 유대 문화로부터 자라난 그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유년 시절 시작됐던 실존적 사고로부터 헤쳐나온다. 초장에 눈치를 봐야하는가 하는 저자의 고민이 있었는데, 그런 고민은 털끝만큼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는 거침없이 세계를 서술해나갔다. 세계로부터 시작된 그의 서사는 유일하게 확증하고 의심할 수 있는 '나'로 종지부를 찍으며 개인의 탐구로 결론을 짓는다. 나를 알아간다는 것 만큼 우리가 끊임없이 생각해야하는 것은 없으며, 그것은 곧 나를 다스리고 감정을 받아들임으로써 타인을 이해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태도로까지 커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시의적절하고 독자들이 궁금해 할만한 7가지 질문을 뽑아준 분 정말 감사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요근래 본 책 중에 가장 탁월한 인문 교양서가 아닐까.
p 29 러시아, 중국, 쿠바에서 혁명을 일으킨 것은 경제에서는 핵심적이었으나 정치권력은 누리지 못한 사람들이었던 반면, 2016년 트럼프와 브렉시트를 지지한 것은 아직 정치권력은 누리고 있지만 자신의 경제 가치를 잃는 것이 두려웠던 많은 사람들이었다. 아마도 21세기 포퓰리즘 반란은 사람들을 착취하는 경제 엘리트에 맞서는 구도로 전개될 것이다. 이는 지는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착취에 반대하는 것보다 사회와 무관해지는 것에 맞서 투쟁하기가 훨씬 힘들기 때문이다.
p 51 따라서 단지 사람의 일자리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교통과 의료 같은 분야의 자동화를 막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 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보호해야 할 궁극의 목표는 사람이지 일자리가 아니다. 남아도는 운전사와 의사는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p 79 만약 보편적인 경제 안전망과 더불어 강력한 공동체와 의미 있는 삶의 추구를 결합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알고리즘에 일자리를 빼앗기는 것이 실제로는 축복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것은 훨씬 무서운 시나리오다. 대량 실업의 위험과는 별도로, 우리가 훨씬 더 걱정해야 할 일은 인간의 권위가 알고리즘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알고리즘은 자유주의 이야기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파괴하고 디지털 독재의 부상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지도 모른다.
p 102 무수히 많은 다른 상황에서도 인간의 감정은 철학적 이론을 이긴다. 이 때문에 세계가 보아온 윤리와 철학의 역사는, 이상은 훌륭하나 행동은 이상에 못 미치는 우울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이 실제로 상대를 관대히 용서하고, 얼마나 많은 불교도가 이기적인 집착을 초월해서 행동하며, 얼마나 많은 유대인이 일상에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가? 이는 자연선택이 호모 사피엔스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호모 사피엔스도 감정을 사용해 재빨리 생사의 결정을 내린다.
p 174 민족주의에는 인간의 공감 반경을 확장하는 장점이 분명히 있다. 보다 온건한 형태의 애국심은 인간의 창조물 중에서도 가장 자애로운 것에 속한다 내 민족은 독특하고, 충성할 가치가 있으며, 나는 다른 구성원들에 대한 특별한 의무가 있다고 믿으면, 남들을 배려하고 그들을 대신해 희생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 문제는 선의의 애국심이 국수주의적 초민족주의로 변질될 때 일어난다.
p 194 하지만 우리가 살아남고 번영하고 싶다면, 인류는 그런 지역적 충성심을 지구 공동체에 대한 실질적인 의무감으로 보완하는 수밖에 없다. 개인은 자기 가족과 이웃, 직업과 국가에 동시에 충성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이 목록에 인류와 지구를 추가하지 못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 우리에게는 새로운 지구적 정체성이 필요하다. 국가 단위의 제도는 전례 없는 일련의 지구적 곤경을 다룰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p 206 21세기의 종교는 비를 내리게도 못하고, 병 치료도 못하고, 폭탄도 못 만들지만, ‘우리‘가 누구이며 ‘그들‘은 누구인지, 누구를 치료해야 하고 누구에게 폭탄을 투척해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p 250 미디어가 테러에 집착하고 정부가 과잉 대응하도록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 마음속의 테러인 것이다. 따라서 테러의 궁극적인 성패는 우리에게 달렸다 우리가 테러범들에게 상상력을 납치당하고, 우리 자신의 두려움에 과잉 대응하면 테러리즘은 성공한다. 반대로 우리가 테러범들로부터 우리의 상상력을 해방시켜 균형 있고 침착하게 대응하면 테러리즘은 실패하게 돼 있다.
p 293 많은 종교들은 겸손의 가치를 받든다. 하지만 그런 다음에는 자신들이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상상한다. 개인의 온순함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뻔뻔한 집단적 오만함을 뒤섞는다. 모든 종교가 겸손을 보다 진지하게 여기면 좋을 것이다. 모든 형태의 겸손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신 앞에서의 겸손일 것이다. 사람들은 신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자신을 극도로 낮춘다. 하지만 그런 다음에는 신의 이름을 활용해 신도들 위해 군림한다.
p 301 도덕의 의미는 ‘신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고통을 줄이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으로 행동하기 위해 어떤 신화나 이야기를 믿을 필요는 없다. 고통을 깊이 헤아리는 능력을 기르기만 하면 된다.
p 303 물론, 증오의 대상을 실제로 살해하지는 않은 채 마음속으로만 분노를 몇 년째 끓어오르게 둘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도 다른 누군가를 해치지는 않았지만 이미 자기 자신을 해친 것이다. 따라서 마음속 분노에 대해 무언가를 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은 본능적인 이기심이다. 만약 마음속 분노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다면, 혐오하는 적을 살해했을 때보다 훨씬 기분이 좋을 수 있다.
p 330 수중에 거대 권력이 있으면 모든 것이 나를 부르는 것만 같다. 어찌어찌해서 당신 자신은 이런 충동을 이겨낸다 해도 주변 사람들이 당신을 가만두지 않는다. 이들은 당신 수중에 거대한 망치가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당신과 이야기하는 사람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의제를 품고 있다. 그러니 그가 하는 말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도 없다.
p 351 1000명의 사람이 어떤 조작된 이야기를 한 달 동안 믿으면 그것은 가짜 뉴스다. 반면에 10억 명의 사람이 1000년 동안 믿으면 그것은 종교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가짜 뉴스‘라 불러서는 안 된다는 충고를 들어왔다. ... 좋든 나쁘든 허구는 인류가 가진 도구들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에 속한다. 종교적 신념을 통해 사람들을 한데 뭉치고 대규모 협력을 끌어낼 수 있다.
p 375 고통은 고통, 공포는 공포, 사랑은 사랑이다. 매트릭스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이 바깥 세계의 원자가 모여서 일어나는 것이든, 컴퓨터가 조종하는 전기 신호에서 생겨나는 것이든 상관없다. 어떻든 두려움은 실재한다. 따라서 우리 정신의 실체를 탐구하고 싶다면 매트릭스 안에서든 바깥에서든 어디서나 가능하다.
p 398 그런 세계에서도 살아남고 번성하기 위해서는 강한 정신적 탄력성과 풍부한 감정적 균형감이 필요할 것이다. 반복해서 지금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 중에서도 어떤 것은 버리고, 그전에는 자신이 몰랐던 것도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p 463 인류가 직면한 커다란 질문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고통에서 벗어나느냐"이다. ... 우리 인간이 세계를 정복한 것은 허구적 이야기를 만들고 믿는 능력 덕분이었다. 그래서 특히 우리는 허구와 실체의 차이를 아는데 서툴다.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우리에게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만약 그럼에도 차이를 알고 싶어 한다면 시작점은 고통이다. 세상에서 가장 현실적인 것은 고통이다.
p 470 인생의 큰 질문을 할 때, 사람들은 보통 콧속으로 숨이 언제 들어오고 나가는지 아는 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자기가 죽고 난 후에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인생의 진정한 수수께끼는 내가 죽고 난 뒤가 아니라, 죽기 전에 생기는 것이다. 죽음을 이해하고 싶다면 삶을 이해해야 한다.
p 483 문제는 사람들이 이게 단지 상상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잊고, 궁극의 실체라고 믿기 시작할 때 발생합니다. 그럴 경우 사람들은 이야기를 위해 서로에게 막대한 고통을 주기 시작할지도 모릅니다. ... 모든 책의 주된 목표는 사람들이 허구와 실체의 차이를 분간해서 결코 허구의 이야기를 실체로 오인하지 않고, 허구적인 것을 위해 실재하는 것들을 해치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실체인지 허구에 불과한지 알고 싶다면 "그것은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라고 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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