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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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공포 정치는 그들에게서 인간성을 말살하기 위해 고유의 번호로만 각 개별자들을 통솔하고 하나의 집합체로써 다루게 한다. 수용소라는 공간 안에서 한 인간의 자유는 극도로 억압되어지고 처참하게 존엄을 짓밟힌다. 그런 극단의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인간성을 잃어가는가? 어쩌면 그 비겁하고 초췌하고 탐욕적인 모습이 진짜 '인간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 탐욕적인 모습은 인간 기본의 생존 욕구에 따른 당연한 이기심이다. 오히려 최소한의 권리조차 보장되어지지 못한 조건에서만 갖추어지는 홉스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의 욕구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는 엄격한 지배 속에서 각자의 욕망을 최소화한 채 필연적인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오로지 생존하기 위해. 하지만 그들의 그 비참한 현실을 묘사하는 생존이라는 단어는 그들이 공동체이기 때문에 동시에 숭고함을 내포한다. '인간성'의 모습은 단지 추악한 이면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동료를 측은히 여기고 함께 오늘을 헤쳐나가기위해 힘을 합치며, 배고픈 타인을 위해 빵 한 조각을 건넨다. 이 모든 것이 결국 하나의 인간임을 묘사하는 것이다. 그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숙련된 '죄수'의 시선으로 솔직하게 그려내며 동시에 지배 권력의 극단인 공포 정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책을 읽는 내내 사실 군대의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모습을 지닌 현대 사회 속에서 가장 전체주의적인 시스템을 지닌 그 공간에서 행해졌던 훈련과 노동들은 수용소의 모습과 궤를 같이한다. 물론 책의 수용소처럼 처참하고 인권이 마구 짓밟히는 공간은 아니지만 그런 형식이 '국방'의 이름으로 아직도 존재한다. 이래서 세계에 투쟁은 없어져야 하는가 싶다.

p 152
지금은 겉옷을 풀어헤치는 일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제 집으로 들어갈 테니까 말이다.
이렇게, 모두들 <집으로 간다>라고 말한다. 이 집 외에 <다른 집>에 대해선 하루 종일 생각할 겨를이 전혀 없다.

p 194
슈호프는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갈 때까지 남아 계세요 체자리 마르코비치! 저기 저 구석에 숨어 있으면 돼요. 얼마 후에 간수와 당번이 순찰을 돌테니, 그때 밖으로 나와요. 몸이 불편해서 좀 늦게 나간다고 하세요. 그리고 그 다음에 들어올 때는 제가 제일 먼저 들어올게요. 그러면 아무도 손을 못 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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