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은 누구인가 - 건축가 김진애의 사람 사는 집에 대한 열두 가지 생각
김진애 지음 / 샘터사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당신은 어떤 집인가?"



시내에서 제법 큰 서점에 가서 점원에게 물었다.
“저어, 책 한 권만 찾아주세요.”
“책 이름은요?”
“이 집은 누구인가...”
점원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내게 되묻는다.
“뭐라고요? 집이 누구냐고요?”
만약,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그런 질문을 받았다면, 나는 일장연설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읽기 전이므로 나역시 점원과 같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없는 목소리로 대답해야했다.
“이 집은 누...구...인...가...라고 하던데요... 흠...”
점원이 결국 자신 앞에 있는 컴퓨터에 입력을 한다.
“이 집은 누구”
요렇게만 입력해도 두 권이나 검색이 되었다.
그제서야 나는 마음이 놓였지만, 점원은 아직도 ‘뭐, 이런 책이 다 있냐고...’하는 눈치였다. 하긴, 베스트셀러나 고전목록이나 수험서 등의 낯익은 책이름들만을 말하고 듣고 살기 바쁜 점원의 일상을 고려해보면, 이런 요상한 책이름 하나 정도 주고 받는 건 비타민과 같은 업무가 되지 않겠는가! 그런 흐뭇함을 더해 나는 드디어 이 책을 계산하고는 일부러 가방에 넣지 않고 한 쪽 손에 들고 집까지 왔다. 점원 뿐만 아니라, 나를 스치거나 멀리서 지나는 사람들에게도 한번쯤 요상한 책제목을 구경시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12개의 집 이야기...
목차를 보고는 12개를 차근차근 읽어가야겠다고 혼자 계획 아닌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나는 첫 번째 이야기인 ‘추억을 만드는 집’을 읽으며 이 작가 아니 이 건축가 아니 이 여자의 문체에 적잖이 당황했고 그 덕에 진땀을 뺐다. 소제목들을 보면 왠지 훈훈하고 부드러운 문체와 이야기가 기대되었건만, 막상 읽기 시작하니 뭔지 모를 도도함과 유쾌함들이 쉴새없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자신이 살아온 집에 얽힌 추억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유쾌하고 상큼한 에피소드들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짧고 명료한 문장들이 그 에피소드들을 마치 책 바깥으로 끌어내려는 듯이 쉴새없이 두들기고 있었다.
예를 들어, “가장 질색이었던 것은 화장실이다... 일단 이층은 ‘우리만의 세계’였다.....그런데 더 기억나는 사건은, 그만 한번 불을 낸 것이다...이 작은 집에도 ‘마당’은 어김없이 있었다... 이 집엔 ‘모험의 구석’들도 있었다...사실 한옥에는 소리가 많다....드디어 할머니댁이다... 시골의 부엌은 언제나 낭만적이었다... 동물들은 모두 떠나갔다...직업상 나는 수많은 집을 보았다....아주 복잡한 집이었다... 이 집은 또 ‘일하는 집’이었다... 꿈이란 자꾸 꾸면 이루어지나?... 사람들은 내게 많이 묻는다.... 나빠진 것, 귀찮아진 것도 분명 있다... 나는 꽤 모진 편이다...그런데, 세상은 또 변한다... 마당 있는 집에 산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아무래도 나는 가족과 함께 살 운명인 모양이다...”
이렇게 짧고 명료하고 구어체에 가까운 표현들이 모든 문단들 앞머리에서 도전적으로 제시되고, 그에 대한 부연설명들이 적당히 붙여진 이 추억담이 도무지 여성의 문체로 느껴지질 않았다. 하지만, 사실 내가 가장 바라던 여성작가의 문체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첫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추억으로 얽힌 이야기들이 무겁고 끈적끈적거리게 나열되던 박완서님의 문체와는 완전히 반대로군... 그리고, 자신의 감정으로 해석하는 데에 집중하는 공지영님이나 은희경님 같은 작가들의 관찰법과도 완전히 반대로군... 멋진걸?’이라는 생각을 하느니라 책을 잠시 덮어두어야만 했다.

방송을 통해 본 이 책에 대한 소개내용처럼,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도무지 이 작가가 건축가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만큼, 누구나 겪어본 누구나 느껴본 집에 대한 추억들이 나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축가라는 사람이 집에 대해 이렇게 소박하고 명료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게 얼마큼의 내공을 필요로 하는지를 나는 뒷이야기들을 읽으며 확인할 수 있었다.

김진애씨는 집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고 삶을 통해 집을 만들고 가꾸는 사람이었다. 구체적인 집관리에 대한 아이디어가 제시되는 ‘체험 동선 긴 집이 좋은 집’이나 ‘구석구석 많은 집’ 뿐만 아니라, 집을 통해 읽어낼 수 있는 우리 문화에 대한 통찰이 돋보인 ‘신(神)과 함께 사는 집’이나 ‘여자의 집, 남자의 집’을 차근차근 읽다보면 그녀가 얼마나 집에 푹 빠져있고 동시에 얼마나 집과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깊고 넓은 삶을 개척해나가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공간에 대한 남다른 통찰이 돋보이는 ‘에로스를 즐기는 집’이나 ‘중심 잡힌 집’이나 ‘시간의 갤러리가 되는 집’은 철학적 에세이로서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또한, 독자를 배려한 흔적이 돋보이는 것은 뒤로 갈수록 전문가로서의 조언이 자연스럽게 제시되는 이 책 내용의 배열이다. 열한번째 이야기 ‘길들이며 사는 집’과 열두번째 이야기 ‘혼자 있어 보는 집’은, 집에 대한 전문가의 뛰어난 조언들이 알차게 채워진 이야기들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조언을 몇 개 뽑아보자.
“집과 자기의 궁합을 맞추고 나면 집을 더욱 아끼게 될 것이다. 집을 돌본다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성의를 들일수록 정은 더욱 깊어간다”(317쪽) “모든 집이 그 집만의 색깔이 느껴지는 집이면 좋겠다. 크기로 삶이 정해지고 값으로 가치가 매겨지지 않는 집다운 집이 되면 좋겠다... 집은 누구인가. 집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338쪽)

그렇게 열두편의 이야기를 다 읽고 나니, 점원이나 내가 당황해야 했던 이 책의 제목, 아니 김진애씨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 “이 집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 도출되었다. “이(내/우리) 집은 (나/우리)이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집에 대한 통찰은, 바로 나 혹은 우리의 삶 자체에 대한 통찰인 셈이다. 나는 나답게, 우리는 우리답게, 그러면서 서로를 아끼고 서로에게 정들어가면서, 진정한 가치를 담아가야하지 않겠는가!

김진애씨의 삶은, 건축으로도 글로도 그런 방향을 우리에게 일러주는 것이리라. 나는 그녀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집인가?” 그렇다면, 그녀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체험동선이 길고 구석구석이 많고 신(神)과 함께 하며 여자, 남자가 교차하며 에로스를 즐길 줄도 알고 중심이 잡히고 시간의 갤러리가 되어가는 그런 집....”이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