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장날 - 이흥재 사진집
이흥재 사진, 김용택 글 / 눈빛 / 2001년 11월
평점 :
품절


사진에 대해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닌 이상, 사진집을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하진 않을 것이다. 나또한 애써 공들여 구입하지 못한 채 동네 도서관에서 이 작고도 제값하는 사진집을 빌려 보게 되었다. 사진이 예술의 영역인 탓에, 사진가들은 곧잘 먼나라 이야기 같은 환상적인 장면을 즐겨 찍는 듯 하다.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평생 한 번 볼까 말까한 멋진 일출이나 월출 장면, 일년에 한 두번 갈 수 있을까 말까한 멋진 숲속길, 섬, 바다.. 아니면, 여간해서는 자세히 들여다 볼 겨를 이 없는 아름다운 풀꽃, 나비, 나무... 그런데, 이 구수한 사진작가분은 유달리 장터를 돌아다니시며 다 늙어가는 이들과 비위생적인 국수그릇들과 촌스러운 옷차림, 장신구들을 열심히 찍어오셨다.

그리고, 너무나도 야릇한 유년시절의 고통과 패배감을 올올히 펴놓는 김용택 시인의 글까지 더해져, 장터를 주제로 한 신기한 사진집 한 권이 탄생한 것이다. 한 장 한 장 사진을 들여다보고, 한 시인의 구수한 곁말들을 쫓아 읽다보면, 나는 어느새 나의 늙어감과 나의 싸구려 식성과 나의 유치한 패션감각을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 자연스러움은 아무런 설명과 논박이 필요없는 그냥 삶 자체의 향기인 듯 싶다. 흑백 사진속의 사람들과 물건들과 동물들과 공간들을 헤집고 다녔을 작가의 노고에 비해, 과연 이 책의 판매가격이 적절한 수고비가 될런지 미안한 생각도 좀 들었다. 제값하고, 혹은 가격에 비해 가치가 너무 높은 이런 사진집을 앞으로도 가끔씩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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