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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와 인간 - 인문과 역사로 습지를 들여다보다, 2008 환경부 우수환경도서
김훤주 지음 / 산지니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습지’라는 자연상태, 지리적 형태, 생활공간적 의미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제공한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습지’가 ‘내륙습지, 연안습지, 산지습지’로 나뉘는지도 몰랐고, ‘논’도 ‘습지’라는 걸 몰랐다. 우포늪의 원래 이름이 정겨운 ‘소벌’이라는 것도 몰랐고, 습지가 홍수도 막아주고 수질도 정화시켜주고 수많은 생명체들을 보호해주는 터전이라는 것도 잘 몰랐다. 습지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말밤을 먹었고 고기잡이를 하면서 습지를 사랑하며 대대로 살아온 줄도 몰랐다. 습지에 물옥잠, 개구리밥만 있는 게 아니라 가시연, 노랑어리연, 자라풀, 골풀, 털개구리미나리, 뚜껑덩굴 등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 책을 읽기 전의 습지에 대한 내 무지함이 과연 나 혼자만의 문제였을까?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 ‘땅과 물이 어우러진 질펀한 공간’에 대해 우리 대부분은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다. 이 점이 저자가 습지에 대한 취재를 거듭할수록 더욱 큰 사명감으로 ‘습지’에 대해 정성껏 글을 쓰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 책에 대한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저자의 정성은 나를, 우리를 충분히 가르칠 만한 이야기로 완성되어 있었다. 습지를 무조건 개발대상으로만 보고 함부로 ‘유용’하게 써먹으려고 했다가 ‘부분적인 유용’을 통해 ‘전체적 혹은 총체적으로는 무용지물’로 전락시켜온 우리의 시행착오들을 저자는 아프게도 매번 콕콕 짚어내고 있었다. 경상남도 내륙, 연안, 산지 대표적 습지들이 저마다 그런 아픈 사연들을 가지고 있음을 저자는 함께 취재했던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다.
“습지의 새들을 쉽게 보려고 새들이 더 살기 어려워졌다. 사람 위주로만 생각하니까 새들이 살 수 없는 조건이 되었다. 새들이 찾아오게 하려면 사람을 불편하게 해야 한다”(낙동강유역 관리단 이현주 팀장)
“해안도로가 문제다. 콘크리트로 땅과 갯벌을 끊어버리니 갯벌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 자연해안이 망가지면 갯잔디가 못자라고 갯잔디가 못자라면 새들도 먹이감이 줄어 오지 않는다”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윤미숙 정책실장)
“오프로드가 망쳐놓았다. 지프를 끌고 다니면서 공무원들이 한 일이라곤 자연파괴밖에 없다. 이제 산들늪까지 해코지 당했다.”(전 공무원노조 밀양지부 지부장 이정우씨)
저자가 소개하는 따끔한 지적들을 읽으면서 나는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 이렇게 문제를 알리기 시작하니까 뭔가 해결되어갈 징조가 아닐까? 혹은 이렇게 강하게 비판하는 것은 그만큼 습지가 함부로 훼손되어 온 역사가 깊다는 것일 텐데, 과연 오래도록 잘못된 개발흐름을 막을 수 있긴 할까?’ 이런 생각을 은연중에 마음속에서 지우지 않았던 덕분일까? 최근 지역방송(KNN)에서 특집 프로그램으로 ‘습지’에 대한 다큐멘타리를 10부작으로 제작하여 주말마다 방송을 해주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책 속에서 만나던 크고 작은 습지와 그 근처의 산과 강과 사람들 이야기를 생생한 영상화면으로 만나게 되니 정말 반가웠다. 최소한 나라도 내 생활 속에서 습지에 대한 예의, 감사함, 신선한 감동을 조금씩 알게 되어가는 것이 퍽 다행이다 싶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습지로 천천히 흘러들어가는 법을 배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