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의 길을 가라> 서평단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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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의 길을 가라 - 인생의 숲에서 길을 잃은 당신을 위한 안내서
프랜시스 타폰 지음, 홍은택 옮김 / 시공사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인생의 숲에서 길을 잃은 당신을 위한 안내서"라는 문구가
책제목인 "너만의 길을 가라" 위에 자그맣게 쓰여져 있다.
그렇다면 글자 크기로 보아 "~~~안내서"가 부제인 셈인데,
오히려 부제가 제목으로 더 적절하다.
왜냐하면, 이 책은 현재 자신의 인생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
-즉, 인생의 숲에서 길을 찾아낸 사람들-이 이미 터득한 삶의 작은 지혜를 다루므로
현재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 정도에게만 도움이 될 책이기 때문이다.
또, '너만의 길을 가라'라는 다소 명상적인-범위가 넓은- 문구보다는
원제목인 'HIKE YOUR OWN HIKE'가 글의 구조나 내용을
더 잘 예측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딱맞는 제목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
작가는 AT종주라는 기나긴 여행길을 매개로 인생에서 적용할 만한 교훈을 추출해낸다.
목차를 보면 작가가 정리해낸 일곱 가지 원칙을 확인할 수 있다.
첫번째 원칙 -인생의 숲 깊은 곳에서 오직 너만의 길을 가라
두번째 원칙-거친 황야에 우뚝 솟은 정상의 열병을 조심하라
세번째 원칙-차가운 바위 그늘에 숨겨진 열정의 씨앗을 캐내라
네번째 원칙-오래된 낙엽 밑에서 앞서간 이들의 발자국을 발견하라
다섯번째 원칙-위대한 진실을 찾는다면 가장 단순한 진리를 살펴봐라
여섯번째 원칙-숲에서 만난 낯선 여행자에게 배려하는 마법을 행하라
일곱번째 원칙-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임을 기억하라
그런데,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작가가 여행인으로서 종주를 함으로써 삶의 교훈을 얻은 것이 아니라
상담가로서 다소 의식적으로 삶의 교훈을 찾기 위한 방편으로
종주길을 선택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리 가나 저리 가나 '종주를 통해 얻은 교훈'을 다룬 책이 나올 수 있겠지만,
지혜를 의식한 채 완주한 이 종주 이야기에서는
왠지 작가의 깨달음이 그리 절절한 것으로 느껴지질 않는다.
뭐랄까?
깨진 장독에 열심히 물을 들이붓는 성실한 자세는 보이지만
결국 그 장독을 끝내 채우지 못하고 말 것 같은 불안함이 작가에게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불안함은 에필로그에서 다음과 같이 확인된다.
pp.334-335
나는 지금도 다음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미래의 모험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지는 모른다. 다만 익명으로 온 다음의 이메일이 몇 가지 아이디어를 주었다.
"내가 아무리 신경을 많이 써주더라도 어쩔 수 없는 멍청이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신뢰를 쌓는 데는 수년이 걸리며 신뢰를 무너뜨리는 데는 명백한 증거가 아니라 단지 의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배웠다. 자신을 남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남들은 생각보다 더 엉망이다.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뒤따라다녀서 그들이 놀란 나머지 내 요구를 받아주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은 너무 빨리 떠나가고 덜 중요한 사람들은 영원히 가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중략>"
익명의 이메일 내용은 어수룩하기만 하다.
작가가 글 전체에서 제시한 일곱가지 원칙을 묵묵히 실천으로 옮긴다면
다 저절로 해결될 문제들을 나열해놓은 글이다.
그런데, 이 유치한 이메일 내용이 작가에게 새로운 여행의 아이디어를 준다는 것은
작가 또한 이메일 작성자처럼
여전히 삶의 지혜를 체화해내지 못한 수준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즉 작가의 깨달음-앎-은,
'지행합일'이 아닌 '생각 따로' '행동 따로' 수준의 것이 되고 마는 셈이다.
아직, '자신의 길만을 묵묵히 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삶으로 체화하지 못한 사람'이 쓴
'자신만의 길을 가라'라는 글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여기저기 재미있는 일화나 비유나 인용문들로 잘 꾸려놓은 이 책 전체에 대한 신뢰가
에필로그에 이르러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
좋은 책은 어떤 구조를 갖추더라도
작가의 의식 수준의 일관성이 엿보이기 마련이다.
경전을 보고, 고전을 보면
깨달음에 대한 텍스트들이 갖춘 '언어를 뛰어넘는, 일관된 사유'라는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어떤 상황에 처한 사람이 읽더라도
작가의 일관된 의식, 체화된 의식을 느낄 수 있는 책이 좋은 책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