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옥은 '불륜'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지니고 있는 작가이다.
  흔히 '불륜' 이란 단어는 <목숨> 이나 <흰 달>과 같은 작품에서 공선옥의 주인공들이
  끔찍하게 드러낸 것처럼 남녀간의 잘못된 상열지사를 지칭할 때 애호되는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단순히 그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삶이 이상을,
  육체가 이성을 배반하고야 마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을 일컫는다.
  한없이 혼돈스러워 보이는 이 세상이지만 엄연한 이상이 제시되고
  이성의 원리가 작동된다.
  하지만 그것들은 얼마나 자주 삶의 영역에서 거부되고 마는가?
하여 이상과 이성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 그것이 '불륜'일 때, 인간의 운명은 또 문학은
도덕이나 윤리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불륜'에 속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예를 들어 공선옥이 "미물인 산짐승들도 겨우살이 준비를 하는 이 가을에 나는 무엇으로 두 아이의 양식을 사고 무엇으로 추위를 막을 의복을 살까" (p.16) 라고 거듭 물으며 "자고로
 애 키우는 집이 부엌이 깨끗해야지. 어미 된 자로서 내 지론이다"(p.73), "자기 자식에게 먹일 음식을 행복한 기분 없이 불행하다, 또는 비참하다 하며 만든다면 그 어미가 어떻게 진정한 '어미'가 될 수 있겠는가를. 그런 여자는 맞아 죽어도 할말이 없다고 생각한다"(p.159)
 라고, 그것이 어미의 도덕이고 윤리라고 곡절하게 말할 때에도, '불륜'은 그것을 간단하게
제압해 버린다. 그럴 때 밥의 평등과 같은 귀한 가치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성이고 이상이지만 체험은 늘 '불륜'상태인 것이어서 공선옥의 주인공들은 뱃가죽으로 '어쩔 수 없는 것' 위를 기어다닌다.
이렇게 말해 놓고 보면 '불륜'의 감각은 체험한 자만의 육즙이다. 윤리 도덕주의자들은 이상과 이성만
보고 믿는 고로, 삶의 육체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당위만을 말한다. 그래서 '먹물'들은 공선옥의 어떤 주인공이 영미제국주의자의 팝송(블랙 사베스의 <쉬스 곤>)을 들으며 "순은 음악을 듣자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p.193) 라고 말하는 대목에 아무 역사적 판단 없이 감정이입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로 거기서, 공선옥의 '불륜'이 윤리도덕주의자들의 앙상한 육체를 훨씬 뛰어넘어 빛나는 비행을 하는 장관을 보았다. 지독한 외로움과 슬픔, 그것들이 불러오는 욕설...... 세상의 끝에서 더는 밀려 나갈 수 없기에 행해지는 강행군, 그리고 그토록 끔찍하기 때문에 분별없이 요청되는 뜨거운 사랑! 이것이 공선옥의 소설이다.

***

독서일기 2권에서 공선옥의 "피어라 수선화" 를 읽고 난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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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14 2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레져 2005-09-14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요? 저두 5권은 있어요. 저는 2권 5권만 있군요. 요런~

파란여우 2005-09-14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정일은 1권에서는 신산한 체험이 녹아있는 글쓰기를 하는 공선옥같은 작가가 많이
나와 줘야한다고 극찬을 하죠.공지영이나 신경숙은 시스터후드라고 비난하면서 공선옥의 글빨은 좋아하는 장정일...음..사실은 저도 그래요..후후^^

플레져 2005-09-14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공선옥과 공지영의 책을 읽었다로 시작한 일기에는 공지영에게 장편에서 보여주던 "칠칠치 못한 문장이 말끔히 가셔져 있다" 고만 쓰고는 바로 공선옥 예찬입니다 ^^ 저두 공선옥이 훨씬 좋습니다.

2005-09-14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삶이 이상을, 육체가 이성을 배반하고야 마는 어쩔 수 없는 현실..색다른 불륜론이라 해야 할까요..제가 최근에 (그래봤자 1년?) 읽은 책은 너무 체험이 읽혀서, 그것들이 외려 거부감을..

플레져 2005-09-14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선옥의 불륜은 아마도 사람에게 가능한 어쩔 수 없는 일로 그려지나 결코 그것에 대한 환상은 없지요. 한쪽의 방패가 불륜으로 막혀 있을 때 그 반대편 방패는 지독한 현실이 있으니...

이리스 2005-09-15 0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사실 양쪽면을 본다는 건 쉬워 보이면서도 쉬운게 아니지욥.
그나저나 장정일의 독서일기라면 늘 빼놓지 않고 봐왔는데.. 그 때,, 새 독서일기가 나올때마다 떨리는 기분으로 책장을 넘기던 그 때가 그립네요~

2005-09-15 1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