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을수도 있어요, 조심하려 애쓰겠지만 1그램의 스포일러는 어쩔 수 없어요*
그가 마침내 다시 세상에 나왔다. 하얗게 쏟아지는 빛, 노랗고 너른 건강한 땅에 그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몹시 조용하다. 그가 그 곳에 다시 서기 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다는 듯 세상은 과묵하고 적막하다. 원래 세상은 그렇게 고요하고 평화로웠던 것이다. 언제나 소란스럽고 시끌벅적 다투고 있는 건 나 혼자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본디 고요한 곳이었다.
오호라, 요 긴 머리 아가씨가 스스로 자기의 길을 찾아버렸다. 힌트는 처음 구경한 세상에서였다. 그곳에서 보았던 어떤 심볼이 나의 먼 기억을 깨우고 퍼즐을 맞춰 완성시켰다. 순전히 자신의 눈썰미로 이룩한 쾌거. 처음으로 3D 를 본 거였는데 3D 안경이 너무 컸다. 그 안경은 어느 푸른 해변, 긴 비치의자에서 크림파스타를 먹기 위해 머리띠에 잠시 고정시키는 용도로만 써야 할 것만 같다. 우리에겐 너무 큰 안경.
만약 내가 버려야할 것이 있다면 맞지 않는 옷이어야 한다. 내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참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걸 버리기 위해선 어떤 계기가 폭풍처럼 다가와야 한다. 아주 흔한 소재가 카메라 워크로 빛이 난다, 빛이. 그로 인해 식상해진 것들이 인상적인 아우라가 된 어휘가 몇 가지 있다. 뜻밖에, 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예상하지 못한, 이 이토록 매혹적일 수 있을까. 뜻밖에와 예상하지 못한을 건너고나면 결국, 이란 편안한 자리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여전히 세상은 고요하고 나는 소란스럽다. 영화를 함께 본 친구와 올봄에 틸다 스윈턴이 입었던 오렌지색 바지를 한 벌씩 장만하기로 했다. 우리 동네 옷가게에서 그걸 보고 말았다. 다음주에 친구와 들러야겠다. 사이좋은 친구와 같은 옷을 입는다는 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