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다. 어째 마음이 11월보다 더 스산하다. 반짝 햇살이 난 창밖을 내다보다가 옆집 문소리가 들려 냉큼 문을 닫았다. 몇 명이나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지난번 이웃보다 꽤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들락거린다. 재활용을 버리는 날이어서 아침부터 서둘렀다. 막 나가려는데 옆집 사람들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엘리베이터를 탈 때까지 문 앞에서 서성였다. 첫 대면인데 '자다 깬 얼굴의 옆집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다.

 

   
  Eva Cassidy - Live At Blues Alley

  에바 캐시디의 음반을 가을이 오는 날부터 듣고 있다. 틈틈이 들어왔지만 유독 가을과
  겨울에 잘 어울리는 음색이다. 몇 번 리뷰를 쓸까 시도했는데 쓸 수 없었다.
  나는 그녀의 음악을 글로 표현할 수 없다. 에바의 음악은 듣는게 먼저다. 에바에 관한
  글은 하나 소용없다. 스팅의 fields of gold를 듣고, 나는 스팅이 그녀의 노래를 리메이크
  한 줄 알았다. 스팅한테 그랬다. 제법인걸? 알고보니 에바가 스팅의 노래를 리메이크했고
스팅은 자신의 노래를 멋지게 불러준 에바를 칭찬했다. 에바는 33살에 하늘로 가버렸다. 그녀의 앨범들마다
리메이크 한 곡들이 한 두개씩 들어가 있는데 원곡을 생각나지 않게끔 자신만의 음색으로 소화해는 것,
에바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비틀즈의 어제, 암스트롱의 멋진 세상, 사이먼 앤 가펑클의 험한 세상의 다리가되어, 신디 로퍼의 (필 콜린스의) 시간이 흐른 후에 등을 듣고 있으면 지금 죽어도 괜찮을 것처럼 너무 좋다.

 

 Suite For Flute And Jazz Piano Trio

 끌로드 볼링의 음악으로 아침을 시작한다는 어떤 남자애가 있었다. 원숭이처럼 생긴 얼굴에
 수줍음은 십칠세 소녀를 경악케 할 정도였다. 그 남자애는 용기를 내어 나한테 이 음반을 
 전해주는 거라고 했다. 용기를 냈다는 얼굴이 어떤 얼굴인지 그날 처음 알았다. 나 역시 
 튕김질이라면 신봉선 육성회장을 기겁하게 할 정도였으므로 받지 않았다.
결국 이 음반은 집으로 배달돼왔다. 하트가 오백개는 그려진 카드와 함께. 그게 바로 어언 몇 년전이냐...
 
얼마전에 휴대폰을 바꿨다. Baroque and Blue는 나와 오년 째 인연을 맺고 있는 그룹이 전화를 걸어올 때 울린다. 자주 전화를 걸어오는 그룹이긴 한데, 그 음악이 울릴 때마다 그 남자애가 생각난다. 전화를 끊을 땐 잊어버리고 말지만... 끌로드 볼링의 연주도 좋지만 나는 그의 음반 재킷들이 참 마음에 든다. 사진이 아닌 그림들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누가 그렸는지 조사는 안해봤다. 책상 한 켠에 그림처럼 세워놓았었던 소품 구실 톡톡히 하는 음반이다. 하트 오백개가 그린 카드는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다. 

 

  Isao Sasaki - Moon & Wave
 
  어떤 경로를 통해 엘비스 프레슬리의 'Blue moon'을 듣게 되었다. 러브 미 탠더를 부른
  사나이답게 참 훌륭한 노래였다. Blue moon을 검색창에 넣고 쳐보았다. 이사오 사사키의
  음반이 덜렁 걸려 있었다. 그날부터 쭉, 내가 특히 좋아하는 이사오 사사키의 음반이다. 
  문 리버를  비롯해 moon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노래들로 한밤의 서정을 연주한다. 
  파도소리가 잔잔하게 퍼지고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듯 시작되는 피아노 연주. 사랑한다는 말이 절로 나올지 모르니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는 이 노래를 듣지 말 것.

 

  Julie Sings Love

  줄리 런던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에바의 언니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긴다.
  에바처럼 허스키하지만 격조 높은,
  무도회장의 능수능란한 백작부인같은 차림이 연상된다.
  노래 말미에서는 지금까지 이 모든 노래는 너를 위한 거였다는 멘트처럼 
  확실한 매력을 분위기를 풍긴다.
러브 레터, 를 듣고 있으면 정말 러브 레터 한 통 쓰고 싶어지고 
블루 문을 (이 음반에도 엘비스의 블루 문이 있으나 전혀 다른 분위기) 듣고 있으면 불가능한 사랑에도 푹 빠지고 싶어진다. 서양에서 블루 문의 뜻은 한 달에 두번째 뜨는 보름달을 말하는데 의미는 불가능한 일을 말하는 거라고 한다. 19년 동안 블루 문을 볼 수 있는 확률은 7번. 한동안 블루문에 매료되어 어줍잖은 이야기를 만든 게 생각난다.

 

 Balkans 
 
 kheops는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아티스트들 끼리의 음악적 교류를 지향하기 위해 
 만든 프로젝트 그룹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after the war. 이 노래는 다음의 
 어느 음악 카페에서 처음 듣게 되었다. 
 한 남자가 너무나 멋있는 사진과 음악으로 태그를 만들어 시와 함께 올려놓곤 했다.
 그저 듣기만 하다가 딱 한번 댓글을 남겼는데 남자의 홈피로 초대를 받았다.
내 댓글에서 문학의 향기가 풍겼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말에 혹해서 낼롬 홈피로 갔다.
남자의 홈피는 검은 색 바탕에 초록과 블루가 음울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홈피는 음악천국이었다. 
남자는 아주 고독하게 벽을 쌓으며 사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누구를 쉽게 만나지도 않았고 그저 영화와 음악, 사진에 묻혀 살고 있었다.
컴을 바꾸면서 그남자의 주소도 사라졌다. 닉네임조차 생각나지 않지만 음악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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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12-01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휴대폰을 바꿨다. - 엥..?? 스토킹입니까..??
(어디서 토킹질이야~ 이런 건 아니시겠죠..??)

-카산드라 윌슨은 12월에 듣기엔 너무 걸쭉하겠죠.?? ^^-

플레져 2006-12-01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몇 년 전 일이라고 한 줄 첨가했습니다 ^^
걸쭉한 그 노래 들려주삼.

2006-12-01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레져 2006-12-01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그룹별로 벨소리 달리 하는 게 저의 취미 중 하나여요 ㅎㅎ
음음. 제가 그랬답니다. 소싯적에... 신봉선 육성회장을 능가했죠 ^^;;;
음악은 영화에요. 그 음악을 처음 들은 날이 확연하게 떠올라요.

야클 2006-12-02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전부 다 근사한 음반이네요. ^^

플로라 2006-12-02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시경과 넬로만 가을을 보냈는데, 줄리 언니와 이사오 아저씨 음악, 으로 12월을 보내야겠어요. 멋진 음악들...^^ 추천 꾸욱! ㅎㅎ

플레져 2006-12-02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근사한 음반과 함께 겨울 나세요 ^^

플로라님, 줄리 언니가 이 겨울에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사사키씨의 음악에선 여름이 연상되어 좀 추울지도 몰라요 ^^

2006-12-03 0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2-04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2-07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