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여정
박대영 지음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미완의 묵상과 그 이후



책의 제목과 표지만 봤을 때는 지난 20여 년간 커다란 흐름처럼 전국 각지의 교회로 퍼져나간 큐티를 다시 꺼내들거나 그보다 더 깊게 성경을 읽고 묵상하려고 했으나 작은 흐름에 멈추고 만 묵상 운동의 부흥을 꾀하려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그런 추측을 무색하게 한다.


창세기가 보여주는바 인간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써 그분과의 관계 단절을 초래했고, 그 죄의 연쇄작용으로 자기 자신과, 타인과, 그리고 피조세계와 불화하게 되었다. 죄의 파장이 그러했듯이, 구원의 효과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시작하여 자기 자신과의 화해, 이웃과의 관계에 눈뜸, 피조세계에 대한 청지기직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전인적이고 총체적인 구원의 삶으로 나아가는 여정의 길목에 이 책이 말하는 묵상이 있다. “정말 갈망해야 할 것은 너무 적게 갈망하고... 무익한 것만 갈망”하는, “묵상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인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사람으로 돌아가도록 해주는 여정, 그것이 곧 묵상인 것이다.


이 책은 큐티라는 말로 대표되는 성경 읽기 운동이나 어떤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묵상은 그보다 크고 풍성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묵상은 집요한 사랑의 추격자이신 하나님과 그 하나님이 찾으시는 나를 만나는 과정으로서, 이 세상이 정해 준 잣대를 내던지고 “하나님의 시각을 회복”함으로 “나 자신과 나를 지으신 하나님,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과 나를 둘러싼 숱한 관계들을 새롭게 보는” 일이다. 그 목적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묵상이란 취향과 필요에 따라 택해도 되는 선택 과목이 아닌 필수 과정인 셈이다. ‘묵상의 여정’이란 제목에서 ‘묵상’ 대신에 ‘신앙’, ‘구원’, ‘인간’이라는 말을 넣어도 될 만큼, 묵상은 이 땅의 신앙인이 오늘을 살아가는 길이자 하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여정이다. 마침내 하늘이 되기까지 이어갈 여행이다.


책에서는 묵상의 기술이나 구체적인 묵상법을 다루지 않는다. 다만 오랜 시간 한 방향으로 순종해 온 사람, 묵상을 통해 긴 세월 그분과 사랑의 길을 걸어 온 이의 자기 고백과 연서(戀書)와도 같은 떨리는 설렘이 감지될 뿐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매혹은, 독자들로 하여금 나도 그와 같은 묵상의 길을 걷고 싶다는, 그리하여 그분을 알고 내 인생의 목적을 확인하여 풍성한 삶을 누리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자극하는 데 있다. 이렇게 하면 저런 결과가 나온다는 구체적인 방법 제시보다 훨씬 강력하고 근원적인 유혹이 아닐 수 없다. 가장 좋은 설교가 잘못을 지적하거나 어떤 결단을 촉구하기보다는 그렇게 살고 싶은 자연스런 마음의 소원을 이끌어 내는 것처럼, 책을 읽어 갈수록 그분을 더 알고 싶고 그분과의 풍성한 관계로 뛰어들고 싶고 그분의 세상 속으로 묵묵히 걸어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묵상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다. 묵상은 하나님과의 만남이고 교제이기 때문이다.”


신앙 성장을 위해서는 크고 좋은 교회를 다녀야 하고 열정적인 찬양과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예나 지금이나 솔깃한 목소리로 귓가에 들려온다. 그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신간 도서를 찾고 페이스북을 훑으며 더 나은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나는 과연 빠르고 유용한 방법론을 주창하는 이들과 얼마나 다른지 헷갈릴 때도 있다. 그러다가 끝내는 그 모든 것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냉담자의 모습으로 굳어진 게 오늘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린 것이며, 어디서 길을 잃은 것일까? 수천 년 전 시편 기자들의 노래가 지금 우리 가운데서 새로 쓰여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며, 윤동주 이후로 마음을 움직이는 신앙시가 드문 까닭은 무엇일까? 감동적인 설교나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 신간 서적과 새로운 철학이나 신학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그분의 말씀인 성경으로 돌아가 거기서 그리운 님을 만나고, 그분을 누리고, 그 말씀대로 살아내는 것, 우리가 잃은 것이며 우리가 길을 잃은 이유다. 개신교를 낳은 종교개혁은 성경을 읽는 운동이었고, 그 책을 읽는 것이 곧 혁명이지 않았던가(<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자음과모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책을 읽기, 읽되 천천히 읽기, 깊이 읽기, 삶으로 읽기, 즉 묵상인 것이다.


알렝 드 보통의 에세이처럼 유려하고 아름답게 쓰여진 글 속에서, 팽팽한 긴장 가운데 날실과 씨실로 짜인 루이스와 피터슨, 나우웬, 헤셸, 브루그만, 김교신 같은 신앙 선배들의 지혜를 엿보는 기쁨 또한 만만치 않은 독서의 즐거움이다. 그동안 해외의 영성 작가들을 기대서 주로 접할 수 있던 보석 같은 영성 고전들의 맛깔나는 인용과 탁월한 정리를 이 책에서 풍성히 맛볼 수 있다. 이제 묵상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더 이상 외국의 저서를 우선 참고하지 않아도 되겠다. 더 깊은 묵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지도와 조언을 이 한 권에서 충분히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제는 너무 쉽게 만족하는 데 있다고 C. S. 루이스가 말했던가. 빠름과 즉각성에 장악된 듯 보이는 세상을 따라가려다 그분 앞에 멈추어 정주(定住)하는 법을 잃어버린 신앙인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변하는 세상과의 속도 경쟁을 끊고 방향을 재설정한 후 그 길을 즐겁게 꾸준히 걸어가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다. 그러나 어려움을 감내할 만큼 충분한 즐거움이 잠복해 있는 길이다. 쉽게 행복하려는 사람은 굳이 이 묵상의 여정에 나서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땅의 현실이 마뜩치 않은 사람은 이 책에서 초대하는 묵상의 여정에 서기 위해 길을 나설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첫발을 내딛는 것이다. 서두르지 말고, 너무 큰 걸음으로 걷지도 말고, 너무 빨리 달리지도 말고, 꾸준히, 지속적으로 걷는 것이다.” 이 책을 벗 삼아 성경을 펼치고 어느덧 아스라해진 그분과의 여행길을 다시 떠나 볼 일이다.


-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2013년 1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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