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욕망하는 경건한 신자들 - 경건과 욕망 사이 사이 시리즈 4
백소영 지음 / 그린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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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그리스도인이 욕망해야 할 단 하나의 욕망


개신교는 외로운 종교라고 한다. 가톨릭은 항공모함을 타고 있는 것과 같아서, 일단 승선하고 나면 구원의 확신에 흔들림이 없다. 미사에 참석하여 성체를 받는 것만으로도 구원의 확증을 얻는다. 허나 개신교인은 작은 배를 타고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를 젓는 사람과 같다. 노 젓기를 멈추면 배는 어느새 뒤로 흘러 내려간다. 대신해줄 동료도, 물의 흐름을 견뎌줄 거대한 배도 없다. 홀로 부단히 노를 저어야 하는 것이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도 ‘은혜’를 받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구원의 확신을 수시로 경험하지 않으면 불안한 신앙인이다. 그래서일까, 정신병을 앓는 사람의 수치가 개신교인이 가장 높다고 한다. 개신교는 태생적으로 외로운 이들, 내적 고립감에 직면한 이들의 종교인지도 모른다.


부패한 중세 가톨릭과 결별하여 다른 경건을 추구하던 개신교인들은 어쩌다가 그들이 결별한 세속에서의 성공을 추구하게 되었을까? 저자는 오늘날 개신교인들에게서 발견되는 경건과 욕망의 친화적 관계, 경건을 연료로 해서 성공을 추구하는 기형적 현상이 자리하게 된 역사적, 신학적 연원과 발달과정을 추적한다. 신 앞에 선 단독자요 만인제사장임을 주장하며 가톨릭에 저항한 개신교인은 그들의 구원 상태를 입증해줄 것이 필요했다. 그때 개신교 성직자들이 제시한 것은 ‘소명으로서의 직업’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직업 활동은 ‘구원에 도달하는 수단’은 못 되더라도 ‘구원에 도달해 있음을 확인하는 수단’은 될 수 있었다. 즉 노동에서의 성공이 구원 소유의 유무를 알려주는 척도가 된 것이다. 가톨릭이란 거대 조직을 떠나 근대인이 된 개신교인이 마주친 전대미문의 내적 고립감, 그 외로움과 불안을 그들은 노동에서의 성공으로 채워갔던 것이다. 마르틴 루터부터 오늘날 우리나라의 상황까지, 저자의 거침없는 설명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성공이 믿음 좋음의 척도가 된 이 땅의 현실이 이해가 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역사적 우연성에 의해 결합된 두 지향성, 즉 경건 실천과 경제적 욕망 사이의 친밀성을 해체”할 것을, 유일한 참 욕망인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을 욕망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경건과 욕망 사이의 불안한 줄타기에서 내려와 ‘외로웠던 사람, 행복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좇는 공동체와 함께 그 일을 추구한다면 개신교인의 외로움과 불안도 구원을 얻지 않을까.


ㅡ<크리스채너티 투데이> 2013년 5월호에도 실은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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