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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중독인가 신앙 성장인가 -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으로 세워주는 책
강하룡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18년 6월
평점 :
평소 신앙에 관해서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기 어려웠는데 이 책을 통해 도움을 받습니다. 스스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지, 혹 내가 중독에 빠져있는 모양으로 남의 눈에 그리 비치는 건 아닐까 싶은 우려에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정체성은 책제목에서 드러났듯이, 책 내용에 있어서 동일하게 올바른 신앙 생활과 잘못된 신앙을 점검할 수 있는 가이드 라인을 조언하고 있습니다. 크게 4개의 챕터로 구분되어 있는데, 파트1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오해를 설명하고 파트2는 신념과 믿음의 차이 등을 설명하듯이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착각할 수 있는 신앙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파트3는 세상과의 관계에서 착각할 수 있는 기준, 세상의 짐과 십자가의 짐의 비유를 들어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파트4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오해에 대해 다룹니다.
책 읽으면서 무릎을 탁 치며 감탄했던 명문장 별로 느낌점과 생각, 인용을 적어보았습니다.
자기 정죄는 사탄의 역사이다 (18쪽)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저 스스로 정죄하기 바빴습니다.
"그래, 내가 뭐라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어."
"내가 뭔데 감히 교회에 나갈 주제야?"
"교회 나간다고 매일 죄를 씻기위해 노력하는게 아닌데, 어차피 또 죄를 지을 건데 하나님을 볼 면목이 어딨어."
이런 생각들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배신했을 때, 자신이 교만했음을 시인하고 회개하자,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듯이, 죄를 지었다면 하나님 앞에 무릎끓고 진심으로 몸과 마음을 다해 죄를 시인하고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도록 죄와 싸워 변화하기를 결단해야 한다고 합니다.
나는 신앙 생활 초기에는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담을 쌓는 벽을 무너뜨릴 수 없으며 하나님과의 담을 없애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을 수도, 은혜를 받을수도, 축복을 받을수 없다는 말을 누차 들어 왔습니다. 기도해도 결코 기도의 향이 하나님에게 닿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무릎 끓고 죄를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절차를 회개라고 알았는데, 이런 말로 하는 회개는 하나님과의 관계 개선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잘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조언하듯이 회개를 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때는 첫째,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배상해야 하는 게 있는지 점검하고 둘째, 자신의 회개가 진심어린 것인지 하나님의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기에 더해, 스스로 죄를 통감하고 통회자복하며 소리쳐 간구했을 때 좀더 확실한 은혜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런 은혜는 내가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허락해야만 주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회개의 당위성을 알고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며 회개하더라도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뭔가 진정성이 없고 절실함이 결여된 기도라 생각이 들 때, 아무리 목이 쉬어라 부르짖으며 기도를 해도 아버지로부터 용서를 받았거나 구원을 받은 듯한 느낌이 없을 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도, 담담하게 기도를 드렸을 때, 즉시 회개의 영을 허락하셔서 통회자복이 나와 중심에 잡힌 기도를 드리며 아버지 하나님과 마치 대화를 나누듯 시간 가는줄 모르게 열심히 기도를 올려 드렸던 일도 기억이 납니다.
탐심 기도는 하나님을 수단 삼는다 (39쪽)
기도를 통해 신앙이 성장하지만, 잘못된 방식으로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꼬이게 한다고 경고합니다.
탐심 기도는 간구 기도가 타락한 형태라고 합니다.
사실 이것이 헷갈릴 때가 있는데.. 성경에서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의 필요를 아뢰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전지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이 세상, 육적인 현실에 취해 먹고 살 걱정, 돈 걱정, 그리고 각종 불안, 두려움에 떨면서 살지 않는지...
탐심 기도는 걱정 기도를 낳고, 고집 기도를 낳는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의와 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닌 그저 자신의 근심 걱정을 덜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기도를 하는 것은 잘못된 기도이며 우는 사자와 같이 이런 이들을 찾는 사단의 밥이 될 것이라 책에서는 정중히 조언합니다.
그렇다면 돈 벌게 해주세요, 지금보다 잘살게 해주세요, 재산을 불리게 도와주세요, 각종 질병과 병으로부터 낫게 해주세요 등의 이런 세속적인 기도가 잘못된 걸까? 기도는 내가 원하는 때와 방법으로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요 자신만을 위한 요청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한 요청으로 즉, 다른 사람들을 위한 간구 기도를 드릴 때 적절한 때에 필요한 것을 채우실 것이라 믿습니다.
몸이 아파서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십일조와 각종 헌금도 열심히 하는데, 왜 몸이 아픈가요? 하나님 제 몸 낫게 해주세요 라는 것도 탐심 기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조건을 걸고 기도하는 것이죠. 직장을 잃든, 몸이 아프든 여러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들의 믿음을 시험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저는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반복하여 죄를 짓더라도 씨를 뿌리며 나아가는 모습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모습이라 믿습니다. 십일조를 많이 낼 수 있게 물질의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를 드렸다면 어려운 환경 속에서 먼저 물질로 심는 행위를 먼저 보여드리는 것이 중요하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런 나의 믿음을 시험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무릎의 관절이 너무 아파 스스로 일어서지도 앉지도 못하는 어려운 상황일수록 하나님 앞에 담대히 무릎 끓으며 기도드리고 자신의 육체를 위해서가 아닌, 아버지 하나님 나라의 의를 위해 쓰일 육체로 만들어주시길 간구하는 기도를 아버지께서는 좋아하시리라 믿습니다.
종교 중독은 자기 사랑과 자기 만족을 추구한다 (68쪽)
중독적인 신앙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 자신을 남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중독적인 신앙인의 특징 첫번째로 우울증, 열등감, 자기비하와 같은 감정 또한 자기 사랑의 표현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예배를 드릴 때 감동이 있어야 올바른 예배를 드린 것처럼 느낀다는 것입니다. 은혜와 감동이 없으면 시간 낭비한 것처럼 느낀다는 것인데... 설교에 감동이 없다면 영감 없는 목회자로 속단하고 찬양을 드릴 때 하나님께 찬양 올려드리는 것이 아닌 음악에 매료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감정의 고양에 있다면 그것은 중독적인 신앙인의 모습이라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랜세월 동안 살아온 자신의 의와 틀은 자기 성격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그 중 자기사랑은 스스로도 잘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큰 죄임을 나는 조금씩 인지하게 됐습니다. 마음의 할례를 수양하는 중에 우연히 타인보다 부지불시간에 나를 먼저 챙기는 습성을 느꼈는데 깨뜨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를 비우고 없애야 비로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내가 넘어야 할 산이고 부서뜨려야 할 죄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신념인가 믿음인가 (80쪽)
개신교 이단 종파에 빠진 부부가 믿음으로 치료한다고 자식을 방치해서 숨지게 했다는 기사가 소개되는데 나 또한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이렇게 종교에 빠진 사람들이 참 어리석고 무서운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푹 빠지고 보니, 나 자신도 병원 치료를 거부하고 믿음으로 기도해서 질병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소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질병 치료 경험이 있다보니 이런 기사의 일면은 신념과 믿음의 차이를 잘 설명해준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신념은 자신의 생각, 경험, 살아온 의와 틀 속에서 만들어진 판단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으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치료해주실거야 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판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질병치료의 간구는 오직 아버지 하나님 나라의 의를 위해서 간구할 때 기적과도 같은 치료의 역사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도 어쩌면 내 자신의 신념일지도 모르죠. 그러나 세상은 '우연히' 라는 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죄를 지으면 죗값을 받듯이, 선을 행하면 그 복을 받으며 질병으로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이 기적적으로 소생한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쓰일 그릇으로 선정된 것이죠.
즉, 신념은 오로지 사람의 생각으로 그 목적이 자신이 잘 되는 것이고 하나님에게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사람이니 당연히 자신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한다는 자기 판단 정죄에 빠지는 것이 신념인 것이죠.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도 이런 신념과 믿음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나의 교만함을 알아채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므로 이런 교만에 빠진 사람에겐 결코 은혜를 주지 않을 것임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 내게 이런 교만함이 있는지 매시간 살피는게 버릇처럼 되어갑니다. 부서뜨려야 할 여러 죄악 중 교만함은 정말 제 몸에서, 제 기억과 기질에서 모두 떼어버리고 싶습니다.
비전 없이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라 (118쪽)
교회를 다니다보면, 어떤 분은 영안이 열리기도 하고 어떤 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분이 있고 천국과 지옥을 꿈 속에서 갔다왔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나도 영안을 사모하고, 좀더 신령한 능력을 지닌 성령님을 사모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사모하지만 아직 그럴 만큼 신앙이 성장한 것은 아니라고 자각합니다만. 유튜브에 유명 목사님의 간증을 들어보면 하나님을 만나, 그 분의 음성으로 비전을 꿈꾸게 되었다는 말을 접하게 되는데, 왜 내게는 그런 신령한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인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것인지, 언제쯤 나도 그런 비전을 꿈꿀 수 있을지...
성경에 나오는 역사적 큰 인물인 요셉, 다니엘은 비전을 몰랐다가 평생 의도하지 않은 삶을 사는가 하면, 아브라함, 모세는 처음부터 비전을 모르고 시작하였음에 책에서는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하였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길 갈구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런 선지자들의 모습을 통해 느끼는 것은 나또한 비전을 받지 못하였어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성결되길 변화되어 힘쓰며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하나님이 비전을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비전 없이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몸과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되길 변화하며 힘쓰며 나아가는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신앙 생활은 앞만 보며 쉽게 달려가다가도 넘어져 실족하거나 연단으로 고생하며 정체되어 질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신앙은 자신과 하나님과의 일대일 관계이므로 내가 어떤 신앙을 어떤 마음으로 믿는지 다른 사람이 관여할 수 없는 개인적인 문제일 때가 많겠죠.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이런 신앙의 여로에 대해서 우리들은 사이비가 되지 말자고 격려합니다.
자기 정죄는 회개의 얼굴을 한 사이비, 탐심 기도는 간구 기도를 흉내낸 사이비, 신념은 믿음을 빙자한 사이비, 비난은 분별을 가장한 사이비, 고생은 연단의 사이비, 긍정의 힘은 믿음의 힘의 사이비, 세상 짐은 십자가의 사이비가 그것입니다.
생각하기에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신앙의 중독과 성장을 분별하는 핵심 한줄의 말씀일 것입니다.
짧은 나의 신앙의 과정 속에서 이런 사이비의 모습들은 분명 있었고 지금도 있을 것입니다. 지식적인 믿음으로 그치는 때도 있고 행함으로 나오지 못해 쉽게 열매를 맺지 못하는 분야도 있습니다. 내 마음밭의 돌멩이을 뽑아 기름진 옥토밭으로 바꾸어가길 간구하며 기도하며 말씀 들으며 변화하기 위해 거듭 나아가는 삶이 지금의 제가 가진 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신앙의 모습들을 하나씩 점검하고, 좀더 앞으로 나아가길 원한다면 이 책 읽기를 권해봅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람으로 변해가는지 조목조목 살펴보는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사여구를 달지 않고 핵심적인 문장으로 성경 말씀 그대로 알기 쉽고 간결하게 말씀해주셔서 책을 쉽게 읽으면서도 내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