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레이디
커티스 시튼펠드 지음, 이진 옮김 / 김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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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미국에서 대통령의 아내, 영부인을 소재로한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이 난다. 그 소설이 화제가 된 이유는 책 속의 주인공이 대통령과 영부인에 관한 내용이 수록된 책이라는 점, 노골적인 성묘사, 미성년 시절에 불법 낙태 시술에 관한 내용이 들어가서였는데, 아무리 문학적 상상력이 가미된 픽션일지라도 당시 집권 상류층을 캐릭터 모델로 쓰는 담대함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작가 커티스 시튼펠드는 사춘기 최상류층 아이들의 성장 이야기를 다룬 <사립학교 아이들>을 써서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에 선정, 큰 반향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올랐다고 한다. 상류층 10대 아이들의 은밀한 청춘 고백, 인종과 계급 갈등, 성에 있어서 일반인들이 알지 못한 은밀한 구석을 시원하게 긁어준 모양이다. 그런 관점에서 언론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댄 <퍼스트 레이디>는 평범한 가십거리 기사로 몰기에는 아까운 책이다.


4개의 목차로 구성됐는데 1부는 앨리스의 인생 전반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을 하게 되며 책읽는 독자로 하여금 거센 흡입력으로 자연스런 몰입을 유도한다. 청순한 소녀 앨리스는 우연한 자동차 사고로 은밀히 짝사랑하던 남자친구를 잃으면서 자신을 성적 구렁텅이에 빠트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앨리스, 낙태를 경험하게 된다.
2부는 앨리스가 결혼하기까지 전후 모습을 담았다. 소설 전반부 중 가장 재밌는 곳이다.
생생한 혼전 성 묘사도 그러하지만 다양한 군상들의 첨예한 갈등 관계가 책 읽는 재미를 더한다.
3부는 앨리스와 찰리의 가족 이야기가 등장한다. 평범한 사업가로 돈많은 동네 아저씨 인상을 주는 찰리, 나이 마흔을 넘어 정계에 발을 디디려는 모습이 나오고 앨리스의 할머니가 죽음을 맞는다. 4부는 백악관 전경이다.

시간적인 순서로 공간을 달리하는 목차의 흐름이 각각마다 새로운 갈등의 전면으로 등장한다.
1부 '에이미티가 1227번지' 는 앨리스의 성장 이야기, 2부 '스프롤 가 3859번지'는 이 책에 등장하는 조연과 주연의 맺고 끊는 플롯이 눈부시다. 3부 '마로니 가 402번지'는 4부를 위한 전주곡, 4부 '펜실베이니아 가 1600번지'에서는 앨리스의 회한과 고백으로 이어진다.

그녀의 독백을 들어보자.

   
  이따금 나는, 내가 숲 속의 작은 오두막집에서 어두운 숲을 바라보고 있는 고독한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이 조그만 오두막집에 살았다. 나는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지금의 내 남편과 내 딸이 외면하는 것처럼 그들을 외면하며 살 수 없었다. 나는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다...
불운한 사람들은 내 양심을 자주 두드린다. 그들은 숲 속에서 나와서 수시로 내 오두막의 문을 두드렸지만 내가 문을 열어준 것은 고작 몇 번뿐이다.
...................
나는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삶을 살았다. 어쩌면 내 결함을 들춰내지 않는, 심지어는 내 결함을 알지도 못하는 남자와 결혼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내가 돋보일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한 것은 아닐까? 내가 조금밖에 못 하더라도 그가 나보다 더 적게 할 테니까. 나는 우연히, 그리고 간접적으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지만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무한한 확신으로 상처를 주는 사람이다. <660쪽>
 
   

 

 웨딩 드레스 무릎 위에 다소곳이 손을 모은 사진 원작 , 현존 영부인을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으로 설정했지만 책 속에서 발견한 모습은 여느 평범한 여인네 모습과 다름없었다. 소녀에서 중년에 이르기까지 한 여자의 일생을 관조하고 그녀의 마음을 심리적으로 리드미컬하게 조율한 작가의 따뜻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는데 반면 우측의 표지는 고혹적인 시선, 가느다란 어깨의 굴곡에서 느껴지는 매력적인 여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퍼스트레이디라는 표제가 영부인을 겨냥한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책 속 내용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전쟁광 부시 행정부가 임기때 저지른 추악한 만행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으며 전쟁 이념을 합리화시키는데 급급했고 세계 환경을 파괴시켰다.
책 속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영부인 로라 부시를 상징하는 찰리와 앨리스라는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캐릭터가 존재한다.
작가는 앨리스의 입을 통해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의 삶을 살아왔다" 였을지도 모르겠다.
준비한 대로 이루어지는 계획된 삶이 존재할까? 원치 않는 선택의 순간들, 우리는 매번 그 선택를 강요당하고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런 선택의 숙명 앞에 놓인 우리의 삶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책을 읽는다면 그런 느낀 점을 서로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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