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
전재호 지음 / 책세상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모든 개인은 역사적 개인이다. 그 어느 누구도 역사라는 그물을 빠져나갈 수 없다. 역사를 이해하지 않고는 오늘 우리의 어떠함을, 오늘의 나의 행동 양식을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역사라는 추상적 실체에 기대지 않고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오늘날 사회의 구조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사회 정치적 행위들의 본질을 간파할 길은 없다. 그러므로 역사를 이해하고 그 배움을 내면화하는 과정은 사회 속에서의 나를 찾고 완성해 가는 하나의 형이상학적 여로인 것이다.


그러함으로 우리는 박정희라는 한 개인을 이해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박정희라는 한 인간의 삶은 단순한 자연인의 삶으로 그친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의지와 그의 행동들은 오늘날 우리들의 어떠함을 낳은 거대한 산파였다. 세계에서 12번째의 경제 규모, 상위 중진국 수준의 일인당 국민소득, 한강의 기적으로 표현되는 물질적 발전은 많은 부분 박정희 정권의 업적에 기초한 것이고, 그 정권의 업적은 박정희라는 일개인의 의지와 비젼을 통해 추진되고 달성된 부분이  큰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박정희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50~60 대 이상의 근대화 주역들은 그의 수 많은 반인륜적 범죄에도 불구하고 그의 업적을 과장해서 찬양하고 있으며, 운동권 출신과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은 그를 쿠데타를 일으킨 범죄자, 전 국토의 병영화를 꾀하여 군사 문화를 사회 전반에 뿌리 박은 군국주의자, 반공의 기치로 한반도의 남쪽을 정치적 절름발이로 만든 파시스트로 메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어느 여론 조사에서는 박정희를 두고 가장 존경하는 사람들 중에 한 명으로 꼽고있는데, 확실한 것은 박정희에 대한 시각은 그 어떤 사회적 이슈보다도 더 극단적으로 분열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조갑제와 같은 극우 보수주의자들과 50~60이상의 어르신들, 그리고 경상도 출신의 저학력층은 대체로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그가 행한 과오를 근대화를 위한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와는 달리 전라도 출신의 사람들, 그리고 고학력층은 대체로 박정희를 자신의 정권욕을 위하여 어떠한 일도 서슴없이 자행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주장들을 조금이라도 더 객관적으로 파헤치고 그에 대한 조금이라도 더 공정한 시각을 가지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자료를 통한 입체적인 이해가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 책에서는 그런 객관적인 자료와 공정한 접근을 통하여 박정희와 3공화국의 실체를 만날 수 있다. 물론 이 책은 매우 얇으며, 따라서 광범위한 자료 조사를 거쳤다고 하기에는 빈약한 감이 없지않다. 따라서 박정희의 개인사와 3공화국의 모든 실체가 모두 서술되어 드러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저자는 민족주의의 정의를 탐구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박정희가 민족주의자인지 아닌지를 파헤치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접근을 통하여 박정희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고 있다.


박정희와 박정희 정권의 역사를 더듬을 때 가장 중요한 사건들 중에 하나가 5.16이라는 점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운동권, 민주화 인사들로부터 민족의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고 평가받는 5.16 군사 쿠데타도 단순히 초헌법적인 범죄로만 해석하기에는 석연치 않는 점이 너무나 많다. 당시 장준하를 비롯한 많은 지식인들이 5.16을 눈감아 주었으며, 심지어는 당시의 사회 혼란을 종식시켜줄 수 있는 민족주의 세력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또한 5.16 당시 미국과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는 증언이 엇갈리는 관계로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어찌됐든 저자는 책에서 5.16을 구체적으로 파헤치고 있지는 않다. 이 책의 내용은 박정희 정권이 사회 정치적으로 행한 일들, 예를 들어 새마을 운동이라던지 민족 문화 복원 사업 등의 내용과 그 의미 그리고 영향을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박정희의 가장 뛰어난 업적으로 평가받는 경제 발전의 내용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남한의 경제 발전이 박정희 정권의 업적이 아니라, 반공 전선 구축을 위한 미국의 경제 원조와 조언이 컸다는 등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결국 저자고가 말하고 있는 것은, 박정희 정권이 진정으로 목표했던 것은 자유와 민주화라는 정신적 가치를 바탕으로 한 근대화가 아니라, 물질적 경제적 근대화를 추진했던 반동적 근대화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를 반동적 근대주의자라고 그는 평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박정희를 어떻게 평가하든, 또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그를 어떻게 평가하든 나는 박정희를 존경하지는 않는다. 또한 박정희 정권의 행태가 경제 발전이라는 모토로 모두 정당화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박정희라는 일개인이 가졌던 근대화에 대한 의지가 한국이라는 나라의 물적 토대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 물적 토대가 오늘날 한국이 이만큼의 위치를 가지는 데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것에 대해서 의심하지는 않는다. 설령 그가 근대화의 과정에서 민주화를 짓밟고 노동자와 민중을 억압했다고 하더라도, 부분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흔히 사람들은 그가 자유와 빵을 바꾸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더 나아가 그 빵이 나중에는 더 큰 자유를 양산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개인사가 기회주의적 행태로 점철되고 자신의 야욕을 위해 온갖 범죄를 저질렀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의 경제적 업적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회가 혼란스럽고 아직도 역사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지금, 이 책을 통하여 잠시나마 독자들이 나와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들을 본격적으로 건설하기 시작했던 박정희 정권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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