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로 참가한 모임인 '고전 강독회'는 나에게 새로운 배움을 줄 수 있을것 같다. 우선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생명과 박사과정 형이 참 마음에 든다. 그 생명과 박사과정 형은 나와 비슷한 독서 취향을 가지고 있다. 과학과 철학 쪽의 독서를 즐기며, 현학자들의 애매한 논의들을 증오하는 편이다. 도대체가 과학(자연 과학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이라고 할 수 없는, 혹은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또는 공통의 합의에 도달할 수 없는 희안한 궤변들을 무척이나 혐오하는 편이다.

그가 지지난주 모임에서 말한 것 중에 하나가 참 재미있다. 예전에는 유럽에 골상학이라는 학문이 있었단다. 요즘으로 치면 관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학문이라고도 할 수 없는 골상학이 18세기 유럽에서는 엄연한 학문이었다. 학회도 물론 있었으며, 진지한 저널(journal)도 발행을 했다. 그렇지만 누가 요즈음에 골상학을 과학이라고 하는가? 관상이 과학인가?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관상을 믿는가?

알아야 할 것은 많지만 믿어야 할 것은 많지 않다. 저 수 많은 기독교 종파들을 보라. 서로 자기네들의 종파들이 최고라고 선전을 하고 있지 않은가? 자기네들의 교리가 최고봉의 진리를 담보하고 있다고 떠벌리고 있다. 진리의 가부(可不)를 결정하는 것은 누구인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냥 믿으란다. 최고의 진리를 알고 있다는 그 사람들은 왜 싸우고 있는가? 사람들은 무언가 믿고 있다. 누구는 예수가 물 위를 걸은 것을 믿고 있고, 누군가는 성서에 오류가 없다는 것을 믿고 있고, 누군가는 1990년대 초에 예수가 재림할 것이라는 것을 믿었고, 또 누군가는 자살함으로써 더 빨리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집단 자살을 하였다. 믿기 때문에 수많은 종교와 종파들이 싸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앎은, 내면화된 앎은 믿음을 넘어선다.

#2. 요즘 여기저기 떠도는 혈액형 관련 논의들을 보고 나는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혈액형이랑 성격이랑 무슨 상관이 있을까? 당신은 혈액형이 무엇인지나 알고나 있는가? ABO식 혈액형을 구분짓는 근거는 무엇인가? 생물학적 조건들 중에 성격을 형성하는 것들에는 어떤것이 있는가? 혈소판의 성분 차이가 어떻게 성격을 결정짓는다는 말인가?

혈액형과 성격이 관련된 일련의 논의들은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전쟁 와중에 혈액이 모자랐던 일본은 혈액을 공급받기 위해서 헌혈을 담보로 혈액형과 일련의 정보를 수혈자에게 제공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혈액형과 성격을 탐구하는 시초였다. 또다른 사이비 과학인 '산성 체질' 논란도 엉뚱하기는 마찬가지다. 사람의 몸에는 항상성이라는 원리가 있어서 생물학적 조건이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려는 특성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체온인데, 사람 몸의 pH또한 그러하다.  몸의 pH가 바뀌면 효소의 활동 속도 같은 것들이 변화하기 때문에 왠만해서는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는 편이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뻥'을 쳐서 구연산이니 뭐니 하는 엉텅리 건강 제품을 팔아먹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얼마 전에 베스트셀러가 된 <물은 답을 알고있다>를 보고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대체 우리가 물리적으로 말하는 거랑(물론 말이 심리적 효과는 일으킨다) 물의 물리적, 화학적 상태랑 어떻게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관련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 메커니즘을 밝혀서 빨리 노벨상을 받기 바란다. 다른 사람으로 부터 나는 그 책에 사람이 하는 말과 물의 물리적 구성에 관련성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고, 역시나 저자라는 사람은 희안한데서 소위 대안 의학 박사학위를 받은, 학문적 성취가 의심되는 사람이었다.

나라고 별다를 건 없다. 나도 혈액형과 성격에 모종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한때 과학으로 믿었으니까. 사람이 산성체질이 된다는 것도 사실로 믿었다. 수련을 하면 초능력도 생기는 줄로 알았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것들을 믿지 않는다. 아니, 믿지 않는 것이 아니고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다시 말하겠다: '알아야 할 것은 많지만 믿어야 할 것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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