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학교 최초(?)의 독서 동아리(?)라고 할 수 있는 고전강독회 모임에 가서 명남루수록을 대충 읽었다. 아니 훑었다고 하는 말이 옳겠다. 고전강독회의 첫 모임은 지난주 금요일에 있었는데, 그 때는 아마도 대충 10명의 사람들이 왔었던것 같은데, 오늘은 고작 4명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에 완성된 박태준 기념 디지털 도서관
(사진 오른쪽 가운데의 둥그런 건물)의 스터디룸에서 모임을 가졌다.
새로 완성된 도서관은 여러 측면에서 정말 최고 수준의 시설을 자랑하고 있다. 우선 도서관에 스터디룸이라는 곳이 생겨서 여러 사람이 같이 공부하고 토론할 수 있는 장소가 생겼다는 점이다. 가끔 이곳에서 과외를 하기도 하는데, 나도 이종사촌 동생을 스터디룸에서 과외를 한 적이 있다. 또한 바닥에 카펫을 깔아서 걸음걸이에 따른 소음이 적으며 각 층마다 컴퓨터를 여러대 두어서 검색을 하기에 편리하게 해 놓았다. 또한 바깥의 햇볕이 공부에 방해가 될 것 같으면 저절로 screen이 내려와서 빛을 조절하게 된다. 도서관 전체의 디자인도 매우 모던한 느낌을 주는 편이며, digital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과학기술의 최전선을 느껴볼 수 있다. 일전에 교회 사람들에게 내부를 구경시켜 준 적이 있는데, 매우 부러워하면서 여기서 공부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이 곳 열람실 안에 컴퓨터와 TV, VCR등 많은 전자 기구들이 잘 장착되어 있으며, 노트북 컴퓨터도 가져와서 연결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이러한 도서관 3층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모임을 이끄는 선배(생명과 박사과정)가 하는 말이 모임의 규모는 딱 5명 정도가 적당하며 정말 의욕있는 사람들만 나오도록 일부러 어려운 최한기의 명남루수록을 골랐다고 하였다. 나도 명남루수록을 읽는데 꽤나 애를 먹다가 포기해 버려서 모임에 가입하는 것을 포기할까 생각하기도 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독서의 범주와는 꽤난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19세기 조선 학자의 글 답게 한자가 대단히 많아서 이해하기 까다로웠다.
하지만 혜강 최한기라는 사람의 사상은 그렇게 폄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올 김용옥 사상의 근간이 되는 사람 둘을 꼽으라면 노자와 혜강 최한기가 되겠다. 최한기의 사상은 기학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그 당시 조선 학자로서는 놀랍도록 과학적이 사고를 하고 있었다. 최한기의 사고는 성리학에 근간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물리학에 있었던 것이다. 그것 때문에 도올은 그를 사승(師承)이 없는 학자라고 말하는데, 십분 공감할 수 있는 견해다. 성리학적 전통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19세기 중반의 조선에 뉴턴의 프린키피아(뉴턴의 운동 법칙과 만유 인력의 법칙을 기술한 역대 최고의 과학 논문)와 케플러, 티코브라헤 같은 천문학자들의 저술들을 그 당시에 읽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또한 그는 성경과 코란도 읽었으며, 서양에서 본받을 것은 과학이라 하여 매우 주체적인 모습도 드러내곤 하였다. 나는 도대체 그 당시의 조선땅에 그토록 과학적인 사고 방식을 전개할 수 있었다는 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최한기의 공부는 스승을 통해 기존의 공부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공부는 독학이었으며, 청나라에서 들여오는 책은 그의 스승이었다. 그는 집 한채를 통채로 책으로 채웠으며, 새로운 책들이 한양에 오면 아무리 팔리지 않아도 최한기만은 그 책을 사주었다고 한다. 그는 매우 부유한 편이었으나 책을 사는데에 가산을 탕진하여 나중에는 그닥 부유한 생활을 영위하지는 못한듯 하다.
관심이 있는 사람은 MBC 도올 강의 <우리는 누구인가>를 보면 된다. 그도 아니면 김용옥의 <독기학설>등 많은 서적이 이미 출간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