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
오세영
도서관은 골 깊은 산이다.
등산하듯 층계를 올라
어두운 서고(書庫)를 뒤진다.
이 골짜기는 역사 서가(書架), 저 산봉우리는 철학 서가,
저 능선은 과학 서가
고서(古書)는 이끼낀 바위로 앉아 있고
사서(史書)는 칡넝굴로 얽혀 있다.
이곳 저곳 걸으며
화두(話頭) 하나 참구한다.
나는 누구일까
청노루, 백사슴 다 아는 산 길에서
길을 잃고 망연히 헤매는데
앞에는 문득
깎아 진른 듯 가로 막고 서 있는 절벽.
그 까마득한 벼랑에 핀
꽃
한 그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