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2002년 대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레 정치에 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해 지방선거에서는 투표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울산에 가기가 귀찮다는 이유로, 후보들을 잘 모른다는 이유 등으로 인해  투표를 포기 했었는데, 대선 레이스는 민주당 경선을 거치면서 그 열기가 뜨거웠던 만큼, 나같이 정치에 관심이 없던 대학생을 투표장으로 가게끔 했다. 결국 한나라당이라는 거대한 수구세력을 몰아내는데 동감하여, 기꺼이 울산에서 2번을 찍었다. 내가 한 최초의 정치적 행위였다.

사실 역사적으로 한국의 대학생들은 유난히 정치적이었다.  민주화 운동의 상당수 주체가 학생임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그 결과 또한 4.19 혁명과 5.18 광주 사태, 87년 6월 항쟁과 같은 굵직굵진한 사건들을 낳아왔음도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한국의 대학생들이 탈 정치화의 길을 걷는 것은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과 그 길을 같이 한다. 그 시점은 1990년대 초반부터 이며, 서태지의 등장과 함께 한국 모든 학생들은 '큰 이야기'가 아닌 '작은 이야기'를 주로 하기 시작했다. 탈 이념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어, 지금의 대학생들은 너무나 비정치적으로 되었다.

하지만 나는 많이 다르다. 나는 나의 또래들에 비해 정치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편이다. 하루에 1~2시간은 꼭 신문과 칼럼을 읽으며, 그 상당 부분은 정치면에 할애된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 수 많은 정치인들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였으며, 몇몇 정당의 역사를 배웠으며, 몇몇 책들을 통해 해방 이후 한국 정치사의 큰 줄기를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어려운 정치 서적들을 사서 꾸역꾸역 읽으면서 한국근현대사에 대하여 조금씩 알아갔으며, 나에게는 시들고 있다고 판단되었던 사회적 분노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끼고는 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축적된 나의 정치적 지향점을 설명하자면 우선 한국이 처한 상황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한국이 현재 처한 정치적 상황이란 다시 과거 한국 정치를 돌아보지 않고는 그 정확한 흐름을 이해하기 힘들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정치의 큰 대립 구도의 변화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나의 열린우리당 지지의 이유는 바로 여기서부터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며, 열린우리당은 새로운 정치 구도의 창출에 가장 앞 서 있는 정당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선 해방 직후에는 한국 정치의 큰 구도는 좌파 대 우파 였다고 할 수 있다. 본격적인 자본주의 사회를 경험하지 않고도 좌파가 등장할 수 있음은 러시아 혁명에서 잘 알 수 있지만, 한국도 이러한 환경에 있었다는 사실은 굉장히 놀라웠다. 사실 해방직후의 한국의 정치 지형은 극좌가 형세를 장악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던 것이 4.3 사태와 여순사건을 통해 좌파가 축출되고, 극우 독재 정권이 연이어 들어섬에 따라 한국의 정치 지형은 극우로 급선회 하는 것이다.

이승만 정권이 사회 각 부분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함에 따라 한국 사회는 더욱 우경화 되었는데, 이 우경화의 주체가 바로 친일파들이다. 친일을 했던 인사들은 그 특유의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친미적 성향을 띠게 되고, 이 사람들이 정부와 국회의 요직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친미 독재 세력들에 대항하는 저항 세력도 나타나는데, 그들이 바로 신익희, 조병옥, 장면과 같은 사람들이다. 이 때부터 정치의 큰 구도는 좌 대 우에서 민주 대 반민주, 독재 대 반독재로 된다. 그 당시에 좌파는 어짜피 거세된 것이나 진배 없었으며, 독재에 대한 저항으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대안 세력으로 떠오른다. 이는 4.19를 통해 그 결실을 보게 되지만, 5.16 군사 쿠데타가 연이어 일어나면서 좌절을 맛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큰 구도, 즉 민주 대 반민주 극우 세력이라는 대립은 87년까지 계속 이어지게 된다.

87년 6월의 일은 의미심장하다. 4.19 이후로 최초로 민중, 학생 세력이 승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 직선제라는 수확을 얻었으며, 김대중이라는 거인을 다시금 제도권으로 복권시켰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 양 김씨가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더니 민주화 세력이 대선에서 패배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다. 민주화 세력의 분열이 역사의 반동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또한 이시기에 주목해야 하는 현상은 지역주의가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경북은 노태우의 민정당, 경남은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호남은 김대중의 평화민주당, 충청도는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으로 전국은 갈기갈기 찢어지게 된다. 한국 정치의 큰 대립구도가 지역주의로 재편되는 순간이다.

지역주의라는 대립구도 하에서는 삼김과 같은 거물들의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가 주류를 이루게 되는데, 이러한 대립각은 커다란 문제점을 낳는다. 즉 지역에서의 독과점 구조인 것이다. 이러한 정치 독과점은 필히 불공정 경쟁과 '정치 상품'의 부실함을 낳게 되고, 이에 따른 이념적 정체성의 모호함은 정책 경쟁 보다는 정략적 이전투구만을 낳았다. 3김에게 줄을 서고 악수 한 번 하려는 모리배들이 넘쳐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태로, 이러한 구도로 2002년까지 쭉 오게 되는 것이다.

노무현의 당선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혁명이다. 비주류 중의 비주류 정치인 이었으며, 한국 정치의 이단아였다.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강력한 힘을 발휘한 최초의 선거였으며, 노사모로 대표되는 자발적 정치 팬클럽의 전성기를 열었다.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지역구도 타파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전라도에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는 정당의 경상도 출신 대통령 후보라는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 사람이 바로 노무현이었던 것이다. 덧붙이자면 카리스마있는 정치인의 상명하달식 정치의 부분적인 종식도 중요한 의미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의 당선으로 촉발된 지역구도 허물기는 열린우리당의 창당으로 그 정점에 이른다. 새천년민주당 소속의 정치인들은 열린우리당을 '분열세력', '노무현당'이라 매도 했지만,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민주당이 그런 말을 하면 설득력이 없다. 과거 통합민주당을 깨고 창당한 'DJ당' 국민회의를 이어받은 정당이 새천년민주당이 아닌가. 원조 분열 세력이요, 원조 개인 정당인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새천년민주당의 수구성과 지역주의에 실망하여 뛰쳐나온 의원들과 몇몇 한나라당, 개혁당 의워들이 만든 신생 정당인 것이다.

여기서 민주당의 반민주성에 대해서도 알 필요가 있다.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노무현 후보가 경선에서 이긴 얼마 후에 지지율이 떨어지자 자기들이 뽑은 후보를 마구 흔들어 대고, 후보 사퇴를 촉구하고 있었다. 국민경선이라는 민주적인 방식을 통해서 선출하고도 거기에 승복을 못하고 후단협과 탈당으로 추태를 연출하고 있었다. 결국 민주당은 그 때 도덕적으로 사망한 것이다. 새로운 정당의 필요성이 대두된 셈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열린우리당은 어떤 긍정적 가치 또는 이념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태어난 정당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현존하고 있는 명백한 정치적 악을 제거하기 위하여 탄생하였다고 보는 편이 진실에 가깝다고 본다. 그 정치적 악이란 첫째가 지역주의이며, 둘째가 상명하달식의 비민주적인 정당구조이다. 열린우리당은 이 둘 모두를 어느 정도 해소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또한 열린우리당에는, 동교동계가 당권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에서는 정치적 뒷바침을 받기 어려운 노무현 대통령을 적극 지지하기 위한 목적도 상당 부분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가야할 큰 구도는 진보 대 보수가 아닌가 한다. 이는 지역주를 깨뜨려야만 가능한 것이며, 이러한 지역주의를 깨는 것은 삼김식의 인물정치, 비민주적 정당구조와 이념과 철학의 빈곤을 동시에 척결하는 것이다. 여기에 내가 열린 우리당을 지지하는 소이연이 있는 것이다. 혹자는 나에게 왜 민주 노동당을 지지하지 않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지역구도를 깨는 확실한 방법 중에 하나가 진보정당이 원내에 진출함으로써 정계를 인위적으로 진보 대 보수로 몰아가는 것일텐데 말이다. 하지만 나는 경제적으로는 시장주의자이며, 정치적 가치 지향점은 자유주의적 온건 보수에 가깝다고 판단한다. 이는 열린우리당의 노선과도 거의 일치하는 것이다.

우리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식이 되었든 사회적 참여는 적극 장려되어야 한다. 그 통로로 나는 정치라는 것을 선택하였으며, 그 실천으로서 몇 달 전에 나는 열린우리당에 가입하여 당원이 되었으며, 현재 당비도 내고 있는 형편이다. 정치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하지 말자. 우리의 결집된 정치적 의사 결정이 우리의 사회적 환경을 달리 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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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2004-05-26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리를 잘 해주셨네요. 한국 정치사의 큰 줄기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개척자 2004-05-27 0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_^; 앞으로는 다른데도 잘 꾸며놓을테니 자주 들러주시고 추천도 해주십시오 ㅎㅎ;; 저도 님의 서재에 종종 들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