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오후

               오세영


긴 겨울 방학도
속절 없이 끝나는구나
내일 모래가 개학날인데
해 놓은 숙제는 아무 것도 없다.
입춘(立春)되어
학교에 모인 나무들은
화사한 꽃잎, 싱싱한 잎새,
달콤한 꿀,
제각기 해 온 과제물들을 펼쳐좋고 자랑이지만
등교를 하루 앞둔 나는 비로소
책상 앞에 앉아 본다.
사랑의 일기장은 통 비었다.
베풂의 학습장은 낙서투성이
개학해서 선생님을 뵙게 되면
무어라고 할까.
방학도 다 끝나가는 날,
이것 저것 궁색한 변명을 찾아보는 노경(老境)
어느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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