門
           
                        서정주


밤에 홀로 눈뜨는 건 무서운 일이다.
밤에 홀로 눈뜨는 건 괴로운 일이다.
밤에 홀로 눈뜨는 건 위태한 일이다.

아름다운 일이다. 아름다운 일이다. 왕망(王茫)한 폐허에 꽃이 되거라!
시체 위에 불써 일어나야 할, 머리털이 흔들흔들 흔들리우는,
오- 이 시간, 아까운 시간

피와 빛으로 해일(海溢)한 신위(神位)에
폐와 발톱만 남겨 놓고는
옷과 신발을 벗어 던지자.
집과 이웃을 이별해 버리자.

오- 소녀와 같은 눈동자를 그득히 뜨고
뉘우치지 않는 사람, 뉘우치지 않는 사람아!
가슴속에 비수 감춘 서릿길에 타며 타며

오너라, 여기 지혜의 뒤안 깊이
비장한 네 형극의 문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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