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휴가 마지막날 새벽이다. 아직 잠 못드는 것은 미래의 일들을 구상하고 점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끄럽지 않은 삶이 되려고 그렇게나 고민했건만 지난날을 돌아 보는 것에 얼굴이 화끈 거리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보다. 과거에 '만약'이라는 가정을 달고 몽상에 빠지는 어리석음을 또 다시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약간의 수면을 취한 후에 부대로 복귀한다. 5일후면 그렇게나 고대하던 전역일. 2년의 기간이 헛되지 않고 낭비가 되지 않았음이 다행이다. 그래서 2년의 기간은 내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목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떳떳하고 보람있었던 기간이다. 내 작품의 한 단락이 완성되고 있는 중이다. 국방부에 감사한다.
내가 정한 미래의 목표가 올바른 것인가는 알 수 없다. 다만 조금더 용기있게 정진하려고 할 뿐이다. 시련과 실수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인생전체가 실패가 되는 것은 정말 비극이다. 도전이 없다는 것이, 끓는 정열과 비전이 없다는 것이 진정 실패로 여겨지기에 도전 없는 안락보다 도전 실패가 더 아름다워 보인다.
의학전문대학원 시험 준비를 하자면 8개월의 시간을 모조리 쏟아부어야 한다. 공부의 양에는 두려움이 없다. 난 이미 14시간 이상의 공부를 할 마음의 각오가 되어있다. 이미 중고등학교 때부터 공부란 놈의 정체를 간파하고 있기에 공부의 양은 문제가 없다. 다만 공부하는 방법이나 노하우, 생경한 과목들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제야 긴장이 되고 삶이 삶으로 느껴진다.
부딪히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건 군에서 이미 체득한 일이다. 인사 계통의 중대 행정병 생활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직접 가서 물어보고, 난감한 일을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깨지고 욕먹으며 문제를 해결하고 등등의 일들은 나에게 끊임없이 노력하고 대담해질 것을 요구했다. 이전 행정보급관님은 나에게 심지어 고참들에게 대들 수 밖에 없는 보직임을 강조했는데, 이는 사실이었다. 끊임없는 고참들의 간섭과 근무 관련한 로비, 수많은 타협과 대화로부터 나는 점점 강해졌고 이제는 어엿한 예비역 병장이 되려고 한다.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정체하지는 말자. 이것이 내가 배운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