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만 해도 사랑은 따스하고 새록 새록한 느낌의 핑크빛 전조가 가득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남자와 여자가 평생을 서로만을 사랑하다가 한 날 한시에 세상을 떠나는 것을 그리며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어린 날 내가 꿈꾸던 사랑이었다면 현재 내가 바라보는 사랑은 사실 어떠한 형태인지도 잘 모를 만큼 그 경계가 모호해졌으며 어린 시절 꿈꾸던 사랑은 그저 바람일 뿐인 것들이 대부분이라며 현실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사랑은 그야말로 어려운 인생 최대의 난제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인지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을 보고 들으면서도 매번 뻔해 뻔해, 라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면서 괜히 트집을 잡기 일쑤였던 것 같다. 누구보다도 오롯한 사랑을 원하면서도 그러한 수 많은 사랑에 핀잔을 주고 있는 나에게 저자는 조용히 이 책을 전해주고 있었다.
줄리아는 어느 날 엄마로부터 아버지의 유품을 건네 받게 된다. 갑자기 홀연히 사라져 버렸던 아버지를 다시 마주하는 게 유품으로의 조우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미밍’이라는 여인에 대한 궁금증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찾기 위해 미얀마로 떠나게 된다.
그녀의 아버지인 틴원이 태어나기도 훨씬 전의 미얀마는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국가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던 때였으나 그가 태어난 곳은 열대 우림과 같이 선진 문명이 비집고 들어가기 보다는 이전부터 내려오던 미신들이 더욱 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시대였다. 토요일에 태어나는 아이는 재수가 없다, 라고 믿던 풍습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에야 말도 안 되는 것들이라 웃어넘길 수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미신을 넘어 하나의 생활상처럼 굳어져 버린 것이었기에 하필 토요일에 태어났던 틴원은 그의 어머니인 미야미야로부터 불행의 근원처럼 비쳐지고 있었으며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마자 그는 버림을 받게 된다. 다행히도 이웃집의 수치가 틴원을 거둬들이게 되는데 당시 그녀 역시도 말라리아로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내고 아이마저도 잃게 되면서 틴원을 친 아들처럼 키우게 된다.
우리는 오히려 감각기관 때문에 길을 잃지. 그 중에서도 특히 눈은 우리를 잘 속인다. 우리는 지나치게 보이는 세상을 믿지만 우리가 보는 것은 단지 껍데기일 뿐이란다. 사물의 참된 성질, 사물의 본질을 볼 줄 알아야 해. –본문
설상가상으로 그가 태어난 토요일의 불우한 기운을 받아들인 것처럼 백내장으로 그의 눈이 멀게 되지만 수치는 그에게 우 메이라는 수도승을 소개시켜주고 그를 만나면서 틴원은 눈이 아닌 그의 모든 것들로 세상을 조우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틴 윈은 일단 주변의 소리와 어조, 소음을 완전히 흡수했다. 그런 다음 귀에 들리는 소리를 자세하게 설명하면, 미밍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광경을 설명했다. 화가처럼 처음에는 장면을 대강 스케치해서 들려준 다음 점차 정교하고 세밀하게 표현했다. 이미지와 소리가 어울리지 않을 때는 낯선 소리의 근원을 찾아 나섰다. 미밍은 산울타리와 덤불 속을 기어 들어가기도 하고, 꽃밭을 가로질러 집 아래로 들어가거나 돌담을 파헤쳤다가 다시 세우기도 했다. 장작더미 속을 뒤지기도 했고 손으로 풀밭과 밭을 파헤쳐 틴 윈의 귀에 들리는 소리의 원천을 알아냈다. –본문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틴원은 그의 귀를 통해서 세상 모든 것들을 마주할 수 있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유독 쿵쿵, 하는 소리에 대한 근원이 어디인지에 대해 궁금해하던 찰나 그것은 바로 미밍의 심장 소리임을 알게 된다. 미밍 역시 태어날 때부터 다리가 불편한 몸으로 태어나 그녀는 매 순간 자신의 오빠에게 업혀 다니면서 이동을 하고 있었는데 이렇듯 무언가 하나씩 부족한 듯한 그들이 서로를 마주하게 되면서 그들은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메꾸며 그들만의 사랑을 키워나가고 있다.
미밍의 심장 소리를 듣자 마음이 진정되었다. 세상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는 상상할 수 없으리라. 그녀의 심장은 다른 사람들의 심장과 달랐다. 더 자주, 더 음악소리처럼 고동쳤다. 심장이 뛰는 게 아니라 노래를 불렀다. –본문
세상은 그들에게 정상이 아닌 장애인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부를지 모르지만 미밍과 틴원이 함께 하는 동안에는 그야말로 완벽한 하나의 사랑으로 빛을 내는 모습들을 보면 애잔하면서도 그들의 사랑이 그 무엇보다도 찬란하며 위대해 보였다. 하지만 이들이 사랑에도 생각지 못했던 복병이 드러나게 되니, 바로 틴원의 삶을 근원부터 뒤 흔들었던 미신이었다. 그의 고모부는 틴원을 이끌고 양곤으로 향했으며 그 곳에서 눈을 뜨게 된 틴원은 다시 뉴욕으로 가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향한 마음 만은 늘 그들이 함께했던 곳에 있게 되지만 반세기 동안 실제 서로를 그리워만 하며 만날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부딪치게 된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줄리아는 그의 아버지의 삶은 물론 미밍의 이야기들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이렇게 나마 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게 된다.
사랑마저도 제 멋대로 재단하고 그 안에 따스함보다는 이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요즘의 사랑이 아닌 동화 같은 이야기에 빠져 애잔하게 그들의 이야기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들이 알고 있는 그 순간부터 한 순간도 서로를 잊지 않았던 그들은 지금에는 서로의 심장박동 소리를 듣고 안심하고 있을까. 사랑에 대한 알 수 없는 원망에 빠져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 전해주고 싶다. 아직 사랑을 뛰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