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주로 책을 읽는 나에게 이 책은 이 탁 트인 공간에서 이 책을 읽어도 되는 걸까? 라는 생각에 겉 표지를 감싸게 하고 나만 볼 수 있도록 최소한의 각도로 책을 펼쳐 보게 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책을 읽는 것이 그러니까, 낙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이 책을 읽는 것이 마치 금서를 읽는 것마냥 내 스스로 너무 가두고 있다는 생각에 죄인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에 당당히 무릎 위에 펼쳐 놓고 읽기 시작했다. 물론 ‘낙태’라고 크게 쓰여있는 문구를 볼 때면 무언가 알 수 없는 눈빛을 느끼긴 했지만 말이다.
학창시절에 성교육이라는 것을 접한 것은 고등학생 때 인 듯 하다. 여고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아니면 그 당시가 성교육이라는 제도를 도입한 지 얼마 안됐을 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의 성교육이라는 것은 그다지 학습적인 형태이거나 효율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녹화된 테이프였는지 아니면 실제 상담사가 방송실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방영한 것 인지는 명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때 그 상담사가 언급하신 내용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한 여자가 상담사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성경험이 있었던 상담자는 그 상담사에게 어떠한 의술 행위가 가능한지를 문의했고 상담사는 “너무 헤프게 몸을 굴렸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라고 이야기 했다고 당시 내용을 회고했다. 실제 유선 상 상담자에게 그렇게 이야기 했을 지는 모르겠지만, 상담사의 기억 속에 이렇게 남아 있다면 그 상황에서도 아마 상담자에게 좋은 방향으로 그러한 내용이 오가지는 않았을 것이며, 아마도 미성년자인 우리에게 성관계는 옳지 않은 행위임을 강하게 인식시키기 위한 언급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대학교에 들어와서 과연 우리는 성교육이라는 것을 제대로 배운 적이 있었는가 란 생각이 든다. 교양 수업으로 선택해서 듣지 않는 이상, 성교육이라는 것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낙태’라는 것은 아무래도 사회 통념상 금기 시 되는 주제라 할 수 있다. 빠르게 변화해 가는 이 시대에 편승하지 못한 나 혼자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낙태를 입에 담는 것은 께름칙한 것으로 이러한 주제에 대해 다뤄볼 만한 때가 없었기에 그저 막연하게만 그려볼 뿐이다.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낙태에 대한 논의는 쉽사리 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도 우리 사회의 통념상 낙태는 나쁘다, 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선이기에 그러한 것을 알고자 하는 호기심이나 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구에서 이야기되는 ‘선택옹호론(pro-choice)대 생명옹호론(pro-life)이라는 논쟁구조가 보여 주듯이, 전통적으로 낙태라는 주제는 양분화된 격렬한 논쟁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형법은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어 낙태 시술을 한 의료인뿐 아니라 임신부까지 처벌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낙태는 모자보건법에서 허용하는 합법적 인공 임신 중절 사유가 아니면 불법이 되는 것이다. 이때 그 허용 사유라 임신부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신 장애나 신체 질환, 혹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이나 근친상간으로 임신이 되었을 때 등 그 허용 한계의 폭이 대단히 협소하다. 또한 이 경우에도 임신한 여성은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대다수의 낙태는 불법이다. 그런데도 낙태죄의 기소 건수는 매년 열 건을 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2012년 9월, 헌법재판소의 형법의 낙태죄 규정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고, 낙태 금지법은 여전히 규범력을 가진 살아 있는 법이다. -본문
나는 낙태에 대해 절대적인 지지자도 반대자도 아니다. 그 상황에 따라서 판단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만을 가지고 있다. 그 어느 쪽도 치우치지 않았지만 이 책을 골라 집은 이유는 어느 쪽이든 일단 제대로 알아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그 생각이 옳았다는 것은 책을 읽는 내내 깨닫게 되었다.
낙태에 관해 기록된 오랜 문서 중 하나는 이집트에서 발견된 것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 파피루스에 기록된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도 낙태에 관한 기록을 남겼지요. 현대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스는 약물 사용을 반대했지만, 유산이 되길 바란다면 제자리에서 뛰라고 조언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본문
비단 우리나라안에서의 문제에만 국한 한 것이 아니라 현재 각 국가에서 낙태법이 어떻게 시행이 되고 있는지 그 역사는 어떠한지, 찬반의 의견들을 보여주고 있다. 한 나라의 법은 그 안에 전통적, 사회적, 도덕적 가치 등이 포함 되어 있기에 낙태법을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를 단정지을 수는 없었지만 읽는 내내 일정 규제 안에서 낙태가 시행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낙태를 찬성한다고 해서 모든 낙태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아니다. 낙태가 시행하기 전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피임과 가족계획 등의 교육이 우선되어야 하고 낙태라는 것은 최후의 수단으로서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찬성 vs 반대
어디에 사느냐와 관계없이 안전하고 합법적인 낙태는 여성의 기본 권리이다. 오늘날 위험한 낙태 수술로 발생하는 사망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출혈이나 감염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경명과 무관심이다.
-<랜싯 The lancet>지의 성과 생식 건강 시리즈 중 2006년
위험한 의학적 문제가 생겼을 때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치료와 보살핌이 필요한 대상이 임신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라는 사실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생명도 엄마의 생명과 마찬가지로 존엄하며, 어떤 생명의 가치가 다른 생명의 가치보다 우위에 있을 수는 없다.
-토마스 올름스테드 주교 2010년 -본문
산아 제한 정책이나 혹은 원치 않은 임신, 당시의 여건 등에 의해 낙태는 고려된다. 단지 낙태라는 그 순간의 행위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내내 수 많은 질문들과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낙태가 한 생명을 죽이는 행위인지, 아니면 단순히 몸 속 세포를 떼어내는 수술인지, 생명의 시작을 어디서부터 바라보아야 하는 것인지, 낙태할 권리는 여성의 고유한 권리인지 아니면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보다 우선하는지.
오랜 시간 동안 대립되었던 질문이며 각 국가는 물론 종교적으로도 또 개인의 신념들도 모두 각양 각색이다. 아마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이 하나로 귀추되긴 힘들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이 시대에 존재하고 있는 낙태라는 문제를 더 이상 덮어두기 보다는 그에 대해 보다 진지한 대화와 관심으로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무엇이 옳고 그름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그 근본이 되는 것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