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 김태훈의 러브 레슨
김태훈 지음 / 미호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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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훈씨를 알게 된 건 영화를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에서였다. 거침없으면서도 달변가처럼 끊임없이, 그러면서도 매끄럽게 이야기 하는 그를 보면 어느새 멍하니 TV속 영상에 빠져들곤 했다.  그라는 사람에 좀 더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일명 세바시라는 프로그램에서 그가 우리가 연애를 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이란 주제로 한 강의를 들은 이후다.

 사랑의 방정식은 X, Y값에 대입하며 설명을 하고 비트겐슈타인의 그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의 수가 그 사람의 세계의 크기다라는 이야기를 빗대어 남자가 하루 동안 사용하는 단어가 7000여개, 여자가 사용하는 단어의 수는 20000만여 개 이기에 프로그램으로 치면 남자는 1.0버전 여자는 2.0버전이기에 남자들은 여자들의 언어인 2.0를 열람할 수 조차 없기에 이해하기 어렵다 설명하고 있다.

 조금 더 일상생활 속의 차이를 들여다 보자면, 결혼식 당일이라고 가정을 해 보자. 인생의 또 다른 시작을 둔 두 남녀는 결혼식을 앞두고서 그들만의 생각에 빠져있다. 신부는, 이 남자가 맞을까? 이대로 결혼 하면 되는 걸까? 라며 신랑이 될 사람인 남자친구가 평생을 함께 해도 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고 한다. 반면 신랑의 경우, 신부가 될 여자가 아니라, 세상에 남겨진 수 많은 여자들을 제치고 이 결혼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을 되뇐다고 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결혼 후에도 여자들이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며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남자들은 거리의 수 많은 여자들을 보며 은연 중에 아내와 비교를 한다는 것이다. 시각에 약한 동물이기에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그의 말대로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남자이기에 남자의 보편적인 생각과 마음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않을까? 그것이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였다.

 연애를 하는 동안, 아니 시작하기 전부터 상대방의 사소한 몸짓이나 주고 받는 메시지 만으로도 우리는 수 많은 생각들을 하고 순간순간 판단을 하게 된다. 대체 이건 무슨 의미일까? 나한테 관심이 있다는 걸까?부터 시작해서 연애가 시작하고 난 이후 부터는 밀고 당기기를 잘해야 한다는 둥,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연애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의 연애에 대해서는 곧잘 쉽게 상황을 판단하고 정확한 진단이라며 해결책을 제시하게 된다. 문제는 나의 연애에 있어서 만큼은 그게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남의 연애는 쉬운데 나의 연애를 그렇지 못하는 이 딜레마에 있어 김태훈은 그가 그 동안 들어왔던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있다.    

 사랑은 요리사의 도마 위에 오른 생선 같다. 신선한 날 것 그대로의 사랑은 이제 내장을 빼내고 뼈를 발라 요리를 위해 냄비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운명이다. 맛있는 요리가 만들어질 것인지 아니면 간이 맞지 않는 실패작이 될지는 요리사의 손에 달려 있다. 재료의 훌륭함이 요리마저 성공시킨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연애란 그런 것이다. –본문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말처럼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생각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어느 정도 마음이 통하여 만남이 시작되었다고 한 들 둘이서 함께 한 곳을 바라보는 것은 생각만큼이나 간단하지 않다. 수 많은 연애의 방식이 있기에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우리의 연애라는 풍랑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굳건할 수 있도록 그 동안의 그의 경험이자 지인들의 에피소드들은 이미 지나왔던 과거이자 또 하나의 데이터이기에 꽤나 유용하면서도 억지스럽지 않아 공감 가는 부분들이 많다. .

친한 남자친구들은 형제와 같다. 서로 빚 보증만 서지 않는다면 그렇다. 남자친구들 사이에선 비밀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유일하게 간직하는 비밀이 딱 두 개 있다. 사람마다의 편차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이 자존심에 관련된 집안 문제와 여자친구와의 비밀스런 일들은 친구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남자들에겐 수컷 근성이라는 것이 있다. 자신의 영역 안에 있는 것을 보호하려는 본능도 이 안에 들어간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도 이런 본능의 일종인 셈이다. 그래서 사귀고 있는 여자가 내 여자다확신이 서면 두 사람의 비밀스런 일들은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거의 하지 않는다. 이것은 남성들 사이의 일종의 묵계이다. –본문

무엇보다도 저자 역시 남자이기 때문에 상담을 하면서 보편적인 남자들의 성향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다. 사랑을 시작할 때, 사랑을 할 때, 사랑을 끝내려 할 때의 남자들의 모습이 모두 동일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참고를 할 수는 있다는 것. 그러면서도 내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항상 사랑에 빠져 있는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또 나름의 만족을 하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이 사람을 계속 만나야 합니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오직 두 사람만이 알고 있다. 물론 일반적인 상식에 비추어 주관적인 답변을 들려줄 수도 있다. 그러나 두 사람만의 게임인 연애의 규칙은 원칙적으로 두 사람이 정해야 한다. 야구의 룰이 축구경기에 적용 될 수 없는 것처럼 특별한 두 사람의 연애라는 게임에 다른 사람들의 규칙이 적용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본문

둘이서 함께 만들어 가는 연애이기에 그 둘만이 가장 자신들의 모습을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맞는 건지 하며 타인의 조언을 얻으려 한다. 이미 내 안에 답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때론 조언을 들으며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고 싶은 바람에서 일 것이다.

모든 해답이 이 책 안에 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연애라는 레이스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룰을 배울 수는 있다. 진부한 듯 하면서도 그것이 언제나 큰 고민거리이기에 읽는 동안에 꽤나 키득거리며 읽은 듯 하다. 연애에 대해 고민이 있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이야기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해 지고 싶은 바람이 가득한 연애이야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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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 낙태, 금지해야 할까? 내인생의책 세더잘 시리즈 18
재키 베일리 지음, 정여진 옮김, 양현아 감수 / 내인생의책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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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에서 주로 책을 읽는 나에게 이 책은 이 탁 트인 공간에서 이 책을 읽어도 되는 걸까? 라는 생각에 겉 표지를 감싸게 하고 나만 볼 수 있도록 최소한의 각도로 책을 펼쳐 보게 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책을 읽는 것이 그러니까, 낙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이 책을 읽는 것이 마치 금서를 읽는 것마냥 내 스스로 너무 가두고 있다는 생각에 죄인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에 당당히 무릎 위에 펼쳐 놓고 읽기 시작했다. 물론 낙태라고 크게 쓰여있는 문구를 볼 때면 무언가 알 수 없는 눈빛을 느끼긴 했지만 말이다.

 학창시절에 성교육이라는 것을 접한 것은 고등학생 때 인 듯 하다. 여고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아니면 그 당시가 성교육이라는 제도를 도입한 지 얼마 안됐을 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의 성교육이라는 것은 그다지 학습적인 형태이거나 효율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녹화된 테이프였는지 아니면 실제 상담사가 방송실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방영한 것 인지는 명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때 그 상담사가 언급하신 내용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한 여자가 상담사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성경험이 있었던 상담자는 그 상담사에게 어떠한 의술 행위가 가능한지를 문의했고 상담사는 너무 헤프게 몸을 굴렸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라고 이야기 했다고 당시 내용을 회고했다. 실제 유선 상 상담자에게 그렇게 이야기 했을 지는 모르겠지만, 상담사의 기억 속에 이렇게 남아 있다면 그 상황에서도 아마 상담자에게 좋은 방향으로 그러한 내용이 오가지는 않았을 것이며, 아마도 미성년자인 우리에게 성관계는 옳지 않은 행위임을 강하게 인식시키기 위한 언급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대학교에 들어와서 과연 우리는 성교육이라는 것을 제대로 배운 적이 있었는가 란 생각이 든다. 교양 수업으로 선택해서 듣지 않는 이상, 성교육이라는 것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낙태라는 것은 아무래도 사회 통념상 금기 시 되는 주제라 할 수 있다. 빠르게 변화해 가는 이 시대에 편승하지 못한 나 혼자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낙태를 입에 담는 것은 께름칙한 것으로 이러한 주제에 대해 다뤄볼 만한 때가 없었기에 그저 막연하게만 그려볼 뿐이다.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낙태에 대한 논의는 쉽사리 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도 우리 사회의 통념상 낙태는 나쁘다, 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선이기에 그러한 것을 알고자 하는 호기심이나 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구에서 이야기되는 선택옹호론(pro-choice)대 생명옹호론(pro-life)이라는 논쟁구조가 보여 주듯이, 전통적으로 낙태라는 주제는 양분화된 격렬한 논쟁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형법은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어 낙태 시술을 한 의료인뿐 아니라 임신부까지 처벌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낙태는 모자보건법에서 허용하는 합법적 인공 임신 중절 사유가 아니면 불법이 되는 것이다. 이때 그 허용 사유라 임신부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신 장애나 신체 질환, 혹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이나 근친상간으로 임신이 되었을 때 등 그 허용 한계의 폭이 대단히 협소하다. 또한 이 경우에도 임신한 여성은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대다수의 낙태는 불법이다. 그런데도 낙태죄의 기소 건수는 매년 열 건을 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2012 9, 헌법재판소의 형법의 낙태죄 규정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고, 낙태 금지법은 여전히 규범력을 가진 살아 있는 법이다. -본문

 나는 낙태에 대해 절대적인 지지자도 반대자도 아니다. 그 상황에 따라서 판단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만을 가지고 있다. 그 어느 쪽도 치우치지 않았지만 이 책을 골라 집은 이유는 어느 쪽이든 일단 제대로 알아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그 생각이 옳았다는 것은 책을 읽는 내내 깨닫게 되었다.

낙태에 관해 기록된 오랜 문서 중 하나는 이집트에서 발견된 것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 파피루스에 기록된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도 낙태에 관한 기록을 남겼지요. 현대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스는 약물 사용을 반대했지만, 유산이 되길 바란다면 제자리에서 뛰라고 조언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본문

 비단 우리나라안에서의 문제에만 국한 한 것이 아니라 현재 각 국가에서 낙태법이 어떻게 시행이 되고 있는지 그 역사는 어떠한지, 찬반의 의견들을 보여주고 있다. 한 나라의 법은 그 안에 전통적, 사회적, 도덕적 가치 등이 포함 되어 있기에 낙태법을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를 단정지을 수는 없었지만 읽는 내내 일정 규제 안에서 낙태가 시행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낙태를 찬성한다고 해서 모든 낙태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아니다. 낙태가 시행하기 전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피임과 가족계획 등의 교육이 우선되어야 하고 낙태라는 것은 최후의 수단으로서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찬성 vs 반대

어디에 사느냐와 관계없이 안전하고 합법적인 낙태는 여성의 기본 권리이다. 오늘날 위험한 낙태 수술로 발생하는 사망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출혈이나 감염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경명과 무관심이다.

-<랜싯 The lancet>지의 성과 생식 건강 시리즈 중 2006

위험한 의학적 문제가 생겼을 때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치료와 보살핌이 필요한 대상이 임신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라는 사실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생명도 엄마의 생명과 마찬가지로 존엄하며, 어떤 생명의 가치가 다른 생명의 가치보다 우위에 있을 수는 없다.

-토마스 올름스테드 주교 2010-본문

 산아 제한 정책이나 혹은 원치 않은 임신, 당시의 여건 등에 의해 낙태는 고려된다. 단지 낙태라는 그 순간의 행위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내내 수 많은 질문들과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낙태가 한 생명을 죽이는 행위인지, 아니면 단순히 몸 속 세포를 떼어내는 수술인지, 생명의 시작을 어디서부터 바라보아야 하는 것인지, 낙태할 권리는 여성의 고유한 권리인지 아니면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보다 우선하는지.

 오랜 시간 동안 대립되었던 질문이며 각 국가는 물론 종교적으로도 또 개인의 신념들도 모두 각양 각색이다. 아마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이 하나로 귀추되긴 힘들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이 시대에 존재하고 있는 낙태라는 문제를 더 이상 덮어두기 보다는 그에 대해 보다 진지한 대화와 관심으로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무엇이 옳고 그름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그 근본이 되는 것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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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속으로 걷다
브라이언 토머스 스윔 외 지음, 조상호 옮김 / 내인생의책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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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끔은 지구본을 보면서 혹은 텔레비전에서 지구를 비추는 장면을 보면서도 나는 내가 지구라는 행성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기만 하다. 아니, 실제로 와 닿지 않는 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으로 인해 낮과 밤이 구분을 보고, 지리산 종주 중에 보았던 별똥별을 보면서도 지구는 태양계의 하나의 행성이다, 라는 진리를 이해한다기 보다는 그저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가 한 작은 점에서 시작하여 현재까지의 거듭된 팽창으로 인해 만들어졌다는 빅뱅이론을 보면서도 과학자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게 맞는 거겠지, 라는 생각만을 하며 그에 따른 어떠한 호기심이나 질문도 던져본 적이 없다. 이과를 전공으로 공부했던 고등학생 시절에도 아마 이러한 이유에 지구과학이 아닌 화학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아마 이런 이유일 게다. 근본적으로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그 무언가를 느낄 수가 없었다.

과학 서적들을 접하면서도 좀 더 많은 교양을 쌓고 부족한 지식의 갈구의 목적으로 읽어왔다. 흥미보다는 필요에 의해서 만남을 가진 어색한 맞선 자리에서의 만남이랄까? 과학이라는 분야는 영원히 그런 분야로 남아있을 것만 같았다.

우주 속으로 걷다, 라는 이 책 역시 철저히 과학 분야의 책임을 표지에서부터 드러내고 있다. 이번엔 또 얼마나 어려운 이야기일까, 라며 두려움과 함께 한 장씩 책장을 넘기는 사이에 책 페이지마다 포스트잇은 점점 가득히 붙여졌으며 그 안에서 점점 더 알고 싶다는 욕망에 이끌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고 있었다.

우주가 단지 쿼크와 렙톤으로 구성되었을 때 어느 누가 이것이 별과 우주의 탄생을 가져올 과정이라고 생각 할 수 있었을까? 지구가 탄생했을 때 그 리고 생명체가 작고 가벼운 세포의 형태로 존재했을 때 누가 그 속에서 이것이 다랑어나 우거진 숲으로 변신할 것이라고 알아볼 수 있었을까? 위험과 모험이 가득하지만 또한 놀랍게 창조적인 웅장한 드라마 속에 우리가 위치하고 있음을 깨닫는다.-본문

 그저 한 순간의 급작스런 팽창으로 인해 우주가 건설된 것이겠지, 라는 생각이 무색하리만큼 우주는 너무도 정교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끊임 없이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는 있었으나 이 팽창의 속도는 현재의 우리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주는, 그렇기에 다분히 고마워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지금의 팽창 속도보다 아주 조금만 더 빨리 팽창한다면, 그러니까 백반분의 일 퍼센트 만큼씩만이라도 빨라져도 이 우주는 구조를 형성할 수 없었다고 한다. 조금만 빠른 속도였다면 이 세계는 단순히 먼지로만 가득한 그 상태로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적절한 팽창의 속도는 우주의 기본 입자인 쿼크와 렙톤를 만들었고 그 안의 알 수 없는 인력의 발생으로 쿼크간의 결합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양성자와 중성자가 형성되게 된다. 이러한 양성자와 중성자는 강한 상호작용으로 결합되게 되는데 이 결합 시에 양성자와 중성자의 질량 일부를 버리게 되고 이 버려진 질량에서 빛으로 변형된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우주의 근원은 씨앗의 발아와도 비슷하다. 하나의 작은 씨앗이 바오밥나무가 되기도 하고, 코스모스로 피어나기도 하고. 우리는 씨앗의 형태일 때에는 그 안에 얼마나 큰 우주를 품고 있는지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것들이 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비단 이러한 씨앗들의 발아뿐만 아니라 인간의 탄생 또한 하나의 작은 세포들의 결합으로 이뤄지니 생명들의 탄생은 어쩌면 이러한 우주의 기원을 닮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우주 안에도 삶과 죽음이 있으니 초신성의 폭발이 바로 그 삶과 죽음을 함께 드러내는 것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초신성의 폭발 후 다시 우주로 환원이 되게 되는데 이 폭발로 인해 원소들의 결합이 발생되게 되고 그로 인해 태양계가 생겨나게 되었다고 하니, 하나의 죽음 뒤에 수 많은 삶이 태어나는 것이다.

 이 때 만들어진 원소들은 가오리가 되기도 하고, 나무가 되기도 하고, 인간으로 재 탄생된다. 인간이 별에 대해 갈망하고 그것에 대해 탐닉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의 기억 속에 우리가 별의 자손이라는 것이 남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현재 대량 멸종 현상이 일어나는 가운데 1만 년 동안 이어져 오던 충적세가 끝이 나고 인류세가 도래하고 있다. 인류세란 자연의 체계가 아닌 인류에 의해 그 모습이 주로 형성되는 새로운 시대이다. –본문

 이 지구상에서의 인간이 지구라는 행성을 지배하는 존재가 되는 것은 유인원의 뇌가 커지고 직립 보행을 하게 되었으며 자신들이 살아왔던 그 생존의 방법들을 DNA로 각인시켜 전달하게 되면서이다. 무엇보다도 기호를 통해서 자신의 몸 이외의 DNA를 후손들에게 전달함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더 이상 하늘을 보며 시간을 가늠하지 않아도 인간 스스로 만들어 놓은 시간이라는 물리적인 표식에 의해 움직이게 됨에 따라 마치 인간이 이 곳의 주인이 되어버린 듯 모든 것을 제멋대로 지구를 휘두르고 있다.

사람들은 우주의 모든 것이 커다랗게 연결되어 가족을 형성하므로 모두 나의 친족이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본문

 너와 내가 다를 지 언정 그 시초는 모두 하나의 점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누가 누구보다 우월하다거나, 인간이 세상만물의 군림하려는 식의 행동들은 모두 부질 없는 논제들을 붙잡고서 구태여 아등바등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하나의 먼지와도 같은 존재에서부터 시작된 우주 안에서 은하의 탄생 속에서 지구 안의 인간에게까지 초점을 맞추기까지, 단순히 한 권의 과학이 아니라 그 안에는 인간의 모든 것이 담아있었다. 과학을 전달하기 위해 문학 한 조각, 철학 한 조각 등의 갖가지 내용들이 함께해서 다채로운 빛으로 나타내고 있기에 거대한 우주 안에서 인간의 존재와 인간이 이 우주의 공간에서 어떻게 함께 해야 할지를 깨닫게 하는 경이로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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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그대가 가야 할 길을 알고 있는가
선묵 혜자 지음 / 아침단청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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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2월도 다지나가 버린 달력을 보며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에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나 보다. 날짜는 가고 있는데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 조금 더 빨리 움직이고 더 많은 것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오늘도 내 스스로를 채근하고 있을 즈음에 이 책을 펼치고 나서 만나게 되는 한 편의 그림과 시를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나는 이토록 달려왔던 것일까, 라는 생각과 독서에있어서도 빨리 빨리를 외치고 있던 나를 잠시 놓게 되는 순간이었다.

세상에는 말이 너무 많고 지식은 쓸데없이넘쳐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은 그다지많지 않습니다.

더 알려고 하지 말고 아는 것을 행하세요본문

그 동안 담아왔던것들도 체 소화시키지 못하면서 일단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했던 욕심들이 무색하게 느껴지게 된다. 대체나는 무엇을 얻고자, 어디로 가기 위해서 나를 재촉했던 것일까. 지혜와지식은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더 중요한 법이거늘,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모른 채 부족을 느끼며 그 갈망으로 여러 우물만 덧없이 파고 있었다.

얼마 전 서울역에서 불우이웃돕기 성금을모금하였습니다.

모아진 성금은 몽땅 구세군 자선냄비에넣었습니다.

종교의 이름은 다르지만 베푸는 마음은하나입니다.

모든 종교는 스스로도 이롭게 하고 타인도이롭게 하자는 자리이타를 지향합니다. –본문

나는 불신자(不信者 )이다. 어떠한종교에 대해 믿음이 확고하지 않아 종교활동을 하지는 않는다지만 다양한 종교에 대한 관심 혹은 호기심은 있다. 그래서이런 종교들에 대해 배우고 싶다는 갈망을 있기에 책을 들춰보고는 있으나 그것도 그다지 깊게 파고들지는 않기에, 아마도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무언가에 빠져들기 보다는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고 있는 중인 듯하다.

그런나에게 있어서도 종교간의 벽이라 하는 편견은 꽤나 두텁게 자리잡고 있는 듯 하다. 종교에 대해 모르기때문에 이러한 편견 따위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스님의 불우이웃돕기 성금에 모금을 했다는 저 한 줄의 문장을 읽으며, 모든 종교는 자리이타를 지향하기에 종교의 이름이 중요치 않다는 말씀에 내가 종교뿐만이 아니라 세상에 가지고있는 장벽에 꽤나 두텁게 자리잡고 있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다시 보아도 따뜻하면서도 청량감마저일게 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스님이 구세군 냄비에 성금을 모금하는 모습. 왜 나는 그 동안 구세군 자선냄비를 하나의 종교로만 인식하고 있던 것일까. 모두를 베풀기 위한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세계에만 한정하여 바라보던내 시안이 철저히 부서지게 되었다.

우리는 주인 노릇보다 종 노릇 하는 경우가많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욕을 했습니다.

욕을 먹으니 심사가 뒤틀리고 열불이 돋습니다. 이상하지요.

욕을 듣기 전엔 내가 주인이었는데 갑자기나타난 분노 앞에 말 잘 듣는 종처럼 행동합니다.

분노도 괴로움도, 기쁨도 즐거움도 오늘은 있다가 내일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허망한 것들에 매달려 종처럼 살지 마세요.

부디 주인이 되세요 본문

세상을 살아가는동안에 모든 사람이 나의 편이 될 수는 없다. 나만 해도 어떠한 사람은 좋고 싫음이 명확하게 나뉘어져있기에 그들 역시 나를 바라보는 것에 있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언제나 듣기 좋고달콤한 이야기들만이 내 주변을 떠돌지 않은 것은 자명하지만, 이왕이면 좋은 이야기에는 덩실거리며 고래마저도춤을 추게 하기에 그런 이야기만을 마주하며 살고 싶은 것이 솔직한 바람이다. 하지만 인생이 언제나 내뜻대로 흘러가진 않기에 가끔은 얼굴이 붉혀지게끔 하는 기분 좋지 않은 때가 도래하게 된다. 아무리 한순간이라고는 하지만 누군가 나를 모함하거나 험담하는 이야기들을 듣게 되는 때에는 마음에 상처를 입고 그 이야기를 한 대상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쌓이기 마련이다. 바로 그러한 때를 위해 스님의 적절한 말씀이 있었으니, ‘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분노의노예가 되어버리는 순간 내가 없고 분노만 남게 되는 것이기에 그 분노는 나를 집어 삼키고 그 힘으로 또 다른 사람에게 이 분노를 전가시키려 한다. 이 분노라는 녀석의 일련의 과정에 편승하게 되면 분노의 종이 되어 분노가 주인이 되어버린다.

생각해보면 그다지중요치 않는 그 한 순간 때문에 괜히 나의 마음을 흩트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욕을 한 대상이 원하는대로, 분노에 휩싸여 나를 잃어버리는 대신 오히려 별거 아니야, 라는태도로 넘기며 나를 다잡는 그 태도야 말로 좀 더 강건한 나를 만드는 삶의 지혜인 것이다.

그대는 왜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믿는건가요? 그 대는 왜 자꾸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자신을 끝없이 타인과 비교하기 때문은아닐까요? ‘나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원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사실,세상만사가 원하는 대로 다 된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 올 이유가 없습니다.

세상은 학교이고 우리는 여기에 배우러온 학생입니다. –본문

보통책들과 비슷한 두께이지만 읽는 대에는 1~2시간이면 일독이 가능한 책이다. 하지만 읽는 내내 이 책만큼은 빠르게 넘기기 보다는 하나하나 내용과 의미를 곱씹으며 천천히 음미하며 책을 읽어내려갔다. 아마도 스님 역시 빠른 일독보다는 그 안에서의 여유와 나를 되찾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을 바라며이 책을 집필하셨을 거라 생각된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싶을 때,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생각할 때 펼쳐보면 아등바등하던 현실 속의 나를 내려놓고 나를 만나게될 수 있는, 오랜만에 즐겨보는 호화로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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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혼자가 된 당신에게 - 스스로 행복해지는 이별 심리 치유서
기나 케스텔레 지음, 황미하 옮김 / 다산라이프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사람과의 만남에 있어 그 시작은 달콤하고 설레이기 마련이다.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그 기분에충만하여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 우리에게 이별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미래이자 도래하지 않을 현실이었으면 한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만 싶은 것이 이별이기에 현재 나의 곁에 있는 이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 이책은 나에게 있어 도망가고만 싶은 펼쳐보는 순간 이별로 가는 방향을 제시할 것만 같아 두려운 책이었다.

한참 만에 마음을 다독이며 그래,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괜찮을 거야, 하나의 지식과 지혜를 배워보는 거야, 라는마음으로 지리하게만 바라보던 책장을 무겁게 넘기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주변에는 수 많은 이별이 자리잡고 있다. 그만큼수 많은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임에도 언제나 이별이라는 녀석은 쌉싸름하며 아프기 마련이다. 시간이지나면 다 나아질 거야, 누구나 한 번은 겪는 거야, 라는뻔한 이야기들은 당시에는 귓가에 들리지 않는다. 지금 이토록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픈 고통이 과연 사라지기는한다는 할까, 라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낸다기 보다는 버틴다는 것이 더 적절한 것일 게다.

어떻게 이별이라는 것이 우리를 찾아오는지, 그 진행은 어떻게되는지, 이별 후에 드는 생각뿐만 아니라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로 인해 남아있는 상처들을 어떻게치유하면 되는지. 대체 어떻게 견뎌야 하는 것인지, 어떻게벗어나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저자는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이별이라는 것이 우리의 앞에 드러내지 않기를 바라지만 피할 수 많은 없다면 그 안에서 나는 어떻게추스려야 할지, 이별이 한 사람과의 관계의 절단을 의미하지만 내 인생에서의 마지막을 고하는 것이 아니기에홀로 설 수 있는 방법을 자세히 제시하고 있는 이 책이 그 암담한 시간 속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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