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비, 라는 저자의 소개글을 보면서도 랍비? 가 뭘까, 라며 검색을 통해서야 유대교 율법교사를 지칭하는 말을 알 정도로 나는 유대인들의 일상적인 생활은 물론이고 그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저 그들의 두뇌가 뛰어나다는 것과 전 세계적으로 금융권을 쥐락펴락 하고 있는 이들이 유대인이며 그들의 교육관은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다는 정도.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유대인들의 상식이었으며 얼마 전 읽었던 ‘세계 엄마들의 일등 교육법’에서 알게 된 바로는 그들은 아이들이 남들과 다른, 예를 들어 국영수가 아닌 미술, 체육에 다분히 재능이 있고 동일한 책을 읽고서도 엉뚱한 질문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아이들과 다름을 뿌듯하게 여긴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들보다 조금 더 나은 성적과 삶을 원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 남들과 다른 삶을 격려하는 그들의 교육법이 신선하면서도 틀에 박히지 않은 것들이라 알고 싶다, 라는 생각에 알아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것이 이 책이었으며, 랍비인 저자의 가르침은 우리네 일상에서도 매번 마주치는 소소한 것들에서부터 그 일상적인 것들을 또 다른 시각으로 보는 그들의 눈을 배워 볼 수 있다. 옳지 못한 행동을 하게 되는 주요 목적은 자기 보호이다. 남의 돈을 훔치는 자는 재빨리 돈을 손에 쥐어 보자는 속셈에서이고, 죄를 지은 자는 그에 대한 벌을 받지 않기 위하여 알리바이를 조작하게 되고, 또 도둑은 남의 재산을 탐내느라고 남의 집을 터는 것이다. 그러나 험담이란, 과연 무얼 얻기 위해서 남의 이름에 먹칠을 하겠다는 것인가? –본문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듯이, 뒷담화만큼이나 시간가는 줄 모르는 소재가 없다. 누군가와 친해지려면 뒷담화를 나누어라! 라는 이야기처럼 험담은 그 험담의 대상을 제외한 이들에게는 즐거운 이야기 거리이다. 다만, 그 대상이 내가 아니라는 전제하에 말이다. 바꾸어 생각해보면 그 도마 위에 오른 대상자는 그만큼이나 무서운 것이 없을 게다. 무심코 던진 돌 하나에도 개구리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속담처럼, 그저 말 한 마디에 죽음을 논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말이 나올 법도 하지만, 요 근래에 발발하는 인터넷 상의 댓글로도 자신의 삶을 놓는 이들이 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도 말이란 무릇 누군가에게는 돌이 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하는 법이다. 이 책은 그러한 말이 지닌 양날의 칼과 같은 것에 대해 어떻게 우리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는 바, 예를 들어 정치인들의 사생활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나 정신과 의사가 환자와 상담한 내용들에 대해서 범죄에 이용 될 거 같다는 추측으로 그 이야기들을 발설해도 되는 것인가 등에 대해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어느 쪽으로도 이것이 답이다! 라고 딱히 이야기 할 수는 없는 것들이긴 하다. 대중에게 드러난 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시시콜콜한 사생활 마저 모두 보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일 수도 있고, 또 반면에 그러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들의 사생활에 대한 보고는 그 사람에 대한 인격을 판단 할 수 있는 것이기에 대중들에게는 필요한 정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갈팡질팡, 어느 쪽의 손을 들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우리에게 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험담이란 늘 남의 약점을 찾는 법이다. 그것은 파리와 같아서, 늘 더러운 곳에서만 휴식을 취한다. 만일 누가 종기를 앓고 있다면, 파리들이 그 사람의 다른 부분은 제쳐두고 그 종기에만 가 앉으려 할 것이다. 험담도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본문 말을 화살로 비유하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언제나 말이 무기로서, 독을 향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릇 말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때론 범죄를 일으키는 무시무시한 무기가 되지만 동일한 혀로 누군가의 삶에는 희망을 담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유머 작가인 아트 부크월드는 따스한 말 한마디로 뉴욕을 되살리겠다는 야심찬 꿈을 꾼 사람이었다. 그는 친구와 함께 동승한 택시를 내리면서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운전을 아주 잘 하시는 군요.” 라는 인사를 남기고 내린다. 그 말을 들은 친구는 대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그에게 묻게 되는데, 그의 대담은 다음과 같다. “어떻게 한 사람 손으로 뉴욕을 되살리겠다는 건가?” “한 사람이 아니네. 난 그 택시 운전사의 하루를 되살렸다고 생각하네. 그가 스무 명의 손님을 태운다고 가정해 보게. 누군가 그에게 친절을 베풀었기에, 그는 그 스무 명의 손님들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겠나? 그 손님들은 또 그들의 부하 직원들 혹은 웨이터들 또는 자신의 가족들에게까지도 더 잘하게 될 거네. 궁긍에 가서는 그 좋은 마음이 적어도 천 명 정도에게는 퍼져나갈 수 있을 테지.” –본문 가만히 책을 읽다 보면 말이 때론 불량식품 같은 존재일 때가 있구나, 라는 생각이 스치곤 한다.맛있고 달달하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나에게, 아니 모두에게 해가 되는 말. 그것이 바로 나의 입을 통해서 시작되고 있는데, 저자가 초반에 하는 질문과 같이 하루 중에 불친절한 말을 하지 않고 살 수 있겠느냐, 는 질문의 대답과 같이 나는 매일 불량 식품을 세상에 내뱉는 있었구나, 라며 반성을 하게 된다. 남을 해하는 불량 식품을 가득 입안에 담는 것이 아닌,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안녕하십니까, 무얼 도와드릴까요? -본문 를 울리게 하는, 저자인 랍비와 같은 24시간을 보낼 수는 없겠지만, 불친절한 말을 줄이고 따스한 말이 울릴 수 있도록, 그리하여 내 주변부터 조금씩 따스해 질 수 있도록 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