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듣고서는 纖纖玉手의 가늘고 아름다운 손을 의미하는 책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의 실제 제목은 섬섬옥수와는 상관 없는 '섬, 纖獄囚'이다. 가늘 섬, 옥 옥, 가둘 수라는 단어의 조합이 생경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 뜻을 유추해 보자면 잘은 각각의 죄를 안고서 섬에 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인 듯하다. 사실 섬이라는 공간을 한정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지만 읽을 수록 느껴지는 것은 자신이라는 섬 안에서 평생을 헤어나오지 못하는 우리네 모습을 담고 있는 이야기라, 요 근래에 읽었던 이야기들 중 가장 집중해서 읽었던 책이었다. 섬은 격리와 고독의 장소이다. 또한 섬은 바다로부터 안전한 피난처이기도 하다. 이런 상반된 의미는 땅끝섬도 예외일 수 없다. 아무리 견고해도 시시각각 불어오는 미풍에도 땅끝섬은 온몸이 흔들릴 수밖에 없지만, 바로 그렇게 몰아치는 바닷바람을 견뎌야 한다. 이를 회피한다면, 땀끝섬은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고, 떠나도 떠날 수 없는 섬이 되고 만다. -본문 어릴 적 해녀들이 물질을 하는 장면은 다큐로 보면서 전복이며 해삼, 소라를 바다 속에서 캐내는 그녀들을 보면서 한 때는 해녀의 삶을 살고 싶다며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아무런 장비 없이 홀연히 물 속을 떠돌면서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해산물을 마음껏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매력적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그 당시만해도 해녀들이 한 번 물질을 하는 동안 숨을 참으며 생과 사의 경계에서 물속을 헤매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그저 그들의 손에 들린 죽음을 담보로 한 귀한 보물에만 눈이 멀어 있었으나, 이 책 안에서 그녀들의 삶을 철저히 죽음을 기반으로 한 순간순간의 삶이 이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골이 쑤시면서 명치께가 메슥거리자 허둥지둥 뇌선 한 봉지를 입에 털어 넣는다. 다른 잠녀들도 하나같이 뇌선이나 사리돈 중독이다. 뇌선은 카페인 성분이 많아 오래 먹으면 위까지 아프지만 높은 수압을 견디며 수시로 물속을 오르내릴 때 골이 빠개질 것 같은 통증을 다스리는데 뇌선만한 것이 없다. -본문 축 늘어진 그녀들의 어깨는 나이만큼이나 뭍에서는 무겁게만 느껴지지만, 또 오늘 물질을 해야 내일을 살 수 있고, 오늘 숨을 참아야 자신의 자식들이 자신이 사라진 삶 동안에 편안히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약 한 봉지를 입안에 털어 놓고서 지긋지긋한 물질을 계속하고 있었다. 해녀가 아닌 잠녀라 불리우는 섬에서는 그들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바다의 곁에서 섬 사람들로 그렇게 살고 있었다. 어떻게든 자신의 자식들은 뭍으로 보내고 싶었지만, 정희가 그러했듯이 섬은 섬마을 사람들을 고이 내보내지 못하는 듯 하다. 아기업개 할망에게 정성스레 제를 지내는 모습에서 그들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섬이라는 그 공간에 묶여 있는 자신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듯 했다. 그렇게 젊은 여인들은 거의 없이 나이든 잠녀들이 있다면 횟집을 차린 남자들이 또 다른 섬의 주인의 모습이었다. 점점 늘어나는 관광객 때문에 유람선이 들어오는 날에는 몫 좋은 낚시터를 알고 있는 횟집 주인들은 삼삼오오 바빠졌으며 덩달아 개들마저도 바빠졌다. 그렇게 섬이라는 단독의 공간이 외부의 손길이 닿아지면서 그 특유의 모습들이 점점 사라지고, 바다가 주는 것에서 만족하던 이들이 점차 뭍의 사람들의 바람에 따라 물질적인 가치에 집착하는 모습들로 변모하게 된다. 먹고 사는 것에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오르고 나서 한번 즈음 쉬어갈 수 있는 곳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으로 이 '섬'을 사람들이 찾다 보니 덩달아 그 섬들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본래의 삶의 모습을 읽어 뭍의 사람들의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예전에는 그저 함께, 라는 인식으로 살았던 이들이라면 이제는 자신의 밥줄을 빼앗는 적이 되어버린 이웃에 대한 색안경은, 외부에 대한 이들에 대해서는 무한한 친절을 베풀고 있다. 주객이 전도되어 버린 이 상황은 구태여 이 섬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내가 살고 있는 곳곳에서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 상황이기에 보는 동안 씁쓸하게만 느껴졌다. 겉으로 드러난 무제는 골프카와 짜장면이지만,진짜 문제는 이면에 놓인 권력 관계, 더 나아가 섬의 개발이 가져온 삶의 양식과 그런 사고의 변화가 가져올 피해였다. -본문 제대로 들어 본적도 없는 제주도의 사투리 때문에 몇 번이고 뒤척이곤 했지만, 언어의 차이가 이 책으로의 접근을 막은 적은 없는 듯 하다. 낯선 단어 하나하나를 검색하면서 뭍에 사는 나와 섬에 사는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록 나는 그들과 나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새 거리의 생경함이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의 모습은 비슷하다는 것과, 나의 모습이 점차 변해가는 그들의 결과에 이른 것일 거라는 생각에 소름이 끼치기도 했던, 친밀하면서도 두려운 이야기였다. 연작소설, 이라는 것을 처음 읽어보기에 사람들의 이름과 특성을 곧 잘 잊어버리는 나로서는 강처사와 공처사의 구분을 위해서 다시 처음부터 책을 읽었듯,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과 이야기들을 잘 정리해서 보면 좋은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