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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 라니. 제목을 보고서는 이게 대체 무슨 내용일까 싶었다. 더 낫게 성공하라, 도 아닌 실패를 종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그 위에 등장하고 있는 수 많은 철학자들의 이름을 보면서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만 이 책 역시 만만치 않겠다, 라는 느낌이 엄습해 왔다.
새롭지 않은 것을 가지고 새롭다고 생각하는 착각이 만들어 내는 효과는 실로 참담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문제에 대해 가장 날카롭게 파악하고 있는 이론가는 바우디인 것 같다. 탈정초주의의 문제점을 적절하게 인식하고 있는 까닭에 바우디는 정치철학에 반대하는 이론가로서 자신을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초반의 내용들은 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즐겁게 읽었다. 하이데거, 탈정초주의, 사르트르와 라캉 등 철학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어서 단어들 마저 생소한 와중에 쏟아져 나오는 그 연대기 속 이야기들을 조합하느라 초반에 꽤나 고생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초반의 고난의 언덕을 지나고 나서 마주하게 되는 철학자들의 인터뷰는 금새 빠져들게 하는 마력과 같은 흡입력이 있었다. 이 전에 읽었던 <점령하라>라는 책 속에서 유심히 보았던 슬라보예 지젝이 맨 처음에 자리하고 있었기에 반가움 마음도 들었으며,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을, 철학자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 생각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들만큼 말이다.
뉴욕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Occupy 운동. 그 안에서 슬라보예 지젝을 처음 마주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잠식으로 인해 파생된 문제들에 대해서 사람들의 외침이 계속되는 가운데 더 이상 이렇게 안주하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한 사람들 틈에서 만난 그는 왜 우리가 이 곳에서 점령할 것에 대해서,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다시금 인지시켜 주었다. 그 당시의 외침 역시도 꽤나 울림이 있었기에 그의 이름의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그는 자본주의의 햇살 아래 자리하고 있는 정치적 주체들에 대해서 도덕적인 관념 이상의, 개개인의 양심을 넘어서 이성적이면서도 냉철하게 그들 스스로에게 철저한 책임에 대해 묻을 수 있는 자세의 필요성을 촉구하고 있다.
주변에 보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정말 많이 들을 수 잇다. 신문을 봐도 이 회사는 친환경적이고 저 회사는 선량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보도된다. 좋다. 그러나 이렇게 부정과 부패, 그리고 비리에 대한 도덕주의적 비판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점령하라’의 경우도 도덕주의적인 비판이 많았다. 주로 기업들의 부도덕에 대한 성토였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훨씬 구조적인 비판이 필요하다. 사적인 생활에서 윤리는 중요하다. 그러나 정치는 대답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본문
이러한 사태는 2012년도 영국에서도 나타나게 되는데, 지그문트 바우만은 2012년 현상이라는 이름 하에서 왜 이러한 사태들이 발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심도 있게 파헤쳐 보고 있었다.
경제가 어려워 지고 있다, 전 세계적인 난국의 상태이다, 라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고 뉴스에서는 세일을 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들지 않는 텅 빈 매장을 보여주며 소비 심리의 위축에 대한 보도가 끊이지 않는 와중에도 길거리를 돌아다녀 보면 체감되는 것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세일 매장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계산 하고 있고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양 손 가득 무거워진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자주 보게 되기에 대체 경제가 어려워졌다는 것이 맞는 것인가? 라는 혼돈이 들 정도였는데, 그에 대한 답이 바로 그의 인터뷰 안에 들어있었다.
소비주의는 우리의 선택을 제한하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게 만든다. 소비의 대상은 얼마든지 교체가능하다. 그것을 제대로 교체하지 못하면 능력을 갖지 못한 존재다. 이 말은 곧 소비를 제대로 못하면 능력 없는 자로 낙인찍힌다는 것이다. 신용카드나 백화점 우대권은 이런 능력을 과시하게 만드는 상징이다. 당연히 이 상징의 소유에서 배제된 자들은 분노하거나 실망할 수 밖에 없다. 마치 선택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본문
영국의 폭동은 바로 이러한 사태 속에서 소비의 향연이 일어나고 있는 그들의 유리성을 바라보는 평범한 시민들의 분노의 폭발이었다.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는 소비주의가 세상을 군림하게 하는 유일한 존재의 이유이기에 이에 편승하지 못한 이들은 이 세계 안에 존립할 수 없으며 그리하여 그들의 테두리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이들의 폭동이 발발하게 된 것이다.
자본주의는 놀랍게도 효과적으로 이런 사회경제적인 삶을 조직화했다. 물론 불평등하지만 말이다. 사회민주주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되었다. 금융자본주의는 기괴한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산업생산이 아닌 금융을 통해 돈을 만들어낸다는 불가능한 기획이다. 이런 판타지가 규제완화라는 명목으로, 물건을 제조하고 그것을 팔아서 이윤을 남기는 고전적인 산업자본주의를 무너뜨려버렸다. 서구 사회는 자유 시장에 대한 거대한 판타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유시장이 대책일 수 없다. –본문
슬라예보 지젝의 의견에 반대하고 있는 사이먼 크리출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는 자본주의가 그 스스로의 판타지를 안고서 구성원들에게 희망 아닌 희망을 안게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보고 있다. 모두에게 풍요로운 삶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안고 있는 시작된 자본주의의 허망한 현실 속에서 그는 등가성을 기반으로 하여 다시금 제대로 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금 마주하거나 때로는 나와 가까이 있는 거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모르고 있던 것들에 대해서 배우게 되면서, 여전히 내가 알고 있는 세계는 편협하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철원 조선노동당사의 건물을 두고 그렉 램버트와 저자와의 인터뷰가 꼭 그러한 느낌이었는데 철원에 이러한 건물이 있는 줄 조차 모르고 있던 나는 그 둘 간에 오가는 이 건물의 의미하는 평화와 전쟁 사이의 대화를 보면서 누군가에게는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는 것들이 이들에게는 이토록 심각한 대화의 주제가 되는 것을 보면서, 진정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을 다시금 배우게 된다.
사유를 시작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자동적으로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종교만 해도 복잡하다. 내가 믿는 신이 다른 사람에게도 신일 수 없다. 서로 교환되지 않는다. 이런 걸 고민해야 한다. 호기심에 그치지 말고 전 생애에 대한 고민을 해 볼 수 있다. –본문
하나의 현상을 모두 동일하게 바라보고 같은 생각을 사유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한 쪽으로만 치우쳐서 바라 볼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다양한 색깔을 가진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그리하여 다양한 시각을 배운다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인 듯 하다. 어찌되었거나 그들의 목소리는 다르지만 그들이 문제제기 하고 있는 것들은 동일하다는 점에서, 나는 이 문제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