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꽤나 오랜 시간을 공을 들여 읽은 것 같다. 눈으로 한 번 훑어보는 식의 속독이 익숙해져서 그런지, 소설이나 에세이 등을 읽을 때 하는 버릇이 이 책에도 고스란히 따라와서 아무런 생각 없으며 페이지는 넘어가고 있지만 내용은 하나도 남지 않는 백지화 현상 때문에 다시 앞으로 가서 읽고 또 읽고 하는 것이 반복되었다. 책의 난의도라기 보다는 내 스스로 이 분야에 대해 제대로 된 정리는 물론이거니와 접근 조차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고스란히 나타난 것이다. 그렇지만 독자들에게 철학이라는 그 집을 한번 다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독자들이 눈에 띄게 흥미로운 여러 방을 다 둘러본 다음, 그 방들의 위치와 건축형태, 장식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각자 어느 방으로 다시 돌아갈건지 또 돌아가서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낼 건지 스스로 결정할 수 았게 해야 할 것이다. -본문 읽는 내내 어려울지 모른다는 기우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야말로 제대로 읽어보고 싶었다. '철학 고전을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라는 부제도 부제이지만 서문에 나타난 저자의 신념이 강하게 나타난, 그야말로 누구에게나 철학이라는 것을 접하는 기회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그리하여 이 책을 집필하였다는 그의 이야기에,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철학에 조심스레 입문해보고자 하는 바람과 희망을 안고 읽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책의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익숙한 제목의 책들이 많이 보인다. 군주론, 국가론, 순수이성비란, 자본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 제목만 보아도 저자가 누구라는 것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것들이 가득하다. 함정은, 제목과 저자의 이름만 알고 있다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이 책 속에서는 이렇게 우리가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그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단순히 책을 줄거리를 서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내용은 물론 그들이 이 책을 서술하기 전후 상황이 그려져 있어 책의 탄생 비화를 함께 하는 기분이 든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제자로서 입문 하기 전 그들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았다는 것에 대해서 대략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접하게 되면서 플라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 놓고서 제자로서 그를 따른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보면 플라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치관 자체를 완전히 바꾸었다는 사실과 그리하여 탄생한 책이 국가론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이 책의 존재가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가족의 전통과 신념 속에서 성장한 청년 플라톤은 보수주의자였다. 그는 아테네의 민주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소피스트들도 적으로 여겼다. 그는 사회에서는 '위'와 '아래'가 분명히 구분되며, '최상의 사람들'이 정치적 권력을 행사해야 하고, 인민 대중은 통치자로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본문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대해 간략히 정리 된 내용을 마주하면서 과연 이 책이 고전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악한 행위라 하더라도 정당화하는 그의 주장을 보면서 나는 그 편협한 자세에 대해 힐난을 가득 안고 있었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도덕 가치로 군주의 정치적 행위를 통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군주는 천사들의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 음모와 술수가 판치는 권력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러므로 자기의 지위를 유지하려고 하는 군주는 선하게 행위하지 않을수 있어야 하고, 주변에서 요구하는 것처럼 선을 행하거나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본문 이 책속에서 마키아벨리가 속해 있던 당시의 상황을 알지 못했더라면 나는 영원히 그를 악덕한 군주를 두둔하는 위험한 인물로만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속해 있던 당시의 이탈리아는 강대국들에 휘청거려여만 했는 나약한 존재였으므로, 그는 자국이 더 이상 그들의 손에 놀아나지 않길 바라는 간절한 바람으로 이 책을 기술하였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양의 얼굴을 하고서는 체스판의 왕과 왕비를 지키는 희생양으로만 자리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이들의 이야기 중 가장 놀라운 부분은 니체에 관한 내용이었다. 차라투스트라가 은둔 생활을 마치고 몽매한 대중에게 가르침을 전하기로 결심한 그 때 그가 한 이야기, '신은 죽었다' 라는 이야기를 보며 별 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저 그가 깨달은 것을 전파하는 것이려니, 라는 생각에서 멈추었는데 저자의 말에 따르면 니체의 집안은 개신교 목사의 집안이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니체 역시 유년 시절에 성서에 대한 공부를 깊이 빠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신의 죽음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뒤집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근원에 대한 물음을 스스로 직면하여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 모두는 낡은 신앙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을 잃어버린 인간들이다. 새로운 의미 부여에 대한 그들의 동경 속에서 그들은 무(無) 앞에 선다. 여기 차라투스트라의 그림자도 속한다는 것은 니체 자신의 발전과 고려해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와 함께 허무주의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이 책과 더불어 자기 자신의 철학적 과거의 한 부분을 뒤에 남겨 놓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 저자의 말마따나 철학에 대해 일단 발을 들여놓고서 이런 것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모두에게 알 기회를 줘야하는 것이 아니냐는 그 약속을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책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의 압축이 아닌 저자가 속해 있던 그 시간의 전후를 설명해 주고 있기에 책 뿐만 아니라 그 저자들에 대한 이해도 높아진다. 읽다보면 아! 하는 순간들이 늘어갈 수록 이렇게해서 이 고전들이 탄생되었구나,를 알게 되는 재미도 쏠쏠한 책이다. 고전에 대한 무게감 때문에 도저히 다가설 수 없었던 나와 같은 이들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