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의 숲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8
안보윤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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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아저씨도 내가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ㅡ 너는 그냥, 서툰 거겠지. 어린애들의 특권이다. 멍청하고 성급한 건 어린애니까 가끔은 그런 식의 엉뚱하고 어리석은 결론을 내기도 하는 거다. 괜찮겠지. 그 정도는. 난 어설프 서툰 것드리 싫지 않다. 그런 건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채워지거든. (중략
)
ㅡ 난 멍청하지 않아요
.
ㅡ 그래, 어리지. 그것뿐이다. 그러니 돌아가. 돌아가서 제대로 정어리를 먹는 거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남김없이 먹은 뒤에 비리거나 느끼하거나 토할 것 같단 생각이 들면
.
ㅡ 들면? 그땐 어떻게 해요
?
ㅡ 뱉어. 뱉고 입을 행궈. 삶이란 원래 그런 식으로 살아내는 거거든. 정어리를 먹고, 그게 맛이 없으면 뱉고, 그 다음엔 고등어나 고래를 먹는 거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지. –본문

마지막 결론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의식하지 않고 있었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었나 보다. 아직 괜찮다,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상처를 받았다는 것으로 스스로를 옥죄일 필요는 없다, 라는 무던한 듯 하지만 모든 것을 알고서는 전해주는 이야기들을 말이다. 아직 정어리의 맛도 모르면서 이 모든 것이 버겁다고 던져버리고 싶은 나에게 정어리를 먼저 먹어보고서 그게 아니면 다른 것을 찾아 나서면 된다고 말하는, 올빼미를 만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른바 알마의 숲이라 불리는 기묘한 숲 안에서 노루와 알마, 삼촌과 올빼미의 이야기는 현실의 모습을 닮은 듯 하면서도 다른 그들만의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눈과는 다른 형태의 눈과 안대를 하고 다니는 동물들과 눈이 내리면 다른 세계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사람들과 주인에게 버림 받은 것인지 모를 물건들이 쏟아져 내리는 이 숲은 상처 받은 이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며 그렇기에 이 안에 있는 이들은 어딘가 상처를 받아 아픔을 안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아픔만을 드러내며 누군가로부터 연민의 눈길을 바라는 것이 아닌 그들 스스로 그저 그 공간 안에 자신의 삶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틀렸어, 노루. 나는 이 위태로운 삶 자체를 소중히 여기고 있어. 언제 죽어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오히려 생의 순간순간을 더욱 사랑스럽게 치장해주는 거야.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이 생의 심지를 더욱 불타오르게 만드는 거라고. 내가 가진 모순은 견디는 삶에 대한 게 아니야. 그렇게 많은 걸 포기하고 선택한 삶인데도 마음껏 정열적으로 살아낼 수 없다는 게 억울한 거지. 감정과잉은 독이니까, 적당히 시큰둥하게 살수밖에 없다고 할까. -본문

요새 말로 하면 시크하며 잔망스럽기 그지 없는 알마는 소년을 노루라고 부른다. 소년이 자신의 생을 마감하려 했던 바람과는 달리 노루 엉덩이 아래 깔려있는 채로 발견된 이후로 소년을 노루라 부르는 알마는 늘 소년의 모든 것에 촌스럽긴을 외치며 핀잔을 주고 있지만 알마 역시 나름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상처를 여느 사람들처럼 드러낼 수도 없다. 그녀가 감정을 드리우는 순간,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로 가득해 질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녀의 심장은 그 감정을 감당하지 못하고 멈춰버릴 테니 말이다. 살기 위해서 늘 감정 따위 없이 냉혈한으로 살아야만 하는 알마를 보며 안쓰럽다, 라는 생각이 스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알마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있다.

ㅡ 무엇을 선택해야 후회하지 않아요?
ㅡ 후회하지 않는 선택 같은 게 있겠냐.(중략
)
ㅡ 네가 뭘 선택하든 후회는 반드시 따라붙어. 발 빠른 놈이거든. 차라리 그놈이랑 정면으로 맞닥뜨려. 실컷 후회하고 속 시원하게 털어버릴 수 있는 쪽을 택하는 거다. –본문

늘 레고만 소년에게 쥐어주고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없던 남자와 청소년 심리 상담사로서 사회적 명성을 쌓아가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아들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는 여자에게 노루가 다시 돌아갔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삼촌과 올빼미의 이야기를 이해했다면 그는 틈을 통해서 다시 그가 있던 세계로 돌아갔을 것이다.

상처받은 이들이 쉬어갈 수 있는 이 알마의 숲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딘가에 존재하길 바라는 마음이 자꾸 일게 된다. 그리하여 나도 그 알마의 숲에 잠시 들어가 멈춰버린 세계에서 나를 다독이고 오고픈 마음이 든다.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는 그 곳에서 나의 마음만은 회복될 수 있을 이 미지의 장소를 한동안 꽤나 그리워할 것 같다. 그리고 올빼미의 마지막 이야기는 버겁기만 한 오늘을 견디게 해주는 이야기로 깊이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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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집 / 최상희

독서 기간 : 2015.06.0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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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책 - 사춘기 소년이 어른이 되기까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불온서적들
이재익.김훈종.이승훈 지음 / 시공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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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빨간 색은 경고나 주의를 요망하는 것을 알리기 위해 통용되는 색으로 사용되고 있다. 빨간 글씨로 써 있는 문구는 눈에 띄는 것은 물론 지켜야만 하는 무언가를 색을 넘어 압박감으로 전해지기도 하고 때론 금기 시 되는 것들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어찌되었건 빨간 색으로 적힌 글자는 그 글자 이상의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이 <빨간 책>이라는 제목을 보며 대체 이 안에 어떠한 이야기가 담겨 있기에 빨간 책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라는 궁금증에서부터 시작해서 사춘기 소년이 어른이 되기까지 몸과 머리를 흥분시킨 책들을 담아 놓았다는 문구를 보며 판도라의 상자를 마주한 기분마저 들었다. 물론 판도라의 상자처럼 마지막에서야 희망이라는 한 줄기 빛을 마주하는 것이 아닌 매 순간 종합 선물 세트를 열어보는 기분이 들었다는 것은 후일담이지만 말이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떡하니 <세계명작소설집>에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는데 <황홀한 사춘기>는 청계천 가판대에 숨어 있어야 하는가?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부모님께서 생일선물로 사 주시고 <황홀한 사춘기>는 보다 걸리면 엄마한테 테니스라켓으로 맞아야 하는가?
나는 수차례에 걸쳐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읽으면서 <황홀한 사춘기>와의 차이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문학 공부를 가장 열심히 했던 때가 바로 그때였다. –본문

외설과 예술의 경계를 어떻게 나뉘는지에 대해 고심했던 저자의 지난날의 회고를 바라보며 문학 작품을 읽고 나서도 대체 이 내용이 왜 세계문학전집에 있으며 고전이라 불리는 것일까, 라는 고민을 했던 나의 모습과도 오버랩 되어 전해진다. 다른 것이 있다면 나는 그저 혼자만의 고민과 결국 자괴감에 빠져들었다는 것이고 그는 문학에 대해 탐구하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하튼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의 고민들을 읽어 내려 가다 보면 야하지만 야한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그의 목소리에 이 책이 읽어보고 싶어진다.

그즈음에서야 나는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을 이해했다. 해결되지 않던 수수께끼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자동차를 만들고 서양 철학의 꽃을 피운 독일인들이 어떻게 그토록 잔혹한 전쟁을 벌였는지, 내가 직접 경험한 바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더 질서정연하고 친절한 일본 사람들이 어떻게 태평양전쟁을 감행하고 수 많은 마루타들에게 생체 실험을 했는지 수수께끼가 풀렸다. 
내가 찾은 범인은 이데올로기였다. 이데올로기에 고취된자들이 집단 최면에 걸린 듯 합의하에 악행을 저지른 것으로 사건의 저모를 정리했다. 그 당시 일기를 보면, 나는 이데올로기가 마치 바이러스와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본문

언제인지 기억도 아득한 예전에 한 친구가 영화 <마루타>를 보고 나서 그 안의 장면을 들려줬었는데 그 끔찍한 이야기가 진짜라는 사실에 기함을 하곤 했다. 도무지 인간이 한 짓이라 믿을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생체 실험이 자행된 그 역사의 기록이, 알아야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도무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기에 외면하고서는 친구의 이야기를 잘라 버렸던 기억이 난다. 이제 그만 말해, 듣고 싶지 않아, 라며 강의실을 나왔던 그날의 기억 위로 이 책을 통해 두 번째 <마루타>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여전히 끔찍한, 그리하여 인간에 대한 배신과 두려움만이 떠오르던 나에게 있어서 그는 나지막이 말하고 있다. 이 안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 본성에 대한 혐오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인간이 가진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것은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을 파괴할 수도 있으나 또 다른 면으로는 이데올로기의 확립으로 그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니 그야말로 양면의 칼을 안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이념의 장을 어떻게 펼쳐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반성이 이 <마루타>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빨간책>이라는 이름을 하고서는 실제 발췌한 내용은 빨간 색 글자로 담겨 있는 것을 제외하고서는 그토록 빨강의 느낌이 강렬하게 다가오지만은 않는다. 그러니까 금서나 악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그들 나름대로의 의미가 담긴 양서를 전해주고 있기에 이 안의 이야기들 역시 한번씩 읽어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들에게 있는 빨간책의 목록에 무엇을 또 추가하면 좋을지, 나만의 빨간책 리스트를 모아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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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 이동진, 김중혁저


  

 

독서 기간 : 2015.05.3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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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간 - 인문학자 한귀은이 들여다본 성장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와 그림
한귀은 지음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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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인지, 누구를 통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엄마는 딸을 낳으면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너도 나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구나.’ 라는 연민과 회한의 의미가 담긴 눈물을 떨군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엄마도 그러셨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실제 이 질문을 해본 적은 없는 듯 하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며 세상에 더 깊이 들어오게 되면서 보이는 것들 것 바라보면 여자로서 산다는 것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몸서리 치게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전보다 여자가 살기에 좋아졌다는 현재의 우리의 모습은 여전히 고단한 그녀들의 삶이 여기저기에 널려있다. 아직 갈 길이 까마득한 30대의 나에게는 버겁기만 한 또 다른 그녀들의 삶은 어떠할지, 그것을 바라보고자 이 책을 펼쳐 들었다.

연인의 지고 지순한 밀어는 남이 듣기에 따라 코미디가 되기도 한다. (중략)
그런데 우리는 이 코미디를 사랑한다. 우리도 그렇게 했으며, 그 말의 기운이 사그라지기도 전에 헤어졌으며 상대를 죽도록 미워했으며 그러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웃으면서(혹은 비웃으면서) 그 사람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혹 이 코미디는 그 무엇보다 슬픈 장면으로 탈바꿈한다. 우리는 그런 순수한 연인을 보며 왈칵 눈물을 쏟게 되는 것이다
.
시간이 그렇게 만든다
.
시간은 많은 것을 가르친다. 시간으로 인해 우리는 사랑이 욕망의 투사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결혼이란, 그 욕망의 투사가 더 이상 불가능한 상태에 진입하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본문

이미 <엄마와 집짓기>를 통해 저자의 이야기를 만나본 적이 있던 나로서는 서문에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이 안의 이야기에 마음이 동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것이라 생각했던 그 순간의 문제는 어느 새 시간이 지나버리면 그저 과거로 자리하게 되고 그렇게 매 순간 생경한 것들을 마주하고 또 이겨나가야 하며 그 안에는 사랑도 있고 우정도 있고 배신도 있고 수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결국은 이 모든 것을 하나씩 배워가며 나를 찾아가는 것이 삶의 의미라는 것을 배워가게 되는 것이다.

이게 겨우 30대 초반의 문턱을 지나온 나로서는 나와 비슷한 이들의 고민은 무엇일지, 그들은 어떠한 이야기 틀 안에서 아등바등하고 있을지, 그리고 내가 지나왔고 앞으로 지나갈 삶의 모습 안에서 드리울 수도 있는 또 다른 그녀들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열어보게 된다. 그저 흘러가는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누군가의 오롯한 삶이 담겨 있다는 생각에 페이지를 넘기는 것마저도 경건하게 넘기게 된다.

그러니까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은,
엄마 스스로가 성장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진숙씨가 아들을 잘 키우기 위해 스스로를 성장시킬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성장으 힘으로 진정한 사랑을 만날 것이다
.
진숙씨의 삶은 유예된 모라토리움이 아니다. 아이와의 진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본문

매일 쏟아지는 결혼을 위한 커플들에 대한 소식만큼이나 이제는 너무 익숙하기까지 한 이혼과 별거의 문제 앞에 서 있는 진숙의 이야기를 보며 그녀의 삶의 이유가 아이에만 집중되어 있었다면 무척이나 서글펐을 것이다. 그러나 진숙씨에게 아이는 그녀가 살아가기 위한 원동력이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성장시키는 근원이 되는 것으로 아이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닌 아이와 함께 살기 위해 스스로가 더 강해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를 넘어 여자로서의 삶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저 되는대로 자신의 삶을 던져버리는 것이 아닌 다시 다잡아 홀로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은 찬란하기까지 느껴지는 것은 지금 그녀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완벽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된 일일지 나와 비슷한 또래의 이야기 보다는 10대와 60대에 서 있는 그녀들의 이야기가 더 살갑게 다가왔는데 10대의 소녀 모습은 30대가 넘어서야 이해할 수 있었던 엄마의 마음을 10대이지만 조금씩 알아가는 그녀의 모습에 감복해서였을 테고 아직은 아득하기만 한 60대의 모습 안에서도 내가 느끼는 것들과 다르지 않은, 그러니까 60대라고 해서 감정 따윈 없는 그저 늙은 한 인간이 아닌 그 안에는 나와 다르지 않는 여자가 있다는 것에서 숫자를 넘어 교감을 하게 된다.

60이 넘어서도 저런 장면에 가슴이 아프다. 가슴이 아픈 나 때문에 더 가슴이 아프다. 도대체 언제까지 사랑에 마음 아파야 하는가. 사랑의 장면을 보며 자기 연민을 느껴야 하는가. 이제 여성호르몬도 거의 바닥이 났을 텐데, 내 몸의 무슨 작용으로 나는 지금껏 울컥하는가. –본문

이 안의 모든 것이 나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나와 다르다, 라고 만도 할 수 없는 그녀들의 이야기이기에 꽤나 집중해서 읽어내려 간 듯 하다. 조금씩 다르지만 그 안의 내가 담겨 있는 그녀들의 삶이 늘 밝을 수만은 없겠지만 나름의 소소한 행복이 담겨 오늘을 이끌어 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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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소녀 / 케이티 워드저

독서 기간 : 2015.06.02~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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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꿈결 클래식 5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박민수 옮김, 남동훈 그림 / 꿈결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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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현재의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있어 그레고르의 변신은 충격 그 자체의 것일 수 밖에 없었다. 사람에서 곤충으로 변신이라니. 그의 갑작스런 변신에 무언가 전조 현상이라도 있었더라면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조금이나마 가벼웠겠지만 가벼운 감기를 앓는 것처럼 너무 쉽게 다가온 그의 갑작스런 변화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무겁게만 다가왔다.

그레고르는 머뭇거리는 사람을 어떻게든 들어오게 하려고, 혹은 적어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려고 거실을 통하는 문 옆에 바짝 다가섰다. 하지만 문이 더는 열리지 않았기에 그의 기다림도 허사로 끝났다. 아침에 문이 잠겨 있을 때는 모두 그렇게 들어오려고 성화더니, 이제는 자기가 한쪽 문을 열어 놓았고 다른 문도 낮 동안 분명 열어 두었을 텐데 들어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열쇠도 바깥에서 꽂혀 있었다. –본문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위해 일어난 그레고르가 이제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가족들이 알게 되었을 때, 초반에는 갑자기 변한 그의 모습에 대해 당혹감과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이제 가족들에게 있어 그레고르는 인간 그레고르가 아닌 곤충 그레고르로만 남게 된다. 서로의 소통 따윈 없이 한 공간 안에 자리하고 있는 그들은 점차 서로의 모습을 외면하며 그들만의 세계에 자리하고 있고 경제적인 부담만을 더하는 그레고르는 결국 그들 사이에 필요치 않은, 사라져야만 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자아, 이제 하느님께 감사드려야겠구나.” 잠자 씨가 말했다. 잠자 씨가 성호를 긋자 세 여자도 그가 하는 대로 따라했다. 그레테가 시체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말했다. “좀 보세요. 얼마나 말랐는지. 벌써 오래전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요. 음식은 들여 놓은 그대로 다시 나왔죠.” 실제로 그레고르의 몸통은 아주 납작하게 말라붙어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본문

<변신>이라는 작품이 장편인줄만 알았는데 이 안에는 다양한 단편 소설이 담겨 있다. 그다지 길이가 길지 않지만 읽고 나서는 계속 되뇌게 되는데 <법 안에서>의 한 남자는 법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지기 곁에서 수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지만 결국 쓸쓸하게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채 말이다. 왠지 모르게 나의 일상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기에 처연해지는데 <팽이>를 넘어 <포세이돈> 역시도 짧지만 그 안의 이야기를 계속 곱씹어보게 한다.

전체서평보기 : http://blog.yes24.com/document/805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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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시 / 아멜리 노통브저

독서 기간 : 2015.05.20~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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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 - 시인 장석주가 고른 삶과 죽음, 인생의 시 30 시인의 시 읽기
장석주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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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책을 집어 들었을 때 과연 이 책에는 어떠한 이야기가 들어있을지에 대한 기대감이 밀려들게 된다. 과연 이 책이 나에게 어떠한 이야기를 할지, 그 울림이 나에게 어떻게 전해질지에 대한 호기심에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면, 이미 어떠한 내용인지 알고 있는 책, 예를 들어서 연재물이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라면 기대감을 넘어 기분 좋은 설렘이 밀려들게 된다.

 얼마 전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청춘에게>이 시에 관한 편견을 모두 벗어 던지게 했던 책이기에 이 <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 도 너무나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펼쳐보게 되었는데, 그 기분 좋은 설렘은 계속해서 기운을 불어 넣어주고 있었고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참 즐거운 여정이었다.

어린 아들이 있다면 등을 곧게 펴고 앉아 시를 읽게 하라.
허무에 쉬이 감염되는 나약한 아들 따위는 키울 필요 없다.
선승에 좌선 하듯 시를 읽어라.
시와 좌선은 다 같이 본래 자기를 여미고, 여린 마음을 단련하도록 이끈다. –본문

 익숙하다는 이유로 그 안의 담겨 있는 의미들을 생각해볼 여유도 없이 바삐 흘러가는 우리에게 시는 한 템포 쉬어가며 새로운 것들을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똑같은 사물을 바라보고 같은 풍경 안에 있어도 발견하지 못한 그 무엇을 시인들은 집약된 이야기 안에 담아내고 있고 그 응축되어 있는 이야기는 다시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끊임없이 시를 읽으라, 라고 주문하고 있고 그 주문은 나로 하여금 그가 전해주는 시를 계속해서 바라보게 한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피투적 기투, 즉 세계에 내동댕이쳐짐이 바로 그것이다. 바다에서 포획된 생선들에게 어판장 바닥은 그야말로 낯선 세계다. 생존의 영도, 즉 바닥이다. 바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한 추락도 있다. 바닥을 치고 난 뒤의 바닥을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현실에서는 드물지 않은 일이다. 육탁은 온몸으로 바닥을 쳐서 제 살아 있음을 알리는 일이고, 다시 일어서기 위한 몸짓이다. 그렇게 힘껏 바닥을 치다 보면 온몸은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본문

 읽는 것만으로도 묵직함과 왠지 모를 아득함이 느껴지는 <육탁>을 보면서 살아가는 동안에 한 번쯤은 마주하게 되는 나락의 끝자락에서, 그럼에도 다시 살아보겠노라 몸부림 치는 한 인간의 모습이 보이면서 애잔함이 느껴진다. 물론 이 안에서는 고기들로 하여금 육탁치는 모습을 표현하고 그들이 살았던 바다가 이제는 더 이상 제 세상이 아니고 어판장이 현재 그들이 놓여있지만 그 모습을 그려보면 번잡한 어판장이 아닌 우리네 삶의 모습이 뒷 배경으로 그려지게 된다. 고단한 삶은 어찌하여 가혹함만을 던져주는지 그 누구를 붙잡고 물어야 할지 모를 막막함이지만 그럼에도 살아봐야 한다, 라고 말하는 저자의 나지막한 이야기는 육탁을 보며 무거운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서 있는 나에게 다시금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되어 준다.

한번이라고 꽉 짜인 살과 살 사이의 틈에 제 몸을 끼워맞추고
누군가를 단숨에 관통해본 자들은 알리라
나무는 저를 짜갠 도끼날에 향을 묻힌다본문

 손택수 시인의 <녹슨 도끼의 시>는 녹이 슬어 이제는 둔하게 무뎌져 버린 도끼가 가지고 있는 지난 날의 위엄을 전해주며 그 모습을 통해 파란했던 시간을 보낸 중년에게 그들의 과거에 대한 찬사를 보내며 현재 그들에게 남겨진 녹슬어버린 모습은 시간을 담은 자연스러운 것임을, 그것을 우리 모두가 인정하고 존경해야 함을 전해주고 있다. 늙어버린 그들이 아닌 찬란하게 빛났던 그들이 품었던 치열했던 향기를, 아직 그것을 품어보지도 못한 젊은이들에게 그들에 대한 전상서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생활 속의 아기자기한 모습을 전해주는 한미영 시인의 <밀가루 반죽>에서부터 삶의 묵직함을 느낄 수 있는 시들까지, 그야말로 시에 대한 한상 차림이 이 안에 그득히 담겨 있다. 하루 한 편, 짧은 시간을 내어 시를 읽는 것이 나의 하루를 얼마나 풍족하게 해주는지를 알게 해준 시간이었기에 이 책을 덮는 마지막이 내내 아쉽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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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청춘에게 / 장석주저


  

 

독서 기간 : 2015.05.17~05.18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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