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디서인지,
누구를 통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엄마는 딸을 낳으면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너도 나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구나.’ 라는 연민과 회한의 의미가 담긴 눈물을
떨군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엄마도 그러셨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실제 이 질문을 해본 적은 없는 듯 하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며 세상에 더 깊이
들어오게 되면서 보이는 것들 것 바라보면 여자로서 산다는 것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몸서리 치게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전보다 여자가 살기에 좋아졌다는 현재의 우리의 모습은 여전히 고단한 그녀들의 삶이 여기저기에
널려있다. 아직 갈 길이 까마득한 30대의 나에게는
버겁기만 한 또 다른 그녀들의 삶은 어떠할지, 그것을 바라보고자 이 책을 펼쳐 들었다.
연인의 지고 지순한 밀어는 남이 듣기에 따라 코미디가 되기도 한다.
(중략) 그런데 우리는 이 코미디를 사랑한다. 우리도 그렇게
했으며, 그 말의 기운이 사그라지기도 전에 헤어졌으며 상대를 죽도록 미워했으며 그러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웃으면서(혹은 비웃으면서) 그 사람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혹 이 코미디는 그 무엇보다 슬픈 장면으로 탈바꿈한다. 우리는 그런 순수한 연인을 보며 왈칵 눈물을 쏟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그렇게
만든다.
시간은 많은 것을 가르친다. 시간으로 인해 우리는 사랑이 욕망의 투사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결혼이란, 그 욕망의 투사가 더 이상
불가능한 상태에 진입하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본문
이미 <엄마와
집짓기>를 통해 저자의 이야기를 만나본 적이 있던 나로서는 서문에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이
안의 이야기에 마음이 동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것이라 생각했던 그 순간의 문제는 어느 새 시간이
지나버리면 그저 과거로 자리하게 되고 그렇게 매 순간 생경한 것들을 마주하고 또 이겨나가야 하며 그 안에는 사랑도 있고 우정도 있고 배신도 있고
수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결국은 이 모든 것을 하나씩 배워가며 나를 찾아가는 것이
삶의 의미라는 것을 배워가게 되는 것이다.
이게 겨우 30대 초반의
문턱을 지나온 나로서는 나와 비슷한 이들의 고민은 무엇일지, 그들은 어떠한 이야기 틀 안에서
아등바등하고 있을지, 그리고 내가 지나왔고 앞으로 지나갈 삶의 모습 안에서 드리울 수도 있는 또 다른
그녀들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열어보게 된다. 그저 흘러가는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누군가의 오롯한 삶이
담겨 있다는 생각에 페이지를 넘기는 것마저도 경건하게 넘기게 된다.
그러니까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은, 엄마 스스로가 성장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진숙씨가 아들을 잘 키우기 위해 스스로를 성장시킬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성장으 힘으로 진정한 사랑을 만날
것이다. 진숙씨의 삶은 유예된 모라토리움이 아니다. 아이와의 진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본문
매일 쏟아지는 결혼을 위한 커플들에 대한 소식만큼이나 이제는 너무
익숙하기까지 한 이혼과 별거의 문제 앞에 서 있는 진숙의 이야기를 보며 그녀의 삶의 이유가 아이에만 집중되어 있었다면 무척이나 서글펐을
것이다. 그러나 진숙씨에게 아이는 그녀가 살아가기 위한 원동력이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성장시키는 근원이
되는 것으로 아이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닌 아이와 함께 살기 위해 스스로가 더 강해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를 넘어 여자로서의 삶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저 되는대로 자신의 삶을 던져버리는 것이 아닌 다시 다잡아 홀로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은
찬란하기까지 느껴지는 것은 지금 그녀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완벽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된 일일지 나와 비슷한 또래의 이야기 보다는
10대와 60대에 서 있는 그녀들의 이야기가 더 살갑게 다가왔는데 10대의 소녀 모습은 30대가 넘어서야 이해할 수 있었던 엄마의
마음을 10대이지만 조금씩 알아가는 그녀의 모습에 감복해서였을 테고 아직은 아득하기만 한 60대의 모습 안에서도 내가 느끼는 것들과 다르지 않은,
그러니까 60대라고 해서 감정 따윈 없는 그저 늙은 한 인간이 아닌 그 안에는 나와
다르지 않는 여자가 있다는 것에서 숫자를 넘어 교감을 하게 된다.
60이 넘어서도
저런 장면에 가슴이 아프다. 가슴이 아픈 나 때문에 더 가슴이 아프다.
도대체 언제까지 사랑에 마음 아파야 하는가. 사랑의 장면을 보며 자기 연민을 느껴야
하는가. 이제 여성호르몬도 거의 바닥이 났을 텐데, 내
몸의 무슨 작용으로 나는 지금껏 울컥하는가. –본문
이 안의 모든 것이 나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나와 다르다, 라고 만도 할 수 없는 그녀들의 이야기이기에 꽤나 집중해서
읽어내려 간 듯 하다. 조금씩 다르지만 그 안의 내가 담겨 있는 그녀들의 삶이 늘 밝을 수만은
없겠지만 나름의 소소한 행복이 담겨 오늘을 이끌어 주길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