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빌라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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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르's Review

전경린 작가의 이름은 너무도 친숙하리만큼 들어왔지만 실제 그녀의 작품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듯 하다. 그녀의 작품을 첫 번째 조우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해변빌라>를 통해 바라본 감상평을 짧게 끄적여 본다면 읽다 보면 무언가 뜬구름을 잡듯 확고한 그 무엇을 보여주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서 책을 넘기게 하는 마력이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A B, 라는 확고한 명제는 아니지만은 에둘러 가는 그 길마저도 싱그럽게 만드는 그녀의 이야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멍해지면서도 또 어느 순간 또렷하게 각인되기에 신비로움이 담겨 있는 듯 하다.

삶이란 부재의 사과를 깎는 일이다, 할 때의 그 사과이지. 삶이란 사과 껍질을 얇게, 끊어지지 않게 깎는 일이야. 그 사과는 페루에만 있는거야? 라고 물으면 당연하지, 라고 말했다. –본문

해삼을 찾으러 새벽부터 바다로 나가는 모습으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 속에서 해삼에 대한 상념은 유지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회귀되는데 과연 이러한 생각들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지, 한 명의 독자를 넘어 한 인간으로서 인간의 상상력에 무한함에 다시금 외경심을 갖게 된다.

어찌되었건 다시 소설로 돌아와 아버지인줄 알았던 이는 그저 고모부일 뿐이고 작은 고모라고 생각했던 이가 실은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녀는 담담하다. 자신의 생모에 대한 진실보다는 고모부가 자신의 생부가 아니라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았던 그녀는 고모부가 생을 마감한 순간보다 그가 그녀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에서 상심하는 모습을 보인다. 생부에 대해서 이린에게 직접 물어보지는 않지만 유지는 계속해서 아버지를 찾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가 보여요?’라는 그녀의 질문 안에서 존재하지만 실제 세상에 섞이지 못한 자신이라는 존재의 의문을 향한 물음을 내던지는 셈인데 그 순간 이사경 앞에서 나체의 모습으로 드러내는 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타인이, 그러니까 중년의 아버지와 같은 누군가가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이 아니서였을까. 물론 이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서 수도 없는 고민을 해보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해석한 바로는 그녀의 존재를 타인에게 확인 받고 싶은 마음에서 일으킨 충동적인 행도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 사건 이후로 그녀와 이사경의 존재는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게 되고 이사경의 어머니인 노부인을 마주하게 되는데 주말마다 노부인의 집을 방문해 피아노를 치며 유지는 그들과의 관계도 점점 쌓이게 된다. 손이린과 이사경 사이의 관계 정리를 위한 교가로 유지를 이용하고 있는 노부인이지만 유지는 그 시간 속에서 과연 이사경의 존재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만이 점점 커져갈 뿐이다.

갑작스레 떠나버린 이린과 남겨진 유지와 해변마을 사람들의 일상은 계속 이어진다. 노부인의 죽음 이후에도 남겨진 사람들은 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연조는 이혼을 했고 어느 날 동네에 나타났던 연인은 세상을 등지고 카페의 주인인 편사장은 또 나름의 사랑을 그리고 있었으며 한때는 연인이었지만 이제 다른 이와 결혼한 오휘까지 다시 돌아오면서 모든 것을 머금어 조용하다 못해 고요할 것만 같은 이 마을은 나름대로의 생기를 가지고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을 한 후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쓰나미에 휩쓸려 사라진 모터바이크가 알래스카의 해안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처럼 처음 시작한 지점에서 절대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사랑이야. 어느 물리학자가 그랬지. 사랑의 법칙은 푸앵카레의 비가역적 에너지론에 지배를 받는 다고. 비가역적이라는 말은 살아의 끝은 생각지 않은 고으로 삶을 옮겨 놓을 수 있다는 의미야. –본문

이 모든 이야기에 대해서 처음과 끝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전경린 작가의 말마따나 그저 떠오르는 것들을 들려주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는 확고한 틀을 가지고서 들려주는 것들이 아니기에 하나의 연속된 이야기라기 보다는 스타카토처럼 순간순간을 들려주고 있지만 그 순간들을 또 하나의 덩어리로 이어지게 된다.

해변에 써 놓은 글자처럼, 순간들의 이야기가 눈 앞에 펼쳐지기는 하나 파도 속에 다시금 사그라드는 현실처럼 유지를 비롯해 그들의 이야기는 살아있는 듯 하면서도 또 금새 고요히 자리하게 된다. 마지막까지 모든 것은 파도 속에 묻어져 버렸지만 그럼에도 답답하거나 풀리지 않은 궁금증에 원망이 들기 보단 오히려 이 문장 하나하나를 스쳐지나 갈 수 있었다는 것에 그저 즐거웠을 뿐이다. 아마 이것이 전경린 작가의 마력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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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역 / 김혜진저

독서 기간 : 2014.11.18~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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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미용실의 네버엔딩 스토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9
박현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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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이들을 갑작스런 사고로 떠나 보내야 했던 이들에게는 그들이 다시 돌아오기만을, 이 모든 것들이 꿈이기를 바라는 마음뿐일 것이다. 눈뜨고 나면 들려오는 믿을 수 없는 사건 사고들이 계속해서 발생했던 2014년도는 이 나라의 국민으로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도 울컥하니 왜, 라는 말만 되뇌게 했던 그 순간들이었기에 피붙이를 잃어야 했던 그들의 마음을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아련한 시간들을 건너 이 <해리 미용실의 네버엔딩 스토리>를 보며 저자는 남겨진 우리에게 그럼에도 살아가야 할 이유들에 대해서 나지막이 들려주고 있었고 그 이야기를 따라 가다 보면 어느새 기운을 차려 오늘을 시작해야 할 힘을 얻게 된다.

 

 막둥이로 태어난 태산이는 이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였지만 곁에 아버지가 든든한 버팀목으로 그의 곁에 있었기에 나름의 시간들을 잘 지내고 있었다. 갑작스런 사고로 아버지를 잃기 전까지 말이다. 쌀집을 운영하며 일흔이 넘으셨어도 정정하셨던 아버지는 트럭 사고로 인해 열 여섯의 태산을 홀로 두고 그렇게 세상을 떠나게 되고 세상에 홀홀단신으로 남은 그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채 끝나기도 전 오촌 아저씨는 태산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의 부모가 남긴 재산을 가로챌 생각만하고 있을 뿐이다.

 

해리와 태산이. 나는 사진 뒤에 적힌 글씨를 눈으로 읽고 다시 입으로 읽었다. 해리와 태산이. 태산이는 난데? 두 번쯤 읽고 나서야 나는 태산이가 내 이름이라는 걸 인식했다. 해리라는 이름에 정신이 빠져서다. 해리, 낯설지 않은 이름. 그리고 해리 미용실 본문

 

 그렇게 혼자 남겨진 그에게 아버지가 남긴 메시지의 발견은 그의 삶을 제 2의 현장으로 접어들게 한다. 사진 뒤에 남겨진 이곳을 꼭 찾아가라란 장소를 찾아 부산의 해리 미용실을 찾아가지만 그곳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어떠한 흔적도 찾을 수 없다. 가냘픈 미용실의 주인에게서는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지만 집에서 보았던 동일한 십자수가 그 미용실에도 걸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 이상의 성과는 없이 발길을 돌리게 된다. 동일한 십자수와 아버지의 메시지에 관한 의문은 태산을 걱정했던 선생님의 권유로 참석한 모임에서 듣게 된 이야기로부터 풀리게 되는데 사랑하는 이들을 보내야만 했던 태산과 해리 미용실의 남자는 그렇게 상처를 안고서 다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태산아, 지금 보이는 네가 전부가 아니다. 나는 네가 너에게 주어진 양파 껍질을 하나씩, 하나씩 벗겨내며 성장하길 바란다. 어려움을 벗겨내면 그와 반대가 기다리고 있고 슬픔을 벗겨내면 기쁨이 있다는 말이다. 오늘이 슬프다고 내일까지 슬픈 법은 없고 지금이 힘들다고 네 앞 날이 계속 그렇지는 않을꺼야.
 
지금은 아버지의 부내가 아직 실감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양파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지는 마음으로 견뎌라. –본문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리고 남은 이들이 마주해야만 하는 그 아련함.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고통을 감당하다 못해 자신을 기억을 놓아버리고서야 살 수 있었던 그 삶 앞에도 아직 이 모든 것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들이 그들에게 남겨지게 된다.

 그래, 나는 한 편의 소설을 통해서 이들의 아픔을 그려보며 그저 가늠해 보지만 이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가슴 속에 안고 살아야 한다는 건만큼은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되뇌어 본다. 아직 양파껍질을 다 벗겨내지 못한 채 아스라히 사라져버린 그들을 위해서라도 오늘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며 그들이 몫까지 더 치열하게 오늘을 내달려야 하지 않을까. 책을 덮고 나서 현재의 우리를 더 먹먹하게 하는, 세상에 남아 있는 수 많은 태산이가 홀로 걸어갈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함께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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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먼저다 / 안느 마리 폴저


 

 

독서 기간 : 201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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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라는 아이
라라 윌리엄슨 지음, 김안나 옮김 / 나무옆의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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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어른들의 세계를 보면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종종 있었다. 서로 사랑하기에 결혼했다지만 싸우는 부모님을 보며 대체 왜 사랑한다며 싸우는 것인지, 왜 나는 첫째로 태어나서 동생보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것인지, 왜 어른들은 아이들의 생각은 들어보지도 않고 그들의 생각이 맞다고만 하는 것인지, 신호등을 파란 불이라 하며 하늘도 왜 파란색이라 하는지 등등, 어렸을 때의 나는 어른들이 이해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었으며 지금은 그러한 순간들이 점점 줄어들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선 아마도 동심을 잊고서는 어른들의 세계로 진입한 것 때문일 것이다.

 <호프라는 아이>는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로서 호프가 원하는 소원을 찾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의 하나 밖에 없는 누나이지만 어느 순간 닌자 그레이스로 변해서 호프를 공격하기만 하는 그녀가 아주 멀리 떨어진 대학에 들어가 1년에 한 번만 볼 수 있기를 바라거나 호프의 개인 찰스 스캘리본즈가 매번 토하지 않길 바란다거나, 셜록 홈즈를 너무도 존경하던 그가 살았다던 베이커가 221b번지에 살거나 무엇보다도 4년만에 TV에서 본 아빠와의 재회를 너무도 기다리고 있다.

 아빠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사실, 아빠는 영원히 가버린 것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왜냐하면 일곱 살 때 나는 영원히가 일주일이라 한 달 동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나 잘못 알았던 것이다.
 
영원히는 영원히라는 의미였다. –본문

 엄마와 싸운 후로 집을 나간 아빠는 아무 소식이 없다. 여덟 살 때 아빠로부터 생일 카드가 오기만을, 아홉 살이 되던 해 아홉 살이 되는 건 괜찮은 일이야라고 쓰인 카드가 오길. 그렇게 매년 호프는 아빠의 카드가 오길 바랐지만 실상 호프의 손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며 TV속의 아빠는 활기찬 모습을 하면서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아빠에게 이메일을 보내며 자신의 상황들을 알려주며 본격적으로 아빠를 찾기 위한 바스커빌 작전을 시행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호프는 누나와 함께 라시헨 바흐 작전도 감행하게 되는데 엄마의 새 남자친구인 빅 데이브에게 아내가 있는지 여부를 밝혀내는 것이다. 이렇게 2가지의 작전을 펼치는 동안 그는 아빠에게 또 다른 아들이 있다는 것과 누나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 조와의 관계 때문에 크리스토퍼와 점점 어긋나게 되는 등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호프의 앞을 가로막아 하나 둘 나타나게 된다.

 거기 있는 게 파파라치라면 큰일 날 거야. 이런 일은 불법이야. 미성년자를 염탐할 수는 없다고. 아무리 나의 아빠가 유명인이라고 해도 말이야.”
 
나의 아빠?
 
너의 아빠?
 
우리의 아빠? –본문

 전전긍긍하며 조금씩 비밀을 파헤쳐가는 호프의 행보도 행보이지만 그 안에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들을 보노라면 한편으로는 호프가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에게는 이 하나하나가 세상을 마주하게 되는 하나의 방법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눈물 한 줄이 뺨으로 흘러내린다. 이것이 아빠에게 하는 마지막 작별 인사라는 것을 알기에. 그렇다, 아빠는 내가 일곱 살일 때 계단에서 나에게 작별 인사를 했지만 나는 이제야 작별 인사를 할 기회를 가졌다. 그렇다고 내가 아빠를 잊을 거라는 말은 아니다.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아빠는 언제나 내 인생의 작은 퍼즐 조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본문

 아빠와 함께하고 싶다는 아이의 소망은 결국 오래 이뤄지지는 못했지만 호프가 아빠와의 이별을 받아들이는데 데이브는 물론, 데이브의 아들이자 그의 친구인 크리스토퍼, 그리고 새로 생긴 가족들이 그의 주변에 함께하고 있다.

 호프의 눈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세계와 그가 이 시간 동안에 아빠를 찾기 위해 벌이는 여정을 보노라면 작은 발걸음의 천진난만함에 빠져 보다가, 안쓰러워 고개를 갸웃하다가 또 어느 새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아이의 이름처럼, 앞으로의 날들에는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과 함께 행복한 나날들만이 가득하기를, 호프와 함께한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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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Maisie Knew / Henry James저


 

 

독서 기간 : 2014.11.2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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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간 - 일러스트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호세 무뇨스 그림 / 미메시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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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이야기를 책으로 처음 접한 것은 <이방인>이었으나 <시지프스 신화>는 책으로 마주하기 이전부터 그 내용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어찌되었건 이방인으로 시작된 그와의 조우는 희한하게도 거듭하면 할 수록 과연 나는 카뮈를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라는 의구심으로 키워져갔고 그래서 매번 다시 그의 이야기를 마주하곤 하지만 늘 책을 덮을 때면 이전과는 또 다른 그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조금더 그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고자 하던 나로서는 이 <일러스트 최초의 인간>은 그를 향한 간극을 좁힐 수 있는 기회로 보였고 그리하여 냉큼 그의 손을 잡았으며 그를 향한 물음표들이 조금씩은 줄어들 수 있는 시간으로 다가왔다

마흔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인해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게 된 카뮈가 마지막 그 순간을 거슬러 6개월 전부터 모든 것을 담아 그리려고 했다는 이 <최초의 인간>은 카뮈 스스로 그의 모든 것들 담으려 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물론 그가 원하는 대로 그의 모든 것을 담아 놓기 전에 미완성으로 남아버린 안타까운 작품이기는 하나, 그의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그 어느때보다 그 자신에 대해서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려 하고 있었다는 것에서 이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들의 시초이자 마지막으로 자리한 것에서 카뮈를 알고자 한다면 이 책을 읽어봐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노벨 문학상을 탄 그이지만 그의 원고를 읽을 수 없는 어머니를 보면서 그는 어떠한 상념들이 스쳐지나갔을까. 작가로서 더할 나위 할 수 없는 영광을 누리고는 있으나 그 순간을 오롯이 함께 누릴 수 없었던 그 순간 그에게 드리워진 현실은 오히려 모든 것을 얻었지만 허망하게 느껴졌을 지 모를 일이다. 어머니로부터 전장에서 전사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아마도 그는 자신의 뿌리를 찾는 것이 현재의 자신을 찾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는 이 여정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이름과 그 연대에서 몸을 뗄 수가 없었다. 저 묘석 밑에 남은 것은 재와 먼지 뿐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기이하고 말 없는 생명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또 다시 아버지를 버려 둔 채, 사람들이 그를 던져 넣고 나서 그래도 방치했던 저 끝도 없는 고독을 오늘밤에도 여전히 따르도록 남겨 둔 채 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본문

이미 자신의 나이를 훌쩍 넘어버린 아버지의 묘지 앞에서, 자신보다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한 그 젊은 청년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다는 것은 아마도 직접 그 상황에 있어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그저 가늠해볼 수 밖에 없는 순간일 것이다. 아버지이지만 아버지라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자신보다 어린 어느 청년을 잃어버린 기분. 그것은 형언할 수 없는 또 다른 슬픔으로 그에게 젖어들고 있다.

열여섯 살이 되어도 스무살이 되어도 아무도 그에게 말을 해주지 않았고 그는 혼자서 배우고 혼자서 있는 힘을 다하여 잠재적 능력만을 지닌 채 자라고 혼자서 자신의 윤리와 진실을 발견해 내고 마침내 인간으로 태어난 다음 이번에는 더욱 어려운 탄생이라고 할, 타인들과 여자들에게로 또 새로이 눈뜨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고장에서 태어나 뿌리도 신앙도 없이 살아가는 법을 하나씩하나씩 배우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이 결정적인 익명성으로 변한 나머지 자신들이 이 땅위에 왔다가 간 단 하나의 거룩한 흔적인 지금 공동묘지 안에서 어둠에 덮여 가는 저 명문을 읽을 수도 없는 묘석들마저 없어져 버릴 위험이있는 오늘, 모두 다함께 다른 사람들의 존재에 눈뜨며 새로이 태어나는 법을, 자신들보다 먼저 이 땅위를 거쳐갔고 이제는 종족과 운명의 동지임을 인정해야 마땅할, 지금은 제거되고 없는 정복자들의 저 엄청난 무리들에 눈뜨며 새로이 태어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되듯이. –본문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넘어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 했떤 당시의 사회상을 보노라면 수 많은 개인들은 자신들의 홀로 내린 뿌리를 기반으로 인해 살아남아야만 했다. 그것은 카뮈가 당면했던 모습과도 너무나 비슷한 것들이었으며 그렇게 자크가 홀로서기를 위해서 바등거리며 살아왔듯이 카뮈는 그를 통해서 홀로서기를 하고 있던 모든 이들을 '최초의 인간'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완성 작품이기에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이전의 다른 작품들보다도 좀 더 진솔한 카뮈를 마주하게 된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확언을 들을수는 없지만 그에 대해 조금 더 가까이 그를 마주할 수 있는 이 시간이 그를 찾아가는 여정이며 또 다른 하나의 숙제가 주는 설렘이 주어진 것이라 생각되기에 앞으로 몇 번 더 읽어보며 또 다른 길을 찾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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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알베르 카뮈저

독서 기간 : 2014.11.18~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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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
페테르 우스펜스키 지음, 공경희 옮김 / 연금술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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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한번쯤은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가, 당시 자신의 선택들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았을 것이다. 나 역시도 이러한 망상에 빠져 시간을 보내는 순간들이 있기는 했지만 이미 지나온 그 터널 속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아쉬움만을 남기고 앞으로 내달리곤 했는데,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인 이반 오소킨에게는 그 자신의 삶을 뒤바꿀 수 있는 절체절명의 기회가 돌아오게 된다.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내가 했을 선택들이 그리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도 하거니와 당시의 나로서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택들을 했다는 생각때문에 현재의 나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아니요'라는 대답을 하곤 하지만 만약 오소킨과 같이 현재까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한번쯤은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치기 어린 그때 했던 일들을 다시는 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 테니 말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지나이다의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그는 크림반도로 그녀와 함께 떠나지 못한다. 수중에 보유하고 있는 돈도 돈이지만 그 스스로 용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를 그리던 그는 끊질기게 편지를 보내보지만 돌아오는 소식은 그녀가 다른 이와 결혼한다는 마지막 소식이다.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 일 수 없어 고내하던 오소킨은 한 마법사를 만나게 되면서 이 모든 것을 뒤바꿀 수 있는 기회를 마주하게 되는데 바로 현재의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서 12년 전, 그가 있었던 기숙사의 학교로 돌아가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는 본질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어. 우리가 그 둘을 과거와 미래라는 다른 말로 표현하는 것일 뿐이야. 사실은 이 둘은 과거이면서 미래인 거야.' -본문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기 전이었으며, 그가 성적미달로 유급을 받기 이전, 베개 투척사건이 일어나던 그날로 돌아간 그는 한동안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12년 전에 그가 했던 모습 그래도의 삶을 다시 재현하고 있다. 과거로 돌아가기만 하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겠노라, 라고 큰소리 치던 그가 다시금 똑같은 모습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망상이기는 하나 잠시라도 가져봤던 달달한 꿈은 오소킨을 통해서 무참한 현실로 조명되어 눈 앞에 그려지고 있다. 무언가 달라질 법도 하지만 모든 결말을 알고 있는 그는 그럼에도 여전히 똑같은 길을 가고 있다.

친구여, 그 덫이 인생이라고 불리는 거야. 그대가 한 번 더 실험을 반복하고 싶다면 나는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해 줄 수 있어. 하지만 경고하는데 그대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거야.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만 있어. -본문

답답하리만큼 변화되지 않는 그를 보면서 시간의 태엽을 감는 것보다는 그 스스로가 변화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아무리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그 하나의 본성은 변하지 않으니 그가 가는 길은 늘 같았으니 말이다.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로서도 바뀌지 않는다. 그렇기에 과거와 미래의 연결 고리인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텐데, 이러한 교훈적인 이야기도 좋지만은 소설에서만큼은 변화된 오소킨이 자신의 삶을 쥐락펴락 하길 바랐던 나로서는 다소 아쉬움의 남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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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 다니 미즈에저

독서 기간 : 2014.11.2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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