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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 기행 - 고개를 들면 역사가 보인다
김봉규 글.사진 / 담앤북스 / 2014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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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을 보면서 그 동안 현판이라는 것 자체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던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이나 누각, 정자 등에 걸려있는 현판을 보면서 그저 그곳의 명칭을 알려주기 위함이라는 생각과 한문에 취약하기에 현판을 보며 이름을 맞추기 보다는 한글로 적인 소개글이 있으면 그것을 보고서는 눈에 보이는 풍경에 몰두해서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니까 나에게 현판은 그 건물을 알려주는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것쯤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뇌리에는 별다른 이미지가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광화문이라고 그려져 있는 현판의 배경이 검은색이었는지 흰색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할 정도이니, 현판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문외한인 셈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현판에 그 무슨 이야기가 빼곡히 담겨 있겠느냐,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저 건물의 이름을 담고 있는 것이려니 했으나 현판이 걸리기까지는 실로 어마어마한 일들이 압축하여 담겨 있는 것을 보면서, 이 하나의 현판에도 역사와 그날의 기록이 담겨있다는 것이 신기하게만 느껴질 따름이다.
얼마 전 도산서원을 방문했을 때, 퇴계 이황 선생이 현판을 직접 쓰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제서야 현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기에 관심도 없었던 현판을 보면서 그 안에 새겨진 문체의 힘이 느껴지며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현판이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듯 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도산서원을 갔더라면 더 좋았을 테지만 알아봐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이 책을 마주하게 되어 다른 때보다 좀 더 집중해서 읽어 내려갔다.

현판에 글을 올릴 수 있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릇 건물의 얼굴과도 같은 현판이기에 이 편액을 쓸 수 있는 것은 당대의 필력가가 아니면 힘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7세와 11세의 아이가 편액을 썼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자신의 키보다 컸을 글씨를 어떻게 썼을가 하는 의문이 든다. 글씨도 힘이있게 잘 썼다. 확대 복사할 수 있는 기계도 없던 옛날이라 편액 글씨는 편액 크기에 맞는 큰 글시를 서야 했는데. 믿기 어려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이 편액 글씨는 서예가들로부터도 불가사의한 필력으로 회자되어 왔다. –본문
편액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한자를 제대로 읽을 줄도 모른다지만, 현판에 글린 서체들을 보면 그 나름대로의 힘이 느껴진다. 사진으로 보아도 무언가 압도되는 느낌인데 그 실제를 눈 앞에서 마주했을 때에는 어떻게 이렇게 큰 글씨에 흐트러짐 하나 없이 써내려 갈 수 있었을까, 라는 호기심이 일게 된다. 단 한 번의 기회로 완벽해야 해내야 하는 편액 제작 작업은 위탄으로 하여금 순식간에 머리를 희게 만들었다고 하니, 그 노고는 겪어보지 않은 이들이라면 가늠할 수도 없을 중압감일 것이다.
남명 조식(1501~1572)이 지은 글 <민암부>중 일부다. 배가 순항하고 조난을 당하지 않으려면 물의 이치를 알아야 하고 물을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하듯이, 군왕은 미심을 잘 알고 백성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산림에 묻혀 살면서도 백성의 삶과 왕을 위해 왕실과 조정을 거침없이 비판한 남명은 ‘태산교악(성격이 산과 절벽처럼 거칠고 드세다는 뜻), 추상열일(형벌이 엄하고 권위가 있음)’의 기상으로 살았다. “선비를 천자의 신하가 되지 않고 제후의 벗이 되지 아니한다.”고 했던 그는 진정한 선비 정신을 일깨우고 심어 주었던 대표적 인물이다. –본문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 내내 현재의 정치인들이 본받았으면 하는 이가 바로 남명이었다. 백성은 물과 같으며 그 물은 배를 나아가게도 하지만 뒤집어 버릴 수 있는 힘이 있다 생각한 그는 가장 두려워하고 섬겨야 할 대상을 백성으로 바라보고 있다. 특히나 그가 평생을 좇으려 했던 경의지학은 선비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하는 것으로 어떠한 순간에도 거짓이 없고 바르게 행동하며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두렵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으로 살리란 그의 다짐은 그가 사라진 지금에도 계속해서 깨달음을 주고 있다. 이렇듯 그의 가르침을 본받기 위해 후학들이 남명을 기르기 위해 창건한 덕천서원에는 경의당이라는 이름의 현판이 걸리게 되는데, 아마 이 책을 읽지 않고 그저 이 현판을 마주했다면 ‘경의당’이라는 이름만으로 끝났을 테지만 이 책을 통해 바라본 경의당 편액은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어렵다거나 혹은 딱딱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현판들을 마주하면서 그 안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로 하여금 당시의 선비들의 지조는 물론 하나의 편액에 담긴 노고들을 마주해 볼 수 있게 된다. 그저 건물의 이름을 알려주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현판이 이제는 그저 현판으로 보이지만은 않는다. 앞으로는 어느 현판을 바라보든지 꽤나 오랜 시간 상념에 잠겨 바라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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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의 현판과 주련 1~3 / 문화재청편집부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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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간 : 2014.08.25~08.26
by 아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