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
에두아르도 라고 외 지음, 신미경 외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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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처음 제목을 보고서는 볼라뇨라는 전염병이 퍼진 어느 도시의 기록이라고만 생각했다. 아마도 이 책을 펼쳐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소설 ’28’처럼 하나의 전염병이 번진 도시의 기록이 담긴 이야기라고 계속해서 오해하고 있었을 지 모른다.

이미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눈치를 챈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책장을 넘겨본 이후에야 이 책의 존재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저자인 로베르토 볼라뇨와 함께 작업을 했던 이들이라든지, 그의 작품에 대한 오마주를 남긴다든지 혹은 그의 글을 읽고 나서 팬들이 직접 그에게 바치는 헌정 글들을 모아 만들어진 이 책은, 제목 그래도 볼라뇨에 푹 빠진 사람들이 모여 만든, 볼라뇨를 곱씹어 보고 볼라뇨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껏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된 셈이다.

 

 

그의 작품 중 <팽 선생> 단 한 권만 읽은 나로서는 아직 그의 마력에 흠뻑 젖었다기 보다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도 있구나,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의 이야기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볼라뇨가 떠난 지금까지 이토록 수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그의 이야기를 함께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아직 내가 모르는 볼라뇨의 마력이 점점 궁금해진다.   

신비한 능력을 지닌 거울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볼라뇨를 추종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시작되게 되는데 이 독특한 유물과 같은 거울 앞에 서서 소원을 빌기 시작하면 현실에서 그 소원을 이뤄지는 반면 그 소원을 빌었던 사람을 꿈속에서 고통스런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 거울을 선물로 구입했던 조르주는 가게의 주인이 이야기했던 소원을 이뤄지는 거울이라는 말이 생각나서 그 앞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을 열렬히 사랑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고 잠에 들게 되는데 그의 꿈속에서는 그의 친구와 그녀가 사랑에 빠져 도리어 그를 향해 조롱의 웃음 소리만을 던지고 있었다.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던 그 현실이 꿈이라는 것을 인지하자마자 그에게 그녀의 전화가 걸려오게 되고 희한하게 그 순간부터 그녀는 조르주에게 흠뻑 빠져 사랑을 넘어 집착의 단계까지로 그를 옭아매려 하고 있다.

 때로는 거울이 독자적인 의도로 작용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모든 남자들이 여자들이 되고, 또 그 반대의 현상도 벌어지는 세상에서 깨어난 적도 있다. 비록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그와 동시대 사람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모든 사자들, 인류라는 종족이 등장한 이후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사자들이 득실대는 세상에서 살아 본 적도 있었다. 어떤 때는 완전히 빛이 차단되고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은 공간 속에서 잠이 깨기도 했는데, 의식은 있되 오로지 촉각과 미각, 후각만이 느낄 수 있었다. –본문

 모든 것을 다 가졌으나 현실과 꿈과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 늘 어지러웠던 그는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소원을 빌게 되지만 이마저도 꿈 속의 꿈을 불러 일으켜 계속해서 꿈과 현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과연 이 꿈 같은 현실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 하는 순간 이 모든 것이 안나의 바람이었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게 된다.

 또한 소설 <2666>에 자신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세르히고의 이야기를 보노라면 볼라뇨가 하나의 이야기를 집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정보와 그 정보를 토대로 이야기들을 구성하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데 그의 곁에서 그가 어떻게 글을 위한 소스들을 찾아내는 지에 대해 바라봐왔던 그 역시도 볼라뇨에 대해서 감히 객관적으로 이야기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가 선택하는 언어들에 대한 능력만큼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는 극찬을 남겨 놓고 있다.

 그는 자신이 등장, 아니 자신의 이름이 등장하는 <2666>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는데 특히 볼라뇨가 문학 탐정의 역할에 대해 골몰했던 이유에 대해서도 들려주고 있다.

로베트로 볼라뇨가 문학 탐정 역할에 골몰한 것은 물론 현실 세계에서 정의가 실현되는 데 일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볼라뇨의 진정한 의도는 문학을 통해 그려진 하나의 상상적 지도 위에 경도와 위도를 설정함으로써, 그것을 통해 현실 그 자체를 점령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본문

 <야만스러운 탐정들>에서는 절대 악에 대해서 그렸기에 폭력적인 장면들이 난무하지만 <2666> 은 그 절대 악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설명하고 있다. 죄악이 필연적인 것이라면 그것을 넘기 위해 어떻게든 고군분투하게 되겠지만 우연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그 인연의 꼬리를 잡고서는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보며 서글퍼지면서도 그가 그린 이야기들이 필연적인 죄악이길 바라며 다른 이야기들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일반적인 추리 소설 작가들이 그렇듯, 사건의 복잡성을 논리적으로 환원시켜 어떻게든 합리호ㅘ하고 해결해 내는 작가들은 사기꾼들이다. 진실은, 악은 여기 이곳에 있지만 그 어떤 것으로도 악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작가의 역할 중 하나는 바로 그런 사실을 가능한 한 신중하게 다루는 일일 것이다. –본문

 이토록 수 많은 사람들이, 그들 나름의 문학적인 이상화를 가지고 있을 텐데 그들을 이 곳에서 철저히 볼라뇨에 감염된 자들이라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다. 볼라뇨의 책을 읽은 것이 단 한 권이기에 다른 책들을 읽어보고서 이 책을 마주했으면 더욱 공감을 하며 읽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면서 반면에 아직 그가 남겨 놓은 수 많은 감염 바이러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흡족해 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어내려 갔다. 언젠가는 볼라뇨라는 숙주에 반응하는 내가 되는 날이 오길 바라며 그의 책들을 하나씩 읽어봐야겠다

 

아르's 추천목록

 

볼라뇨, 로베르트 볼라뇨 / 호르헤 볼피저


 

 

독서 기간 : 2014.06.26~06.28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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